인간의 시간, 경계의 이야기
먹고, 자고, 싸고, 보고, 듣는 일들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에서 늘 묘사되는 것들이 아니던가.
새삼 묘사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라, 우리의 일상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아니던가.
이런 뻔하고 당연한 것들 말고 진정한 어떤 의미를 우리는 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극적으로 반전될 하나의 영광된 어느 순간을.
오직 그 순간에 대한 생각에만 골몰하여 대충 먹고, 대충 자고, 대충 싸고, 대충 보며, 대충 듣고 있었다.
우리는 오직 생각만을 먹고, 생각만을 자고, 생각만을 싸고, 생각만을 보고, 생각만을 들으며 살고 있었다.
그러한 우리를 감독은 잠깐 멈추어 세운다. 이 강변 위에.
강변은 삶과 죽음의 명확한 경계다.
그러나 범람도 한다. 이편으로 도리없이 밀고 들어온다. 언제라도 죽음이 엄습한다. 하나의 생명이 위협된다.
동시에 범람해서 눈물도 된다. 그 눈물이 생명도 키운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와 하나의 삶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죽은 것들이 살아있는 것을 키운다.
너는 살아도 된다고.
그래서 밥을 먹는다.
죽은 것들로 말미암아 같이 앉아 밥을 먹으며 살아있는 것들이 어울린다.
살아도 되니, 삶이라고 부르련다.
죽음도 삶이라고 부르련다. 결국에는 그렇게밖에는 부를 수 없다고 말하련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 사이에 있는 그 경계가 실은 삶이었고, 삶은 모호한 것이다. 모호하기에 무엇이든 그 안에 다 품어진다. 상처도, 소망도, 아픔도, 미소도, 모호함의 빛에 가득히 감싸여 다 이곳에 있다. 저녁놀이 피어난 강변에 있다.
여기 이 삶에 다 있다고 감독이 잠깐 우리를 멈추어 세웠던 것이다. 먹고, 자고, 싸고, 보고, 듣는 그 뻔해보이는 모든 일 속에 다 있었다는 것을 무코리타의 시간 정도면 우리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으리라. 이제는 대답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이 삶에, 살아있는 것들에 내려 앉는다.
어떤 사람도 없었던 사람이 되지 않는다. 아무 의미가 없어보이는 일을 수십 년 반복하기만 하는 그 모든 삶이 정말로 의미없는 삶이 되지 않는다.
강물이 범람하여 눈물도 되어 생명을 키우듯이, 누군가가 정직하고 충실하게 지속해간 시간은 경계를 넘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돌입해온다. 떨군 머리 위에, 그 지친 어깨 위에, 또 외로운 가슴 위에 내려 앉는다. 경계 너머에서도 함께 살아가고 있었음을 알리는 무척 상냥한 손길이 되어.
우리는 의미라고 부른다.
이 인간의 시간을.
강변 위에서 머물러볼 때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다.
무코리타는 우리가 의미를 눈치채는 시간의 길이다. 아니 깊이다.
경계에는 깊이가 있다. 모호한 것은 그만큼 깊어서일 것이다.
너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그 마음이 강물처럼 굽이굽이 돌고 돌아 끝없이 서로를 향하는 이것을 결국에는 또 삶이라고 말하련다.
삶은 경계의 이야기, 삶으로도 죽음으로도 우리가 계속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렇게 강변 위에는 인간의 시간이 눈부시게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