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못한 자신을 혼내고 있는 그대에게

"사막의 꿈"

by 깨닫는마음씨




남에게 절대로 피해를 입히려 하지 않으며, 동시에 남에게 호의를 입는 것도 다소간에 부담스러워 하는 그대는, 다만 스스로를 알아서 척척 잘 책임지고자 하는 건실한 사람이다. 그리고 건실한 사람이란 곧 건조한 사람이다.


책임감은 습도로 말하자면 원래 건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조한 것은 단조로운 것이며, 곧 지루한 것이다. 사막과 같다.


그대여, 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사막의 이야기들은 아마도 그대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해질 것이다.


"제가 똑바로 못했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올바르게 책임지지 못했어요."


뜨거운 열이 많을 때 습기는 증발되어 건조해진다. 이것이 왜 책임감이 사막처럼 건조한 것인지에 대한 그 이유다. 여기에는 갈 곳을 잃고 그 자리에 정체된 뜨거운 불기운, 즉 화가 많다.


그래서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이 지루한 이야기들을 반복하고 있는 그대는, 실제로는 모든 탈출구가 봉쇄된 속에서 남겨진 유일한 화의 탈출구, 곧 그대 자신에게 계속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탈출구의 가능성이 봉쇄된 이유는 단순하다. 그대가 답을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도망가서는 안 된다는 답을 정해 놓았다. 도망가는 일은, 비겁한 일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며, 성숙하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그대는 다른 갈 곳을 스스로 이미 봉쇄한 채, 단지 전설의 용사처럼 그 자리에 버티고만 서 있다. 대단히 지루하게, 화만 내며 서 있다.


매우 자주, 그대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왕을 만들어낸다. 그대가 악착같이 버티면서 책임감을 다하는 일은, 사악한 마왕으로부터 그대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아름다운 용사의 명목을 그렇게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가 이미 알듯이, 마왕은 없다.


그것은 같은 자리에 끝없이 버티며 서 있는 까닭에 대단히 지루해진 그대가 만들어낸 환상의 장난감 같은 것이다. 마왕이라도 없으면, 한없이 버티며 서 있는 그대의 인생은 정말로 속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가 다시 알듯이, 마왕은 없다.


있는 것은 단지 사막에서 혼자 화만 내고 있는 그대다.


있는 것은 다만 사막에서 혼자 그대 자신을 혼내고만 있는 그대다.


마왕이라는 신기루에 비친 그대 자신의 잘못한 모습을 보며, 그렇게 그대 자신을 향해 불타오르는 화를 매섭게 쏟아붓고 있는 그대만이, 그저 건조하고 지루한 사막 속에 혼자 있을 뿐이다.


그대는 혼자다.


그대여, 그대는 그렇게 혼자였다.


그대는 그저 혼자인 아이였다. 그대를 돌봐주는 이가 없어 혼자인 아이였다.


어쩌면 그대의 부모는 그대를 돌보기에는 여력이 없었을지 모른다. 자기가 배우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그대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충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부재하는 배우자의 몫까지 책임을 다하고자 하느라, 그대를 향한 관심이 부족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대도 아직 어렸던 까닭에, 스스로를 돌보기에는 많은 것이 어려웠을지 모른다.


이처럼 그 모든 것에 대해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대는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대여, 그대는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대는 단지 아팠던 것이다.


그대가 던져진 사막의 환경이 그대는 너무 아팠던 것뿐이다. 그 환경 속에 방치되어 혼자인 것이 그대는 너무 아팠던 것뿐이다.


그렇게 그대는 혼자라 많이 외로웠고, 많이 속상했고, 많이 가슴아팠다.


그러나 그 아픔 때문에, 그대는 마치 그것이 잘못인 것처럼 오해했다. 그대 자신이 태어나선 안될 잘못인 것처럼 오해했다. 결국 그대가 아픔을 느끼는 것은, 그대가 잘못된 자신을 똑바로 책임지지 못한 탓이라고, 그대는 오해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픔이 잘못으로 굴절되었고, 그대는 이제 아픈데다가 잘못하기까지 한 최악의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는 그 최악을 만회하기 위해, 그대는 모든 책임감 속에서만 살아왔다. 그 결과, 그대는 차츰 사막을 닮아 갔다. 그대를 고통스럽게 한 그 이유를 그대로 닮아 갔다. 하루하루 건조해졌고, 하루하루 지루해졌다. 날이 갈수록, 사는 일이 재미없어졌다. 사실은 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혼자 외롭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척박한 사막에서는 살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그대의 아픔이다. 그래서 그대의 아픔은 사막의 아픔이며, 사막 속 아이의 아픔이다.


그리고 이 아픔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사막에서 혼자 외롭게 살아온 아이는 아픔의 이름이지, 잘못의 이름이 아니다.


그대여, 정직하게 한번 물어보라.


아픈 것은 정말로 잘못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혼자인 아이라 가슴아팠던 그대는 잘못이 아니고, 잘못한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그대의 입장에 놓인다면, 그대와 똑같은 아픔을 경험하게 될 바로 그 척박한 사막의 환경 속에서 그대 또한 아픔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 아픔을 낳는 사막의 역사가, 곧 아픈 아이의 역사가 끝나지기를 바라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렇게 그대는 그저 아이였다. 혼자인 아이였다. 아픔이 담긴 아이였다.


그렇게 그대는 다만 씨앗이었다. 한 알의 씨앗이었다. 꿈이 담긴 씨앗이었다.


그래서 그대에게 들려져야 할 말은 오직 이것뿐이다.


꽃을 피웠구나, 그대여.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고,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던 이 척박한 사막 속에서, 어쩜 이리도 대견하게 꽃을 피웠구나.


혼자서 많이 외로웠지만, 참 잘 살아주었구나, 그대여.


그대는 분명히 이 척박한 사막에 던져진 한 알의 씨앗이었다.


그대는 분명히 이 척박한 사막이 꿈꾼 한 줄기의 꿈이었다.


사막의 아픔을 이해하는 그대의 눈가에서 흐르는 한 줄기의 눈물이 사막에 꽃을 피운다. 바로 그대라는 꽃을 피운다. 그 한 줄기의 꿈으로 말미암아, 건조한 모든 사막의 역사는 종결되며, 촉촉한 모든 초원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래서 사막은 답을 정해 놓았던 것이다. 바로 그대라는 답을 정해 놓았던 것이다.


사막이 사막의 아픈 역사를 종결하기 위해 꿈꾸던 유일한 탈출구, 그것이 바로 그대다.


그대는 사막의 꿈이다. 사막에서도 피어날 수 있었던 한 송이의 꽃이다. 사막이 오랜 시간 동안 간절하게 꿈꾸었던 바로 그 기적이다.


꽃을 피웠구나, 그대여.


아무도 없이 혼자서도 참 잘 살아주었구나, 그대여.


살아주어서 고맙다, 고맙다,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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