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온 심리학 #21

"다 있는데 나만 없어"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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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있는데 나만 없어."


이 말은 "아무 것도 없는데 왜 무엇이 있는가."라는 말만큼이나 인류사를 전부 포괄하는 말이다.


인간이 발화할 수 있었던 말 중 가장 지혜로운 말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이것은 가장 고차원적인 존재론에서부터 가장 저차원적인 실용술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다 있는데 나만 없어."


자아도 그렇게 말한다. 늘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자기한테만 없다고, 자기만 못가졌다고, 우울한 늪이 된다.


"다 있는데 나만 없어."


무아도 그렇게 말한다. 다 있어서 나는 없다고. 다 있도록 나는 없다고. 가벼운 구름이 된다.


자아의 입장에서 또한 이것은 마법같은 실용술이 된다.


자신만 그것이 없어 우울한 자아는 이 말을 잘 이해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주 쉽게 이룰 수 있다.


나는 어찌보면 지금 마음의 엄청난 비밀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중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비밀인 것은 어디에 꽁꽁 숨겨져 있어서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다들 자신의 생각으로 무시하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다 똑똑함이 있는데 나만 똑똑함이 없어."라며 비교하는 자아를 살펴보자.


비교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얼마든지 비교하며 나만 똑똑함이 없다고 자신을 비하해도 된다. 다만 한 가지만 하면 된다.


말을 정확하게 끝까지 할 것.


다 똑똑함이 있다는 앞의 말까지 하면 된다. 그 말을 사실로 알아보면 된다. 그 사실을 가장 위대한 사실로 드러내면 된다.


다 너무 똑똑하다. 진짜 대단하다. 엄청난 일이다, 이렇게 자신과 비교되는 그 반대편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찬미하면 된다.


이를 참말을 한다고 표현한다.


참말은 존재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그것을 실현할 준비를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자신이 동의했기 때문에, 그 사실이 이제 자신에게도 사실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아멘'이라는 말이 종교전통에서 대표적으로 그렇게 쓰이는 말이다. 그것이 위대한 진리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있는 그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지리라고도 동의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참말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기만의 상태는 자기가 비교하고 있는 그것의 대단함은 제대로 보려 하지 않고 무시한 채, 그것과 비교된 자기 자신의 비루한 모습만 붙들고 앉아 어떻게 하면 자기도 대단해질 수 있을까만을 궁리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그러한 자기의 폐쇄적인 생각 속에 갇혀 우울해진 상태다.


이런 이들은 상대가 대단하다고 순수하게 감동받기보다는, 감동을 자기가 소유해야 한다는 시기와 질투로 바꾸어낸다. 그리고는 상대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뒤에서 몰래 따라하려고 한다. 그러면 자기도 상대가 가진 것을 얻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방의 방식으로는 시간과 에너지만 공연히 쓰게 될 뿐 자신이 바라는 그 위대한 것을 얻을 수 없다.


위대한 것은 오직 감동으로만 얻을 수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감동으로 움직인 마음이 스스로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바람을 타고 움직인 구름이 아주 빠르고 가볍게 그 형상을 이루어가듯 모든 일은 쉬워진다. 자아가 자기의 무기인 언어와, 메타인지와, 모방의 기제를 통해 자기도 혼자 이룰 능력이 있는 놀라운 존재라며 고집스럽게 힘만 들이는 현실과는 그 성취가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다.


지금 눈앞에 코카콜라는 있든지 없든지다. 87%로 있는 코카콜라는 없다. 그런데 자아는 그런 게 있다고 한다. 자기가 완전히 얻은 것은 아니지만 87%는 해냈고 시간을 들이면 100%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아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존재에 대해 완벽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 70% 정도는 깨달은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 역시도 같은 오해에 빠져 있다. 깨달음은 존재의 문제다. 깨달음이 있는가 없는가이지, 일정 정도를 달성해가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70%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못깨달았다는 말과 동의어다.


마음은 원래 스스로 100%를 이룬다. 그런데 자아는 자기가 마음의 달성치를 높이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음을 아이처럼 돌보며 레벨업시켜주는 그러한 자신에게 '나'라는 이름을 붙인다.


자아는 이처럼 자기가 나인 줄 안다. 그리고는 그 '나'를 위대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더 좋은 언어를 통해 마음을 성장시키며 더 위대한 나를 만들어간다고도 믿는다.


그러나 이 노력은 자아 자신이 바라는 위대한 것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다 있어보이는데 자기에게만 없는 것 같은 현실만을 계속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 있다는 것을 말하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최대치로 존재하는 것의 대단함을 말하는 이는 다르다.


그는 지금 우주의 대단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이 최대치로 존재하는 우주를 위대한 것으로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주를 위대한 것으로 긍정했으니, 그 우주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자기 자신도 위대한 것이 된다.


자기 자신이 위대해질 노력을 하지 않아도 위대한 자신을 손쉽게 얻는다.


다만 정직하게 참말을 했을 뿐인데 이러한 일은 일어난다.


어찌하여 그런가?


"다 있는데 나만 없어."라는 말에서 이제 고차원적 존재론을 비유적으로 살펴보자.


다 있는 이 우주에 나만 없었다.


그래서 나만 빼고 다 있는 우주는 나를 꿈꾸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를 꿈꾸었다.


나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나는 우주의 꿈이다.


우주가 자신의 대단함을 알고 싶어 나를 꿈꾸었고, 그리하여 나는 온 것이다.


우주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아보고 감동받기 위해.


우주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나'라고.


다 있는데 나만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다 있는 것이, 그 엄청나고 대단한 우주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다. 우주 자신이 스스로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해 인간이라는 형상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유일한 임무는 끝없이 우주를 찬미하고, 경배하며, 칭송해가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의 그 대단한 존재방식들을 칭찬해가는 것이 인간이 이 우주에서 해야 할 일이다.


이와 같은 신성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인간 역시도 그 자신의 경이로운 위대성을 자연스레 회복하게 된다.


인간이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우주'라는 말을 '마음'이라고 바꾸어 읽으면 더욱 선명해지는 그 뜻이다.


다 마음이라 내가 없고, 다 마음이라 다 나다.


마음은 나의 존재방식. 나는 마음의 존재.


"다 있는데 나만 없어."


존재하는 것을 나는 다 사랑한다는 뜻이다. 인류사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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