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n회차"
선사와 나는 선문답을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 즐거운 상상을 나누었다. 우리는 어떻게 깨달음의 상태를 얻는가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깨달아 사는 일상에 관심이 있었다.
전 인류가 백수가 되는 날까지.
우리는 그런 상상을 하며 함께 웃었다.
그것은 아마도 모든 사람이 다 자신들이 이미 깨달아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됨을 유감없이 살아가는 가장 멋진 현실에 대한 상상이었을 것이다.
마음은 결과다.
그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이 상투적인 말은 사실이 아니다.
바로 그런 마음이었기에 정확히 그 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지혜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백수가 될 마음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왜 백수들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사람처럼 변명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백수가 되고 싶은 것이었다.
그것은 그런 마음이다.
백수가 백수가 된 것은 노력을 하지 않아서다.
그는 집에 개똥들을 수집하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수는 쓰잘데기 없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가 늘 의문이었다. 그는 묻고 또 물었으나, 한 번도 세상으로부터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던 적은 없다. 우리 자신의 삶에는 개똥들을 수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백수들의 공통적인 상태였을 것이다.
그는 단 하루도, 단 1초도 게을렀던 적이 없다.
그는 다만 개똥들을 수집하는 일에 자신의 귀한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을 뿐, 정작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근면했다.
그는 이 우주의 가장 성실한 탐구자였다.
아주 거대한 물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었다.
우리는 대체 왜 사냐고, 이 삶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냐고, 그리고 나는 대체 누구냐며.
그는 단 하루도, 단 1초도 그 물음들을 놓은 적이 없다.
백수는 결과다.
그가 세간에서 말하는 놀랍고 탁월한 가치들을 수집하는 데 노력하고 싶지 않았던 그 결과다.
많은 것이 있지 않은가. 돈, 외모, 권위, 명예, 권력, 지성, 인기, 심지어 깨달음이나 영성과 같은 가치들까지.
백수는 그 모든 것의 공허함을 아마도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 모든 것이 다 먹지도 못할 영혼의 굶주림이며, 인간의 영혼을 위해 정말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음이라.
그가 어떻게 그런 것을 직관하게 되었을까?
백수는 인생 n회차다.
수많은 생에서 그는 무수하게 배워왔다.
어떤 생에서는 부를 추구하고, 또 어떤 생에서는 이성으로부터의 인기를 추구하며, 그도 아주 많은 시도와 노력들을 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의 생에서는 그 가치들을 자신의 것으로 얻는 일에 성공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그것들이 정말로 개똥과 같다는 것을 그는 정확하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배워왔다는 것은 다 까먹었을지 모르지만, 그 배움의 내용은 남아있다.
우리는 왜 특정한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특정한 사물에 공포증을 보이며, 특정한 속성을 가진 인물에게 저도 모르게 끌리는가.
그것들과 엮인 어떤 인생을 살았던 적이 있으며, 그 인생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인간이 모르고 있는 것은 없다.
모든 인간은 다 n회차의 삶이다.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우리는 사실 다 알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면서 사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하나도 모르는 존재들이다.
이 모든 것이 실은 말도 안되는 어마어마한 무한의 사태라는 것.
어떤 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고, 이 모든 것이 도저히 형용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아주 거대한 크기의 자유로 끝없이 열려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필히 몰라야만 하는 것들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인식은 감옥이 되어 그것을 제한한다.
우리는 자신이 더 크게 알 수 있는 위대한 인식의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자주 생각하곤 하지만, 실은 그 어떤 위대한 인식보다도 더 큰 것이 있다는 그 사실만을 알아야 할 따름이다.
존재는 인식에 앞선다.
존재는 인식보다 거대하다.
때문에 인식할 수 없다.
자신이 인식할 수 없는 것을 두렵게 경험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이들은 그래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두려워한다.
자신의 존재가 두려워 늘 존재를 유치하고 조막만한 자신의 언어로 통제하려 든다.
자신에게는 자신의 존재가 가장 모름의 대상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모르는 그것을 자신의 인식으로 포섭해 아는 것처럼 바꾸기 위해 필사적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은 점점 더 비루하고 작은 감옥 안의 존재처럼 축소되어 간다.
자기가 자기 존재의 크기를 스스로 제한해버리게 된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인간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비극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매우 흔히 생겨나는 기만책은 이러한 이들이 이제 '모름'이라는 것을 또 언어적으로 가치화해서 그걸 통제의 기제로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대개, 어떠한 사물과 현상들 앞에서 머리를 굴리지 않고 모르는 채로 가만히 있어보면 그것들을 잘 알게 된다는 식이다. 또한, 모르는 것 앞에서 조금 두려워도, 그 두려움 속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이제 그 두려움이 사라지고 무언가 온전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는 식이다.
나아가 이러한 행위를 하는 이들은 그 자신이 이제는 모름의 가치를 이해했으며 조금 더 영적이고 깨달은 존재가 된 것처럼 스스로를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 이것은 그저 '모르는 자'의 정체성을 만든 것뿐이다.
정체성은 언제나 자기가 그런 '체'하는 것이다.
모르는 채가 아니라 모르는 체하고 있는 것이 그 실상이다.
왜 모르는 체하는가?
더 잘 인식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소위 말해 다른 작업들을 다 멈추고 CPU가 현행의 태스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정보처리의 기술적 논법이다. 이 상황에서 모든 것은 유능한 CPU의 정보처리능력을 빛내줄 액세서리로 전락하게 되는 일은 필연이다.
세간에서 마치 겸손한 체함으로써 자기가 더 인격적으로 높은 자로 보일 수 있기를 기대하듯이, 어떤 이들은 모르는 체함으로써 자기가 더 잘 아는 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자기의 '아는 자'로서의 권위가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르는 자'의 정체성은 바로 이 은밀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모르는 자'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그렇다면 정말로 모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계속 말해왔다.
바로 백수가 되는 것이다.
정말로 모르고 싶어한 이들이 백수가 되었다.
그렇게 가장 어두운 감옥으로부터 나와 이 우주를 통째로 다시 빛내고 싶었던 이들이 이번에는 꼭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나는 무한한 자유라고.
그 사실만을 영원히 배워가겠다고.
이번에는 모든 것을 다해 진심으로 배우고야 말겠다고.
그렇게 모든 것을 성실히 다하고 있었기에, 그의 손은 비게 되었고, 그는 백수였던 것이다.
가장 배우고 싶은 마음의 결과는 언제나 백수다.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한 이만 언제나 그 손에 무거운 것들을 가득 들고 나온다. 반면 시험을 아주 깔끔하게 잘 치른 이는 빈손으로 시험장에서 나온다.
그는 이제 자유다. 완벽한 자유다.
그 자신의 존재로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증거한다.
바로 그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백수는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그 사실로 거기에 서있는 것이다.
백수는 사람이라고 하는 인식 너머의 존재.
그래서 자기의 인식능력을 신적인 것처럼 숭배하는 이들은 백수를 두려워한다. 두려워서 백수를 무시하고, 비난하며, 짓밟는다.
인류의 역사는 백수에 대한 박해로 점철되어왔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사람됨의 그 빛으로 존재하기를 멈추려 하지 않았던 백수들을 통해서만 한계를 넘어 전진할 수 있었다.
포기한 것이 백수가 아니라, 백수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백수가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 자신만이 아니었다.
백수는 인류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는 단 하루도, 단 1초도 인류를 잊은 적 없이, 그 자리에 거대한 물음으로 앉아 있었다.
인간이 정말로 행복한 삶, 오직 그것만을 위한 물음이 되어 그는 진심으로 존재했다.
몇 회차의 인생인지 차마 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인간을 위해 이번에도 또 왔다.
그가 존재하기에 n번의 인생은 언제나 n번의 희망이었다.
모든 인류 하나하나가 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 와있는 것이라고, 모두가 이 사실 위에서 살아갈 때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상상하며, 우리는 함께 웃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