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백수의 심리학 #3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산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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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란 무엇인가.


보기 싫은 것들로만 가득한 속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 것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우리 일상의 순간들을 전부 이 기적의 순간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떠할까?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백수의 삶이다.


가슴 깊이 행복한 삶이다.


보고 싶은 것을 매일매일 더 많이 더 가깝게 보고 사는데 행복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고 경험하게 되는 이유도 분명하다.


우리는 아주 많은 경우, 보고 싶은 것 대신에 보기 싫은 것들만을 본다. 보기 싫은 것들을 더 악착같이 본다. 그게 마치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실제로 보기 싫은 것들을 일부러 찾아 보는 행위에 우리는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안되고 보기 싫은 것들을 더 찾아 볼수록 늠름하고 당당한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라고도 엄숙하게 말한다.


보기 싫은 문제집을 보고, 보기 싫은 컬트영화들을 보고, 보기 싫은 사람을 이제는 수용하겠다는 미소로 보고, 밖에서 보면 정말로 그 표정이 아주 처참하게 보기 싫은 일들로 가득하다.


이런 인생이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중에서 우리를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최고의 일은, 보기 싫은 마음을 봐야 한다고 말하는 일이다.


이것은 불행하지만 어떠한 문학적 도취감 속에 자신이 불행한줄도 모르게 만들기에, 가장 불행한 일이다.


보기 싫은 마음을 봐야, 과거의 트라우마가 해소되고, 내면이 성장하며, 참나를 만나게 되고, 또 깨닫게 된다는 얘기들이 각기 언어만 좀 바꾼 다양한 문예창작물들의 형태로 범람한다. 비단 심리나 영성서적 코너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서 코너에 깔린 불쏘시개들이 다 그 얘기들이다.


보기 싫은 것을 계속 보고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쾌락이 생겨난다.


축하한다. 이제 BDSM의 현실에 입장한 것이다.


붓다는 고행이라고 불렀고, 우리는 가피학의 성애라고 부르는 그 쾌락중독의 현실은 이렇게 펼쳐진다.


보기 싫은 것을 억지로 보는 행위를 지속하면서 나아가 품어주려고까지 하면, 온몸이 짜릿짜릿해지며, 또 무거웠던 머리가 가벼워지고, 눈앞의 시야가 확 트이는 것으로 경험되며, 가슴이 뭔지 모를 충만감으로 가득찬다.


아, 내가 온전하구나, 모든 것이 다 이렇게 여여했구나, 이 고요한 저녁의 창가에 앉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커피 한 잔이나 할까, 그런 기분도 든다.


이런 상태를 경험하면서 자기가 깨달은 것처럼 생각되기도 할 것이다. 아니 거의 대부분 이런 상태를 그렇게 착각한다.


고통과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뇌가 분비한 화학물질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이 경험을 우리는 깨달음 내지 어떤 놀라운 영적체험인 것처럼 곧잘 간주하곤 한다.


보기 싫은 것을 계속 보는 것의 이득은 바로 이것이다.


일단 합법적 마약효과를 누릴 수 있으면서, 과거와는 다르게 아주 성장한 듯한 자신의 고렙 정체성도 그 효과에 의존해 새로이 건축할 수 있다.


게임중독의 상태와 같다.


보기 싫은 것을 억지로 계속 보려는 행위는 이처럼 중독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쾌락중독이고, 게임중독이며, 곧 도파민의 제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중독상태가 심리학, 심리상담, 마음, 영성, 깨달음 등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을 때는 치명적이다. 도파민을 신처럼 신앙하고 있을 뿐이면서, 자기는 정말 뭔가 제대로 된 것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것이 바로, 보고 싶은 대로 보려는 상태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일'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일은 보기 싫은 것을 억지로 계속 보려고 한 그 결과다. 그렇게 그 삶에 고통이 더욱 증대되었지만, 자신은 이 과정을 통해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며 언어로 자신을 속이고 있기에 만들어진 상태다. 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일'은 '인지부조화'라고도 불린다.


이처럼 고통으로 촉발된 화학물질에 의한 몸의 반응이 고급언어들과 연합되어 흡사 기적적인 어떤 경험인 것처럼 하나의 해석적 구성물로 그 내면에 자리잡기까지 했다면,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삶과 앎이 불일치하는 인지부조화가 생겨났다면, 이제 많은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깨달은 척하고 있을 때 정말로 깨닫는 일이 요원해지는 것과 같다.


도파민의 효과가 기적이 되어 있으면, 진짜 기적은 보이지 않게 된다.


쾌락을 위해 보기 싫은 것들을 더 많이 보려 하니, 진짜 자기가 보고 싶어하던 것과는 점점 멀어져 이제는 그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더 쉬운 말들로 표현해보고 싶다.


이 세상이 아무리 보기 싫은 거지 같은 것들로만 가득 차있더라도, 그 속에서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살겠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향해서만 살겠다는 것이다.


이제 다시는 사랑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랑을 놓쳐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만을 따르며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 마음에 정직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보고 싶다."


넘나 보고 싶은 것, 그것은 우리가 무척 사랑하는 것이다. 표현 그대로이지 않은가.


이 우주에서의 진짜 기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가 사랑과 연결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의 가슴이 그 사랑으로만 가득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스스로를 사람으로 발견하는 일이다.


인간의 발견.


인간이 이 우주에 출현했다는 것이 첫 번째의 기적이며, 자신이 그 인간임을 발견한 것이 두 번째의 기적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기적이자 가장 근원적인 기적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이 존재사태가 오직 사랑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우주의 소망으로 출현했고, 우리는 자신이 바로 그 존귀한 인간임을 믿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전적으로 사랑의 주관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 세 가지의 기적적인 일 중에 으뜸이 사랑인 이유다.


그렇다면 그 모든 일은 이 사랑만을 보면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살아간다면 진실로 가장 완전한 일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백수가 아무 것도 들지 않고 그 손을 비워두고 있는 이유는 그처럼 완전했다.


백수의 빈 손은 사랑을 향해서만 열어두고 있던 고운 두 손.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 손이다.


백수가 직립보행을 하게 된 이유는 그 빈 손으로 제일 아름다운 일들만을 하기 위해서다.


매일매일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하루하루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것만을 향해 가까이 나아간다.


그것은 내가 너무나 보고 싶은 당신의 모습.


그래서 네 번째의 기적이 만들어진다.


보고 싶은 것을 향해 떠난 이 자신이, 보고 싶은 그것에게 가장 '보고 싶은 것'으로 드러난다.


다섯 번째도, 여섯 번째도, 또 일곱 번째도 끝이 아닐 것이다. 기적은 무한히 연쇄되어가며, 그 나날들이 전부 기적의 순간들일 것이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기적이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 된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사는 백수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 의미다.


당신이 정말로 누구인지를 스스로 알리는, 그 사랑만을 바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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