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again"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면 그 전까지 해왔던 것을 다 놓아야 하며 잊어야 한다.
앞서 놓친 꽃마차를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막 앞에 도착한 달구지를 타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이미 떠나간 꽃마차를 계속 머릿속에 붙잡아두면, 그 자리에 붙잡히게 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꽃마차를 타지 못한 후회와 자책 속에서, 또 꽃마차를 따라잡거나 이곳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여러 허황된 계략 속에서 시간만 속절없이 낭비되고, 인생도 쏜살같이 저물어간다.
과거에 자신이 어떤 프로세스 속에 있었다고 지금도 그 프로세스를 완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제목처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지금 눈앞에 떠올라있는 현상만이 진짜며 전부다.
글쓰기로 비유하자면 지금껏 한 70% 정도 집필된 채 방치된 무수한 미완성의 글들이 있을 수 있다. 조금만 더 궁리하고 손을 보면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글들을 쓰고자 했던 그때의 마음은 아주 진실했었으며, 분명 그때는 어떤 경이로운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절실히 그 감각을 표현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는 아니다.
지금은 그것들이 다 짐이다.
옷을 살 때도 다 진심이었다. 그 소재와 색감과 형상이 눈부셨다. 옷들과 옷들이 만나 펼쳐지는 조화로움의 향연은 작은 방을 음악이 그치지 않을 영원한 축제로 만들었다.
결국에는 다 좀나방들의 밥이다.
모든 것은 다 이러할 운명이다. 달이 차면 기울고, 쌓은 것은 먼저 올린 토대부터 썩어간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과거에서부터 계속 쌓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현재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
이는 쌓아서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버려서 깊어지는 길이다.
달은 끝없이 차고 기울며 그 빛이 깊어진다.
우리가 사랑으로 쌓은 것도 허물어지며 그 사랑이 한층 깊어진다.
깊어질수록 투명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순수하고 깨끗하다.
백수의 하얀 손은 짐을 막 정리한 그 인간의 손이다.
손이 비워져, 머리도 비워지고, 가슴도 맑다.
기다리는 이 시간을 설렐 줄 아는 여유도 생겨난다.
그러니 달구지가 눈앞에 도착하면 무척이나 반가울 것이다.
더욱 반가울 것은, 이 길의 끝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 님이다.
꽃마차를 타고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직접 꽃이 되어 왔다.
그윽한 향기 때문에 멀리서도 당신인 줄을 알았다.
처음부터 당신만 있으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가 없었단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뿐이다.
당신이 무엇을 했던 사람이든, 또 어떤 영광을 가졌던 사람이든, 그 모든 짐을 다 버리고서 지금 이 눈앞의 풍경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는 일만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인간이 정말로 쌓을 수 있는 것은 영혼의 깊이뿐이다.
정확하게 그 일만을 하는 이들을 백수라고 부른다. 달구지를 타고, 리어카를 타고, 쌀집자전거를 타고, 심지어 버스 뒤에라도 매달려, 무엇이든지 타고 그들은 이동한다.
정 탈 것이 없다면 그들은 두 발로 걷는다.
꽃이 걷는다.
자신을 이 세상의 선물로 드리기 위하여, 님을 향해 걷는다.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만 걷는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지금 막 새롭게 태어나 뒤뚱뒤뚱, 그러나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고 헤맴없이 한길로 나선다.
깨끗한 눈길 위에 그려진 그 착한 몸짓들을 삶이라고 부른다.
잘 들어보면 분명 삶은 노래하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지금이 맞다고.
어떤가. 당신들은 이렇게 살지 않겠는가.
다시 살아나지 않겠는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모두 복되게도 백수가 되어보자.
아니 체 게바라를 인용해 차라리 이렇게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
"리얼리스트가 되어라. 그러나 마음속에는 백수를 꿈꾸어라(Be realistic, demand the impossible)."
그리고 눈앞의 현실을 보며, 백수를 소망하는 이 두 일이 실은 같은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가며 삶은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