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기쁨"
한 학기의 실존치료 강의를 마치고, 그동안 원생분들이 매주마다 과제로 써온 시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이미 전원에게 A+가 선물될 것이라고 거룩한 예언이 선포된 상황에서, 성적과는 아무 관계없는 과제를 그리도 열심히, 무척이나 정성스럽게 하게 되는 그 마음을 나는 아주 잘 안다.
그건 배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공부가 이제 '나의 공부'로 되었을 때다.
처음에는 심리학으로, 다음은 철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두 차례 경험하면서,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정말 감미롭고 또 환희로웠다. 이래서 대학원에 들어와 공부를 하는 것이라는 감격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진실로 학교라는 단어를 사랑하는 이유다.
학교는 공부를 시키는 곳이 아니라, 공부를 하려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심지어 공부를 시킨다 해도, 그 이유는 분명하다.
공부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인간의 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어 처음에는 공부를 시킨다.
인간이 가장 즐거울 때는 언제인가.
알아갈 때다.
새롭게 배울 때다.
인간의 호기심이 충족되어갈 때 거기에는 거대한 즐거움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누구이며, 이 세상이란 대체 무엇인지 등을 알아가는 일은, 이 지구에 인간이 출현한 이래 지금껏 변함없이 인간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온 일이다.
인간이 펼쳐낸 이 배움의 즐거움으로 인해 지구는 이 우주에서 가장 큰 기쁨의 별이 되었다.
천문학적 지도와는 달리 심리적 지도에서는 지구가 이 우주의 중심이 맞는데, 거기에는 인간이 살고 있어서다.
모든 배움은 결국에는 인간학이며, 인간학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의 눈으로 본 것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말 속에 어려있는 것은 언제나 감동이다.
자신을 잡아끈 저 매혹적인 별빛을 바라보며 인간의 눈도 반짝인다. 별들을 알아가며 인간은 인간 자신을 알아가는 것과도 같다.
그러니 배움의 감동은 반드시 인간 자신에 대한 감동이다.
나를 알아간 그 감동이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알고,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게 절대적인 즐거움이다.
사랑하는 것을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임을 알아가는 것, 이는 순수한 기쁨이다.
이 기쁨이 우리의 온몸을 가득 채워올 때, 우리는 배움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순간을 인간 실존의 시작(始作, 詩作)이라고도 말한다.
이것은 비로소 인간이 시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 자신이 바로 이 우주에 영원한 현재진행형으로 흐르는 시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의 본체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 너머의 것이다.
언어 너머의 것을 언어로 묘사하려다보니 시라는 형식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형식이 사라져도, 또는 형식을 모르거나, 형식에서 벗어나도 시는 시다. 노래는 노래다.
그리고 기쁨은 기쁨이다.
자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어떤 존재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알게 되고, 나아가 자신이 진실로 존재해도 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가, 어떤 깊이로부터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려온 근원의 소리를 토해낸다.
그것은 밤하늘의 모든 별들을 전율시킬 가장 성대한 기쁨의 음성.
영원한 존재의 노래다.
나의 시작이다.
성적과 아무 관계없이, 그 어떤 성취나 성공과도 아무 관계없이, 우리는 나를 시작했다.
이 우주에 울려퍼지는 영원한 시의 선율로서 마침내 나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나의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공부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적과 성취와 성공을 위한 정보자본의 소재로만 앎이 타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앎은 다만 순수하게 기쁜 것이다.
순수한 앎은 나와 내 자신을 둘러싼 이 삼라만상을 알아가는 그 최상의 기쁨.
단순하고 분명하게, 나를 알아가는 순수한 기쁨인 것이다.
이 글은 2023년의 결산을 위한 것.
배움을 시작한 갈매기들이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그 무수한 광경에, 나는 정말로 순수하게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