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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夏夏夏, 2009)

밤을 웃는 선사(禪師)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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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산봉우리에 있는 작은 암자에서, 어느 여름날의 고요한 달밤에 선사(禪師)는 왜 대소하였던가?


이 영화는 그 큰 웃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 속 두 남자는 앎의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동일한 시기에 체험한 삶의 사건을 인과론적으로 정리하며, 그 모든 것에 대해 납득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여 서로 담소를 나눈다. 하하하 웃으며, 그 모든 삶을 이제 다 앎으로 파악하고 있는 초탈한 입장에서 마치 신선처럼 서로 술잔을 나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취해있을 뿐이다. 또 취해가고 싶을 뿐이다.


취해있지 않으면, 한낮의 태양 아래, 또 달밤의 고요함 위에 드러나게 되는 까닭이다.


바로, 앎의 전문가로서의 그들의 무력함이.


관객은 바라본다. 그들이 그들의 앎으로 열심히 자존심을 위해 구성해내고 있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그들이 실제로 체험했던 사실적인 이야기를 목도한다. 그래서 "하하하."라고 하는 큰 웃음은 사실 관객의 몫이다. 그리고 동시에 영화관 밖 산속의 암자에서 영화관의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선사의 몫이다. 그리고 또 그 선사를 바라보고 있는───.


이렇게 밖으로, 밖으로, 거듭해서 시선이 초극하게 되는 이 몸짓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삶의 속성이다.


삶에 대해 그 전모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삶을 포섭할 수 있는 앎의 크기를 고집하며, 그럼으로써 삶에 대한 앎의 전문가처럼 행세하는 우리는, 여튼간에 아는 척을 한다.


"내가 너를 알잖아."


자주 들려오는 대사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시 전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사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다만 아는 척 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아는 척이라도 붙잡으며 삶에 대해 노련한 행세를 하나, 정작 다가온 삶 앞에는 무력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것은 발달심리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특정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앎으로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곧 앎이 삷보다 크다고 간주하고 있는 바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가 끝내 드러내게 되는 모습은 자기보다 더 대단해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그 앞에서 마냥 훌쩍이고 바닥을 뒹굴며 응석을 부리는 모습이다. 마트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다. 그렇게 우리 자신이 무력함을 느끼는 현실을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다만 술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아무리 취한다 하더라도, 한낮의 태양과, 달밤의 고요함은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있다. 우리가 술이 깰 때까지 다소곳하게 기다린다. 그것은 그것들이 가진 천연의 상냥함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것들이 기다림 속에서 준비한, 어느 정직한 소요와, 어느 성실한 적막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바로 이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이처럼 앎의 허상성을, 한낮의 태양 아래, 달밤의 고요함 위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바로 삶이다. 삶은 언제나 스스로 그 자신을 둘러싼 앎의 허상성을 벗겨내고, 우리를 삶에 대한 모름의 자리로 이끈다. 그럼으로써 삶 그 자신이 앎보다 늘 더 크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개방한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삶은 그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한다.


큰 웃음은, 그래서 삶의 자기표현이다.


자신이 그 어떤 앎으로도 쌈싸먹힐 수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가장 웅대한 자기표현이다.


동시에, 삶의 권속인 우리가, 곧 살아 있는 우리가, 그 어떤 앎보다도 더욱 큰 존재라는 사실을 전하는 가장 상냥한 러브레터다.


그렇게 선사(禪師)는 선사(膳賜)한다. 이 놀라운 선물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모든 것을 계몽하는 앎의 태양의 세력이 가장 충천한 여름 속에서도, 선사는 아무 것도 모르는 달밤의 고요함을 노래한다. 바로 그처럼, 미지의 밤을 웃는다. 휘영청, 산등성이에 걸려 있는 커다란 동그라미는 인간의 얼굴이다. 미지의 인간의 얼굴이다. 선사가 웃으면, 그 얼굴도 웃는다. 우리가 웃는다.


"내가 인간이라우! 아무 것도 몰라도 내가 인간이라우!"


광소하며 저잣거리를 헤쳐가는 그 뒷모습은 향기를 남긴다.


그 향기는 우리의 옷깃에 배여 영영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인가, 그 향기가 기다림 속에서 준비한, 어느 정직한 소요와, 어느 성실한 적막 속에서, 우리는 그윽히 들이마시게 된다.


하─── 하─── 하───.


어둠 속에서 큰 웃음이 반짝인다.


가장 큰 것이 그 크기만큼 토해지기 위해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온다.


인간이 입을 활짝 연다.


그리고 그 사이로 터져나오는 삶이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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