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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Feb 29. 2024

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어보자 2nd #1

"첫째 날"




  한 커플이 있다.


  둘 다 같은 동네에 산다.


  둘 다 상담심리대학원 출신이다.


  둘 다 10년째 심리상담을 수련받고 있다.


  둘 다 에니메이션, 영화, 음악 등 일본의 대중문화를 좋아한다.


  둘 다 소소한 백수로 사는 일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둘 다 아주 조금은 모아둔 돈이 있다고 한다.


  둘 다 이제 마음의 꽃을 피우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만들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가자. 바로 가자. 지체하지 말고 마음의 꿈을 이루러 정직한 최단거리로 바로 가자.


  세상의 한 커플을 위한, 그리고 그들이 만나갈 세상의 무수한 커플들을 위한, 지금껏 이 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러 우리는 한번 떠나보자.


  나의 임무는 상담소를 구성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측면에서 영감을 불어넣고, 디자인을 감독하며, 실행을 촉진하고, 결정적으로 마음의 소망의 크기만큼 지갑은 인색하지 않게 열되 낭비는 줄이도록 하는 일.


  나는 이제 본업을 백수에서 마음공간 크리에이터 같은 이름으로 바꾸어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세상에 없던 어떤 것을 만드는 일에 나는 늘 설렌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0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아니다.


  아직 이 세상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있던 바로 그 풍경, 바로 그것을 실현한다는 의미다.


  모든 풍경은 이 커플의 마음속에 다 있었다. 좀처럼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있던 그것을 나는 구체화하도록 돕는 것뿐이다. 그리고 등을 조금 떠민다.


  염려말라며.


  분명 아주 사랑스러울 거라고.


  그 모습은 일본의 소담한 가정집이었을 수도, 쇼와시대의 어느 카페의 무드였을 수도, 또는 다도실이라든가, 어쩌면 오타쿠들의 동아리방의 색채였을 수도 있다.


  일단은 다다미를 깔고 나면 생각이 잘 날 것 같다고 하니, 그렇다면 깔기로 한다.


  세상에, 다다미방에서 상담을 한다니, 대한민국에 이런 상담소가 지금 얼마나 있을까. 사실적으로 최초가 아닐까.


  다다미를 깔았으니 코타츠는 운명처럼 따라오기로 한다. 코타츠가 있는 상담소, 이건 예전에 내가 운영한 실존상담연구소에서 먼저 해봤다. 몸이 따듯해지면 마음의 해빙도 잘 일어난다.


  마스다 미리와 신큐 치에의 만화가 잘 어울리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녀들의 만화를 넣을 선반도 마련한다.


  전면의 들창을 열면 망원동의 하늘이 보인다.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팔고 싶다는 생각은 뜬금없지 않다. 분명 이 거리에 잘 어울린다. 순우유 아이스크림 위에 말차가루를 뿌린 콘을 들고 다다미 위에서 뒹굴거리는 일은 내가 먼저 해보고 싶다.


  그 어떤 상상이라도 좋았던 것이다.


  자신을 못난 존재로 여기며, 그렇게 자신을 끝없이 학대만 하다가, 이제 자신들을 꽃으로 피우고자 마침내 마음먹을 수 있었던 사랑스러운 한 커플에게는.


  지금 이 시간은 언제라도 눈에 선할 영원의 순간이 될 것이다.


  그 영원의 순간에 동행할 수 있는 감사한 기회를 얻게 된 첫째 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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