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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Mar 06. 2024

세상에 없던 마음공간을 만들어보자 #7

"일곱째 날"




  입구에 들어서면 바를 거쳐 자리로 이동가능하도록 동선의 가이드라인이 될 구조물을 설치했다.


  목공작업이 끝나고 칠까지 마무리되면 좌우에서부터 올라와 천장까지 가득 덮도록 식물들을 배치할 계획이다. 입장하는 이가 어떤 깊은 숲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비일상적인 것을 지향할수록 경험하게 되는 문제는 인적이 덜해진다는 것이다.


  마음을 깊이 이해하려는 이는 오늘날 거의 없다. 이 문제와 같다.


  기억과 판단의 사고작용에 의해 서사화된 여러 정신요소들을 분석한다고 그것이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일은 아니다.


  언어적 복잡성과 존재의 깊이는 실은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추구는 기억이라는 편집과 판단이라는 편견을 통해, 마음에 대한 이해가 더욱 얕은 차원에 고착되게끔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제 우리는 엄마아빠 얘기를 좀 그만해야 하고, 자기는 자기 형제자매와 다르게 얼마나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려 했는지 등의 얘기도 그만하면 좋다.


  결정적으로, 자기가 얼마나 깨어있는 의식을 갖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배려를 하며 사는 선량하고 똘똘한 사람인지에 대한 자서전들은 이제 그만 집필되어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프로이트(통속적인 맥락으로서의), 융, 라캉, 대상관계이론 등을 단번에 떠날 수 있다면, 우리는 제법 성공적인 일을 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심리학적 발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어가 과잉된 시대에는 문명의 자아도취가 일어난다.


  숲을 찾는 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숲 자체가 없어진다.


  그렇게 숲 자체가 별로 없으니 인적도 없다. 숲은 왠지 점점 더 가선 안될 곳처럼 되어버린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면, 마음의 숲을 여행하는 일에도 좋은 안내역들은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숲지기들이 하는 일은 철조망을 쳐서 아무도 숲에 들어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숲을 지키려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숲을 여행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잘 구성해 사람들이 숲을 더 많이 찾게 함으로써 숲을 지키려는 일이다.


  사랑이 숲을 지킨다.


  사랑이 마음을 지킨다.


  우리가 자신의 언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사랑으로 발견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마음의 숲이 우리에게 주는 은총이다.


  숲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자 들어가게 되는 공간.


  자기 자신을 한번 사랑해보겠다는 가장 신성한 용기로 펼쳐지는 시간이다.


  의외로 숲을 깊이 들어가보면 그곳에는 집이 있다.


  내가 태어난 집.


  내 모든 것이 시작된 바로 그 요람.


  바로 그 존재.


  안쪽 공간에는 숲속 통나무집에 들어온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낙송으로 바닥부터 벽까지 다 발랐다. 바닥재로 추천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선택도 세상에는 있었다. 그 위에 샤기한 질감의 러그를 깔 것이고 등받이 쿠션과 방석을 마련할 것이다.


  날 것이면서도 이용자친화적인 어떤 것으로, 즉 자연과의 조화를 포기하지 않은 문명의 어떤 몸짓으로 경험될 수 있다면 좋겠다.


  인간은 분명 그런 방식으로 존재해왔으며, 그렇게 우리는 이제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까닭이다.


  어여쁜 마음으로 사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일곱째 날은 바로 그 일을 돕기 위한 마음공간의 표식들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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