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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Mar 08. 2024

세상에 없던 마음공간을 만들어보자 #9

"아홉째 날"




  오늘로 목공일이 다 끝났다. 테이블도 다 짜고, 남는 자재로 여기저기 벽에 붙여 질감을 냈다.


  전기도 배선을 다 끝냈고 이제 남은 것은 공간을 칠하는 일과, 집기류 및 오브제들의 배치다. 그리고 식물들을 아주 많이 구해 다시 풍성한 숲의 느낌을 내는 일이다.


  내일은 일단 쉬어가며 보다 명료한 형태로 공간의 최종그림을 정리하려 한다. 마침 집청소도 해야 할 때다.


  버릴 것을 좀 더 버려야 할 것이다. 지금 갖고 있는 옷의 절반은 버리고 싶다. 낡은 고양이용품들도 정리를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펼치는 일과 오래된 것을 버리는 일은 언제나 동시적이다.


  16년의 상담경력으로 내가 배우게 된 것은, 사람에게는 무엇인가를 잘 얻는 일보다 잘 버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상담은 근본적으로 애도상담이자 진로상담이다.


  오래된 것을 잘 버리지 못해서, 또 새로운 것을 잘 펼치지 못해서 문제가 생겨난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부모와의 충돌이 잦아지고 부모에 대해 이유없이 불만족의 짜증만 계속 생긴다면, 그는 지금 부모를 떠나 독립해야 할 때다.


  부모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형상으로 부모가 변화된다 해도 그가 만족될 일은 없다.


  이것은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크기의 문제다.


  주변에서 자꾸 잔가시처럼 자신을 성가시게 괴롭히는 것 같은 쪼잔하고 복잡한 일이 거듭 생긴다면 우리는 아마 그 장을 떠나야 할 때인지 모른다.


  또는 자신의 존재론적 위치가 이동해야 할 때다.


  이러한 장면들에는 불안이 존재한다.


  자신이 커졌기 때문에 주변에서 자신을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익숙한 통제 안에 다시 집어넣으려고 귀찮게 만드는 경우들은 빈번하다.


  성장, 발달, 성숙, 어떤 단어로 표현해도 좋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조금 더 커졌다는 것은 우리가 조금 더 낯설어졌다는 뜻이다.


  그럴 때 우리가 우리의 현재 크기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버리는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했던 낡은 것들을 버림으로써 현재 자신의 크기를 우리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것들이 사라져 생겨난 공간이, 그 공간의 크기가 이제는 커진 자신에게는 더 편안하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나에게도 낯선 내 자신을 사랑한다는 의미다.


  더 크게 열린 공간 속에 자신을 허용한다는 것이며, 바로 그런 공간의 크기를 자신의 내면에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큰 마음으로 사는 사람의 모습이다.


  자신의 크기에 맞지 않는 의자에 계속 앉아 있다면 짜증이 날 것이다. 피곤하고 성가시게 경험될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많은 경우가 이와 같다.


  현재 자신의 크기에 맞지 않는 작은 마음의 형상을 자꾸 자기 마음이라고 고집하고 있어서다.


  그렇게 너무 짜증만 내지 말고, 이제는 내가 더 열린 공간으로 이동해야 할 때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더 크고, 더 낯선, 그리고 더 자유로운 어떤 그림.


   , 그런 그림을 다시 기억해보기 위해 내일은 쉬어가자고 생각했다.


  적재된 것을 넓게 풀어내며 마음공간도 더욱 편안하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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