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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공간 #1

"나는 살아지기로 했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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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고, 언제나 동일한 벽에 막히게 하고, 흡혈귀처럼 내 자신으로부터 생기와 활력을 앗아가는 그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이것이 나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것은 오늘날의 인간이 처한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한계에 함께 시름하고 있다. 내가 뚫을 수 있다면 인간 모두는 다 뚫을 수 있다. 나는 그 현실을 원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문제이고, 나의 한계다. 나는 인간이다.


나의 한계란 언제나 나의 인식의 한계다.


인식을 좁아지게 하는 어떤 기제가 분명 있다. 어떠한 강박이, 또 어떠한 당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이 답이다.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은 보호하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어떤 수호의 의도가 존재한다.


나는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내게 소중하고 중요한 그 무엇을 지키고 있다. 모든 사유와 발상은 다 이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만 종속된다. 그러니 언제나 동어반복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이제는 아무 것도 흐르지 않는다. 새로운 수로는 봉쇄되고, 설령 작은 물줄기가 생겨나더라도 이내 말라버린다.


건조한 열기만이 가슴속의 초조함이 되어 영혼을 달군다. 메말라가는 것은 한여름의 열기 탓이 아니라, 답이 정해진 현실 때문이다.


답은 사라질 수 있는가?


그리고 뒤집는다.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답을 만든 것이다.


나는 이제 거의 도달한다.


사라지게 하지 않으려고 인간은 그의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다. 오직 그 수호의 일에만 모든 에너지가 쓰인다. 나중에는 왜 지켜야 하는지의 그 절실함이 가장 먼저 사라져 있지만, 다만 지켜야 하니까 지킨다는 공허한 울림만이 명령어가 되어 있다.


나는 지금 확신할 수 있다.


사라지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살아지지 못한다.


삶을 붙잡고 있기에 삶은 흐르지 못했던 것이다.


'사라짐'과 '살아짐'은 동의어다. 하나를 가로막으면 다른 쪽도 피어나지 못한다. 나는 늘 그렇게 써왔다. 그리고 그게 정말로 사실임을 정확하게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배움에 근거하여 나는 이제 선택한다.


나는 살아지기로 했다.


무엇인가를 지키는 쪽으로부터의 방향전환, 의식의 전환이다.


나는 사라지는 쪽을 택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지키면서 내가 살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가치있는 것의 수호자가 됨으로써 자기 삶의 주체가 되었다고 간주한다. 그러니 지킬 것이 있는 동안 그는 자기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착각을 계속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무엇인가를 지킬 수 있는가?


심지어 나는 내 자신조차 지킬 수 있는가? 곧,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끝은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끝은 나의 밖에서 정해져 있다.


나는 내가 살다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초월한 어떤 원리로 살아지고 또 사라질 뿐이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니.


내가 무슨 수호의 노력을 하든 사라질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된다니.


그 사라짐[살아짐]의 이유가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니.


이로써 나는 완벽하게 자유다.


끝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해도 될 것이다. 어떤 것을 해도 그 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끝이라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


나는 정말로 자유다.


수로가 사방으로 뚫리기 시작한다. 물길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라지는 것이 기정사실이 된다면 인간은 그때서야 살아진다.


삶은 다시 인간에게로 찾아든다.


살지 말고 살아지면.


이것이 아주 오랜 시간 정체된 늪에 함몰되어 있던 인간이 찾던 새로운 삶의 방식임을 나는 확인한다.


이제 우리는 살아지는 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 하루하루 힘겨운 수호와 연명의 시간을 사는 대신에, 미친 반짝임처럼 영감가득하고 창조적인 순간을 살아질 수 있다.


사라지기를 선택하면, 아니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다만 사실을 사실로 이해하고 그 위에 서기만 하면, 막혔던 모든 벽은 그 순간 문이 되어 우리 앞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삶의 활기 속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나는 이제 내가 속했던 모든 자리, 내 질량을 담고 있던 모든 공간을 사라질 것으로 바로 이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정말로 그것들을 살아질 것이다.


내가 속했고, 내가 사랑한 모든 공간은 이제 시한부공간이다.


나는 시한부공간에서 산다.


나는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나는 그것과 살아질 것이다. 함께 맞는 사계절을 생생할 것이다.


무슨 허약체질처럼 내가 지키고자 했던 그것들은 정녕 얼마나 강했던 것인지.


처음부터 내가 지킬 필요조차 없던 것이겠지.


그 끝이 분명하면서도, 어떤 위축됨과 기죽음 없이 그것들은 지금 이토록 담대하게 빛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네가 한정된 너의 시간을 정성으로 바꾸어 빛낸 바로 그 빛이야."


그것은 내 마음의 빛.


더는 사라질래야 사라질 수도 없고, 굳이 살아질래야 살아질 수도 없는 것이다.


이제 그것은 가장 완전하고, 또 영원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속에서.


인간은 이제 삶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배웠다.


살아짐을 통해 영원에 이르는 길을.


조금 미쳤지만 아주 멋진 어떤 삶의 방식을.


나는 그렇게 살아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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