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도 놀 수 있다고?"
돈뿐일까? 정말로 돈뿐이겠는가?
학력이 안되어서, 직업이 없어서, 글을 못써서, 얼굴이 별로라서, 옷을 못입어서, 언변이 유창하지 않아서, 키가 작아서, 집이 월세라서, 차가 없어서,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어서,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라서 등등, 더 무수하지 않은가?
우리가 놀 수 없게 되는 조건이란.
놀아서는 안된다고, 지금은 놀 때가 아니라고 믿는 조건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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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놀려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지구가 소멸되기 전에 그런 날은 올까.
우리가 자격을 갖추게 되는 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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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놀아도 되는 어떠한 자격을 갖추어야만 우리가 놀 수 있다는 조건화의 저주.
그러나 전해지기로는 지금껏 인류의 역사속에서 조건을 달성하여 저주를 해주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설령 조건을 성취했다 하더라도, 조건거래의 보상으로 얻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고도 또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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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희망이다.
이 실제적인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지 않고, 도처에 깔려 있다. 그 어떤 어둠의 저주라도 반드시 빛으로 뒤덮겠다는 듯이, 햇살처럼 숨긴 데 없이 사방을 비춘다.
우리에게는 이 마음이 있었다.
서로를 비추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어떤 자격이 없어도,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을 표현하고 그 심정을 나누며 놀 수 있다. 서로를 빛으로 비출 수 있다.
나는 들었다. 나는 분명하게 들었던 것이다.
가장 깜깜하고 어둡던 저 수용소 안에서 들리던 노래를.
오늘도 옆자리의 친우들이 가스실에서 사라져갔을 때, 그날밤도 그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원을 그리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게 예스라고 말하겠다며───
어깨를 들썩이고, 울고 웃으며,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인간을 주장했다.
그 어떤 무력함의 고통과 비참한 절망 속에서도 그들이 여전히 놀 수 있음으로써, 그들은 가장 인간이었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패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놀 수 있음으로써.
놀아야 산다.
그들은 놀아서 인간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 인간의 얼굴이, 바로 그 희망이, 빛이 들지 않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서로를 비추고 있었다. 내일을 꼭 함께 살아가자고 희망하며, 인간의 삶을 미래로 연결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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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은 그렇게 자신이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콘돔이라고도 그는 전했다. 연인끼리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며 놀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며.
사물처럼 무심하게 소각로에 던져진 그것은 한때는 소중한 이의 부드러운 몸이었다. 더 많이 함께 놀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그 모습이 떠올라, 나는 그 말에서도 괜히 또 울었다.
콘돔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라는 글귀에 눈물을 적시고 있는 내 모습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그 또한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은 놀이.
인간은 어떻든 간에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울고 웃다가, 마침내는 미소지을 운명이다.
돈뿐이겠는가?
다 없어도, 마음이 있어서다.
인간이 인간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많이 함께 놀고 싶다고 전하는 그 희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