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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Sep 17. 2024

마음마을 다이어리 #3

"만남"

핀란드의 일러스트레이터 헤이칼라(Heikala) 님의 그림



  이 말만은 꼭 해두고 싶은 거야.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를.


  세상 어느 곳에서도 너를 찾을 수 없어 나는 많이 속상했어. 또 많이 기다렸지. 언젠가는 네가 찾아와줄 그 날만을.


  물론 그런 날은 오지 않았어. 언제나 불꺼진 내 방에는 나 혼자뿐이었고, 나는 무척 외로웠어. 가슴은 몹시도 답답하고, 이대로 무의미하게 내 삶은 끝나게 되는가도 싶었어.


  어떤 날은 그런 심정들이 왈칵 터져나와 내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폭발이 되어 주변을 뜨거운 잿빛의 용해물들로 덮어갔어. 꾹꾹 눌러담은 상자처럼 나에게서 결코 소화될 수 없었던 그 심정들, 그래서 그냥 토해낼 수밖에는 없던 그 서러움들 말이야.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둘 나를 떠나갔고, 나는 진짜로 혼자라고 느꼈던 것 같아.


  내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어.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는 분화가 끝난 후에는 그렇게 텅빈 채로 남아있게 된 그 구멍만이 내가 얼마나 못나고 한심한 존재인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았지.


  아마도 나는 평생 이렇게 살게 되겠지─────.


  하루종일 영원한 공허함의 증거인 것만 같은 그 구멍을 우두커니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아니 그 일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 나는 문득 이해할 것만 같았단다. 마침내, 라고 해야 할까.


  소리없 일어서서 나는 발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몸을 던졌지. 구멍 속으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일, 어쩌면 세상 모두를 위해서 가장 좋고 올바른 일을 나는 처음으로 했던 것이라고 생각해.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끝날 거야. 다들 미안했어요. 다시는 오지 않을 게요. 죄송해요.'


  그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떨어져갔어. 어쩌면 찰나였는지도 몰라. 아니 시간이 멈추어있던 감각이 더 맞을지도 몰라.


  내가 충분히 생각하고, 이런저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살아온 일들을 전부 되돌아볼 만큼 낙하의 시간은 충분했어.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아. 거기에는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내가 어떤 눈치도 볼 필요없이 충분히 생각해도 된다는 어떤 허락이 있었어.


  그러다가 결국 나는 떠올린 거야.


  너를.


  그래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왈칵, 공허함으로 메말라있던 내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오르고, 그 순간 내 귀에 울려퍼졌지.


  첨벙, 온몸이 그 소리에 휩싸였어.


  조금도 무섭거나 위협적이지 않았단다. 아주 따듯하고 기분이 좋았어. 나는 그 부드러운 물속으로 깊이 잠겨갔지. 어쩌면 이런 말도 좀 이상할 거야. 나는 그때 이 물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느꼈어. 나는 용서받는 기분이었어. 어떤 따듯한 생명의 빛이 내 온몸을 감싸주고 있는 것 같았지.


  그 순간 나는 이해할 수 있었어.


  나를 받아준 것은 나의 눈물.


  내 마음 깊은 곳은 이 눈물로 가득 차있던 거야. 내가 그동안 외롭고 속상해서 또 아파서 흘린 그 눈물들은 한 방울도 잃어진 적 없이 흘러와 다 여기에 모여있었어. 아주 깊고 큰 바다가 되어.


  마음이 종종 분화구를 만들었던 것은 아무 것도 몰랐던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또 내가 해야 할 정말로 올바른 일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해하겠니?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내 자신을 던졌던 거야. 나의 모든 마음이 흘러가는 곳, 바로 나의 바다에.


  나는 이제 아주 용기있었어. 처음으로 정말 살고 싶다고 힘을 내었단다. 이제 가능하니까, 더는 불가능이 아니니까.


  모두의 마음은 다 바다로 흘러가고, 누구에게나 가장 깊은 곳에는 그 바다가 있으니까. 동일한 그 바다가.


  ────그렇게 지금 나는 너에게로 온 거야.


  세상 어디에서도 서로를 찾을 수 없었던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만나게 된 거란다. 마음 가장 깊은 곳 그 바다를 건너, 너를 그리워하며 흐르던 그 따듯한 눈물을 따라, 너무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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