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게 이어진 것"
그대는 이 모든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집이든, 학교든, 회사든, 그대가 속하게 된 그 어느 곳이든 간에, 그대가 하고 싶은 것들을 가로막는 그 모든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들은 못하게 하면서, 하기 싫은 것들만을 하라고 요구하는 듯한 세상에 그대는 지치고 힘들어졌다. 이 억압적인 통제의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그대는 규칙들을 하나씩 깨나가기 시작했다. 때로는 대로변에서 노골적으로, 때로는 뒷골목에서 은밀하게, 그대는 그대에게 금지된 금기들을 하나씩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대가 두근거리며 선을 넘었던 첫경험의 끝에 발화된 대사는 분명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뭐야, 별 거 아니었네."
나아가, 오히려 그러한 규칙의 파괴는 그대에게 즐거움마저도 주는 듯 싶었다. 그 즐거움의 공기로 그대는 온 몸을 가득 채워갔고, 풍선처럼 그대의 몸은 부풀어올랐다. 그러한 그대의 입에서 말이 나올 때면, 언제나 그대 안을 높은 밀도로 메우고 있던 공기가 압력솥의 증기처럼 함께 빠져나왔다.
때문에 그대의 말은 늘 셀 수밖에 없었고, 그대의 태도는 늘 센 척일 수밖에 없었다. 그 세기는 분명 텅빈 공기로 만들어진 세기, 곧 허세였다.
그대여, 아마도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그대가 반항아라고 불리게 된 것은. 또한 그대에게 붙여진 그 이름을, 그대가 자유인이라고 알아 들으며 내심 즐거워하게 된 것은.
이처럼 더 커진 즐거움은 그대 안을 더 가득 채우는 공기가 되었고, 그만큼 그대의 허세 또한 더 커져만 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그대의 허세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대를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자신들은 하지 못하는 규칙의 파괴를 용감하게 이루어가는 그대를 보며, 사람들은 기꺼이 '좋아요'를 클릭함으로써 그대에게 응원과 자원을 제공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호응하여, 그대는 더욱더 파격적으로 되어 갔으며, 끝내는 사람들의 금지된 소망을 대신 만족시켜주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익살꾼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대여, 이것이 바로 역사다.
갑갑한 통제 속에서 그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자유를 꿈꾸었던 그대가, 정확하게 그대 자신을 잃게 된 바로 그 역사다.
그리고 그대가 이러한 자기상실의 역사를 이해했을 때,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대는 이제 사람들로부터 일방적으로 강탈당하지 않기 위해, 면밀한 경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갑과 을의 역학에 대해 그대는 더욱 날카롭게 예민해졌으며, 결코 을로서 얕잡아보이지 않기 위해 그대는 더욱 철통같이 견고해졌다.
그대가 통제의 세상에 반항하며 어렵게 쟁취해낸 자유를 이제 다른 이들이 쉽게 남용할 수 없도록, 그렇게 그대는 그대 자신을 지킬 여러 규칙들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규칙들을 통해, 그대 자신과 다른 이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데 열중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그대가 독재자라고 불리게 된 것은. 또한 그대에게 붙여진 그 이름을, 그대가 자유인인 자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알아 들으며 불같이 화를 내게 된 것은.
그대여,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역사다.
남용의 자유 속에서 그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통제를 꿈꾸었던 그대가, 정확하게 그대 자신을 잃게 된 바로 그 역사다.
이처럼, 통제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의 현실을 꿈꾸었던 그대가, 이제는 그 자유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제의 현실을 꿈꾸게 되었다. 통제된다고 생각했던 그대가 어느덧 통제하고 있었다. 반항아는 곧 독재자였다. 누구보다도 맹렬한 규칙의 파괴자는, 누구보다도 열렬한 규칙의 신봉자였다.
그래서 이 두 역사는 하나의 의미만을 향한다.
그대는 통제가 그대를 죽이는 것만 같아 자유를 꿈꾸었다. 그대는 자유가 그대를 죽이는 것만 같아 통제를 꿈꾸었다. 그렇게 그대가 반항아가 된 것은 그대를 살리기 위해서였고, 그대가 독재자가 된 것은 그대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대여, 그대는 살고 싶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살리고 싶었다.
그대가 살기 위해서, 어떤 때는 가위가, 또 어떤 때는 밧줄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자유와 통제의 목적은 같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의미만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귀한 그대 자신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끊길 수 없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대가 해온 모든 일은, 그대가 써온 모든 역사는, 오직 이 하나의 의미만을 향했다. 그대 자신이 결코 잃어질 수 없으며, 그렇게 그대 자신이 늘 이어져야 할 가장 귀한 이라는 사실만을 개방했다.
이를 은유하자면 이러할 것이다.
신은 자유를 통해서도 "그대가 결코 잃을 수 없는 내 전부다."라며 그대를 향한 사랑을 전했던 것이고, 또한 신은 통제를 통해서도 "그대가 결코 잃을 수 없는 내 전부다."라며 그대를 향한 사랑을 전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대는 자유와 통제, 또는 그밖의 어떤 것으로도 지켜지고, 또 이어질 존재다. 그 어떤 것으로도 사랑받을 존재다.
그대여, 그러니 그대만 이해하면 된다.
그대만 진실로 이해하면 된다.
그대가 그 모든 것으로 다 사랑받을 만큼, 얼마나 사랑스러운 이인지를, 그대만 진실로 이해하면 된다.
이해했다는 그대의 대답이, 그대가 진실로 이해했다는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해했다는 그대의 표정이, 그 현실을 만든다.
표정은 표현이다. 그대가 진실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대가 진실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든 진실은 수줍다. 그것이 소중한 만큼이나 표현된 그 표정은 수줍다.
그대여, 수줍게 웃으며 그대 자신이 대체 얼마나 어여쁘게 지켜져온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것, 이것이 전부다. 그렇게 지금껏 소중하게 이어져온 그대 자신을 소중하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그대가 쌓아온 역사는, 이미 그대 자신이 어떻게 사랑받아 왔는지에 대한 표현들이다.
그래서 그대의 역사는 표정을 담고 있다. 반항아도 수줍고, 독재자도 수줍다. 그대 자신을 향한 사랑으로만 마냥 수줍다.
그러나 그것은 수줍지만 꿋꿋하다.
그것은 꿋꿋하게 늘 그대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다 별 것이 아니고, 오직 그대만이 별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대가 이처럼 이 별의 아이인 까닭에, 집이든, 학교든, 회사든, 이 별 위에 있는 그 어느 곳이든 간에, 그대는 그곳에서 결코 잃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대의 역사는 말한다. 그대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도, 또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여부는 이 별이 이어온 가장 소중한 존재가 바로 그대라고 하는 진실의 일에 단 1mg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대의 역사는 말한다.
그렇게 그대의 역사가 증거하는 이 별의 사실 또한, 수줍지만 꿋꿋하다.
그대가 늘 부조리하다고 말하며 그 사실을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별 역시 꿋꿋하다.
아침에는 햇살을 보내고, 밤에는 달빛을 보내며, 흐릿한 날에는 비로 전하고, 추운 날에는 눈으로 전한다. 그렇게 이 별도, 때로는 그대에게 반항아로서, 때로는 그대에게 독재자로서, 그 모든 것을 통해 그대에게 끊기지 않는 연애편지를 쓴다. 그대가 이어온 그대의 시간과, 그대를 이어온 이 별의 시간은, 바로 그러한 연애담이다. 자유와 통제의 움직임들을 서로 교차해가며, 오직 단 한 가지, 그대를 어여삐 살려야 한다는 소망만을 끝없이 이어 노래하던 러브송이다.
그대의 역사와, 이 별의 자연사는 이처럼 이어진다. 한 목소리다. 티라노사우루스의 포효도 분명, 그대를 향해 마냥 수줍은 그 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그대를 향한 그 수줍은 모든 역사의 표정 앞에서, 부디 알아들은 표정을 지으라.
"제가 바로 그이에요. 제가 바로 여러분 모두가 소망하던 그이에요. 모두가 살리기를 바라며 삶을 이어준 제가 바로 그이에요."
그렇게 이제 진실로 이해한, 진실의 표정을 지으라.
다만 수줍게 웃으라.
그대가 언제나 간절히 원하던 유일한 것, 가장 하고 싶던 모든 것, 그것은 바로 그대가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었다. 그대는 반항아로든, 독재자로든, 그밖의 무엇으로든, 오직 그 한 가지만을 하고 싶어했다.
그 하나의 답이, 이제 그대의 수줍은 그 웃음 속에서 증거된다.
그대가 바로 그이다.
그래서 그대의 웃음만이 다시 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