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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중의 올림픽

"자, 진짜 혁명을 시작해보자"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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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같은 인간의 주요한 행사들이 무관중으로 진행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혁명적인 소식이다.


지금은 더는 인간이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바이러스가 주인공이다. 성화는 마치 바이러스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 점화되는 듯하다.


이러한 바이러스는 관심종자의 모습이다. 자신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행위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자신만이 과도하고 무리하게 이 세상의 중심이 되려는, 곧 모든 관심의 초점이 되려는 바이러스는 역설적으로 무관중의 현상을 낳게 된다.


이는 마치 어벤져스들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매일같이 도시를 다 때려부수는 일을 반복할 때, 결국 시민들이 아무도 거기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이 바이러스의 모습, 즉 어벤져스의 모습은 아이가 엄마에게 자신이 중요한 정의의 용사니까 매순간 자신만을 봐달라고 떼쓰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때로는 방을 일부러 어지른 뒤 모범적인 미소를 지으며 깨끗하게 청소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필적 고의로 접시를 깨트린 뒤 다시는 이러한 못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아랫턱을 꽉 다물며 불굴의 지사처럼 맹세를 이루기도 하고, 그러다가 때로는 바로 이와 같이 훌륭한 자신의 모습을 봐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하는 등, 아이는 어떻게든 엄마의 관심을 얻어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정치가 이러하다. 특히 오늘날의 정치는 더욱 이러하다. 문화권력을 통해 자신에게 관심이 주어질 수 있는 소재들을 더욱 활성화시키며, 바로 그렇게 관심이 자신에게 왜 주어져야만 하는가에 대한 정당성을 마치 필연인 것처럼 확보하고자 한다.


이것은 흡사, 반항적인 지적 혁명가처럼 행세하는 아이언맨의 모습과도 같다.


소위, 강남좌파라고 지칭되는 이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이권과, 자신이 확보하고 있는 문화권력 및 진보적 지성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자신의 인정욕과 권력욕을 세련되게 포장함으로써, 결국 실리와 명예를 동시에 챙겨내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마치 기개와 풍류를 함께 갖춘 선비와 같이, 내적으로는 위대한 인간의 스승으로, 그러나 외적으로는 겸손하게도 사람들의 좋은 이웃인 것처럼 상정하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이어받을 제자를 키워내려고 한다.


곧, 아이언맨이 스파이더맨을 키우는 모습이며, 이 강남좌파들이 젊은이들을 자신과 같은 운동권의 향수(실제로 그렇게 살아 그 몸에 체현된 체취가 아니라, 다만 그 분위기를 탐미하는 향수)를 공유하도록 젊은이들로 하여금 더욱 정치적 투쟁에 몰입하게 만드는 모습이다.


마치 우리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일은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일, 즉 정치적인 인간이 되는 일인 것처럼 조장하는 프레임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혁명이라고 말한다. 보다 정치적인 인간이 되는 일이 혁명가가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그렇게 혁명적으로 살았으니, 너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선전에 따라, 강남좌파, 또는 진보로 위장한 사이비진보, 또는 누구보다 보수적인 기득권이 되었으나 그 사실을 결코 인정하거나 자각하려 하지 않는 586 정치담론의 봉사자들이 갖는 그들의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를, 그러한 삶의 방식을, 지금의 젊은이들이 예찬하며 그 자신의 삶으로 재생산하게끔 하는 데 젊은이들의 모든 에너지는 착취된다.


그 착취자들의 소싯적 모습처럼 사는 일이 마치 진정한 보편적 인간으로 사는 일인 것처럼, 이를 지지하는 진리담론이 문화권력을 활용해 구성되고, 그 진리담론의 은밀한 통제 및 처벌의 규제에 따라, 결국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을 버리고 남의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를 소외시키게 된다.


그럼으로써, 이 세상에서 정말로 유일하게 중요한 일, 바로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여기에서 구원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같은 의미를 담아 이렇게 바꾸어 표현해볼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그것은 자신이 사랑받는 일이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태어나서 정말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언맨이 된다고, 또는 아이언맨을 흉내낸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아이언맨의 삶을 따라 산다는 것은, 586 정치담론의 봉사자들이 어린 시절 자기 부모세대에게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관심과 애정을, 나이를 먹은 뒤에도 여전히 요청하고 있는 삶의 형태를 똑같이 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인 나이를 먹은 만큼, 그러한 관심과 애정을 요청한다는 일이 그들에게는 유치하고 부끄럽게 여겨지는 까닭에, 그 정직한 의도는 은폐되며 고상한 대의로 점잖게 포장된다.


즉, 이 의도는 실제로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제공할 엄마의 대리물처럼 놓고서, 그 엄마가 자신에게 웃어주기를 기대하며 그 앞에서 예쁘고 똑똑한 아이로서 행세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와 같은 아이의 의도는 마치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인 대의인 것처럼 탈바꿈되어 행사된다.


이를테면 이는, 내가 너희를 지켜줄테니, 다른 이가 아닌 바로 그러한 나를 지켜보며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주객이 전도됨으로써 기만적으로 변하게 된 이 의도의 굴절은, 사이비영성판이든, 종교판이든, 정치판이든, 예술판이든 간에, 광신적인 컬트현상으로 드러나는 모든 사건의 심층부에 자리잡고 있는 굴절이다.


그러나 이 의도의 굴절되지 않은 가장 정직한 형태는 바로 다음과 같다.


"날 좀 사랑해줘."


이처럼 강남좌파가 꿈꾸는 것 또한 사실은 자신의 구원이다. 자신이 사랑받는 일이다.


바로 이렇게, 사실은 드러난다.


강남좌파는 자신이 사람들을 구원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그를 구원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 어떤 586 정치담론의 봉사자들도, 사이비진보도, 강남좌파도, 사람들을 구원할 힘이 없다. 오히려 그들 자신이 사람들에게 인정과 관심을 바라며,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아이언맨들은 결코 구원자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나의 삶을 온전하게 만들 수 있는 혁명가가 아니다. 이것이 사실이다. 혁명가의 상징처럼 회자되는 체 게바라도 이 사실에 대해 고백한다.


"저는 결코 여러분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만이 여러분의 구원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더는 이 사이비혁명세력들에게 우리의 힘을 제공하는 일을 멈추고, 바로 그 힘을 우리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도무지 사랑할 가치가 없게 느껴지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우리 자신을, 한번 기적처럼 사랑해보고자 하는 진짜 혁명을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혁명이 아니다.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진짜 혁명이다.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짜 혁명이다.


그래서 혁명은 언제나 자기의 혁명이다. 모든 실존철학자는 이 자기의 혁명을 말한다.


그것은 곧 사랑의 혁명이다. 우리 자신이 사랑받는 사랑의 현실을 향한 혁명이다.


무관중 속에서도, 무관심 속에서도, 인간은 사랑받을 수 있다. 아무리 못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인간의 모습으로 드러난 자신을 기적처럼 사랑할 수 있는, 바로 내가 있는 한, 무관중 속에서도 성화는 빛난다.


이 우주에서 더없이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가 바로 인간임을 알리는 그 사랑의 불꽃을 눈부시게 피워올린다.


이 거룩한 불꽃의 점화를 시작하는 일, 가장 온화한 사랑의 혁명을 시작하는 일, 이것만이 우리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라도 사랑받아야 할 존재가 바로 인간인 우리 자신임을 알리기 위해, 이 위대한 혁명을 이루기 위해,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그렇게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이 진실한 혁명가로 태어났다.


그러니 이제 시작해보자.


사랑받을 자격을 도무지 갖지 못한 이 못난 인간을, 그래서 지금껏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착취하고, 협박함으로써 사랑을 얻어내려 해온 이 비루한 자신을, 혁명처럼 한번 사랑해보자.


절대로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이, 절대적으로 사랑받게 되는, 진짜 혁명을 한번 시작해보자.


사랑이라고 하는 인간의 유일한 행사를 아무도 없는 무관중의 우주 속에서 진행해보자. 그럼으로써 그 혁명적인 소식으로 이 우주를 가득 채워보자.


그것이 곧 우주적 혁명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 이것은 곧 우주적 혁명이다.


이 놀라운 일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산소를 공급해 성화의 불길을 더 생생히 살리고 있는 것이다.


불길은 꺼질 수 없다. 삶은 그칠 수 없다. 혁명은 멈출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이 성화봉송의 달리기는 결코 멎을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 우주의 주인공으로 알리고자 하는 이 사랑의 올림픽은 결코 폐회될 수 없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감히 사랑하고자 하는 일을, 결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자, 이제 진짜 혁명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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