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 연애학 #1

"너는 내 마음"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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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별로 선불교를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자어로 된 어떤 관념적 표현들이나 의미심장해보이는 수수께끼 같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 같아서다.


실은 별로 연애를 얘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상대가 나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법이라든가, 상대를 나에게로 끌어오는 체계적 전략 같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개량한복을 입고 클럽에 가서 "동쪽으로 팔을 뻗어 서쪽에서 그 머리가 잡히는 것이 있으니, 주인 없는 길을 주인으로 가고 있는 그 놈이 대체 누구냐?"라고 호통치듯 물으면, 섹시한 이성이 헉 하며 털썩 주저앉더니 막 울면서 "엉엉, 나 오늘 오빠랑 모텔 갈래요. ㅠㅠ"라고 하는 이런 것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지 않겠는가?


어떻든 기본적으로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럼에도 우리는 괜히 말한다.


되도 않는 것을 말하며, 하나마나한 것을 말한다.


말은 다 핑계들.


우리가 한번 친해져보기 위해 그냥 대는 핑계들.


마음이 넘쳐서, 그 마음을 전하고자 말을 건다.


그러니 아무 말이나 상관없을 것이다. 성립될 수 없을 것 같은 말이면 더 좋다. 마음은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말의 틈새로 전해진다.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말을 해야 말의 틈새라는 것도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말의 틈새에는 언제나 웃음이 있고, 또 눈물이 있다.


내가 너와 친해진다는 것은 너의 웃음과, 또 너의 눈물과 친해진다는 것. 그것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며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


또 그것이 나의 웃음과, 나의 눈물이 된다는 것.


넘치는 마음을 타고 너와 친해져가며, 너와 친해짐으로써 나는 내 마음과 친해진다. 울고 웃는 그 얼굴과 닮아간다.


이것은 괜히 하는 말.


친해지자고 다만 하는 말.


그러니 말을 넘어서 이루어지는 그 친교의 연애활동.


너와 가까워지는 연애는 내 마음과 가까워지는 연애다. 그 둘은 다르지 않고 똑같은 것이다. '너'와 '마음'은 말로는 다르지만 실은 완전히 같은 것.


내가 사랑하는 너는 내 마음이다.


이 괜한 말에 이름을 붙여봐서 <선불교 연애학>이라고 괜한 제목을 삼는다.


다 너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말이다.


너도 이 마음이라고 함께 웃고자, 또 따듯한 눈물로 흐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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