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이름"
중생은 어디에 있는가?
사방도처에.
그리고 내 마음속에.
사방도처에 있는 그 모습들과 똑같이 내 마음속에 있다.
내 안에 모든 사람이 있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어떤 여분의 말도 필요하지 않다. 말로 메워야 할 만큼 그에게는 부족하거나 못난 구석이 없다. 그는 지금 완벽하다. 인간의 정수다. 스스로 배우고 있는 자다.
사방도처라는 우주에 모든 것이 담겨있듯이, 우리의 마음속도 동일한 우주다. 그 안에는 밖과 똑같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우주 안에 살아가는 인간이 동시에 자신의 가슴 안에 우주를 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인간은 이렇게 그 자신의 내면에 우주를 만든 것일까?
배우고 싶어서였다.
이 우주가,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궁금했던 이는, '왜 아무 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토록 절실했던 이는, 결국 그것과 똑같은 것을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 두어서 즐겨 본다.
가슴속의 그 모든 것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관찰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속한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긍정하고, 또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배움의 결과라는 것이 언제나 사랑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것 또한 한번 좋아해보고 싶어서 그것에 대한 배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더 많이 좋아해보고 싶어서 우리는 배움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중생이란 우리가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가장 배우고 있는 이의 이름.
그 가슴속이 모든 사람으로 가득 차있는 이는, 그 모든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 자신이 모든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일치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더욱 미소짓게 되는 그 일을 향해 펼쳐질 때, 우리는 결코 틀리는 법이 없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이 가장 먼저 웃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치된 일. 배움은 우리가 우리 안의 모든 사람과 일치하고 싶어서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 미소와 더욱 하나가 되고 싶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내 안의 모든 사람이 웃고 있어서, 나도 웃고 있다.
우주가 그 미소 하나만으로 꽉 찬다. 이 우주의 누구도 부족하거나 못나지 않았다. 이 우주의 어느 누구라도 그 온전한 빛 속에서 결코 부족하거나 못난 법이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정말로 배워야 했던 유일한 것, 정말로 배우고 싶던 모든 것.
중생이란 바로 그러한 배움의 이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