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시절 #4

"삶의 중심에서 무엇을 외칠까?"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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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왜 이렇게 혼란스러울까? 왜 이리도 정신없이 돌아간단 말인가? 비명이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것은 우리 자신일 수 있다.


우리가 혼란스러울 때를 보면, 거기에는 분주한 몸짓들이 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제자리'에 앉히고자 하는 그 소란스러움이.


그렇게 흡사 우리가 구상한 소설 속 등장인물과 사물들이 제대로 된 자기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며 소설의 성공적인 전개를 위해 기능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 우리는 여지없이 혼란스러워진다.


그 모든 것은 제멋대로 뛰쳐나가 우리의 소설을 망치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는 80억 명의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의 상황 같은 것이다. 정신없이 쫓아다니며 하나를 겨우 자리에 앉히면 나머지가 침대를 뒤엎고, 바닥에 구멍을 뚫으며, 냉장고 위에 올라가 점프를 하고 있다. 총체적인 난국, 총체적인 혼란이다.


이순간 분명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잃었다. 이처럼 우리 자신의 삶을 잃어서 삶은 혼란스러운 것으로 경험된다. 망망대해에서 갈피를 못잡는 나뭇잎배와 같이.


어쩌면 우리는 오해했을 수 있다. 삶이라는 것을 어떤 소설 같은 스토리라고 생각해서, 모든 것이 그 스토리라인에 맞추어 임의적으로 정돈되어 있는 '제자리'에의 집착이 생겨났을 수 있다.


또 어쩌면 우리는 착각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제자리를 찾아주지 않는다면 우리 주변의 그 모든 것은 제자리를 잃은 채 영영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결국에는 그 삶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두려운 환상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은 그것들은 이미 제자리였을 것이다. 고양이가 고양이로 뛰어다니고, 장미가 장미로 피어나듯이,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그저 자기의 자리에서 펼쳐져야 할 자기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우리 자신만이 우리의 제자리를 잃어서, 다른 모든 것도 제자리를 잃은 것처럼 우리는 오해하고 또 착각했던 것이 아닐까?


중생(中生)이라고 한번 써보자.


이 표현으로 '삶의 한가운데'를 뜻해보자.


우리가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우리는 제자리에 있는 것이다. 있어야 할 가장 최중심부에 있는 것이다.


변두리에 있으니 어지럽다. 혼란이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있어야 할 제자리에, 우리 삶의 중심에 있으면 이제 더는 혼란스럽지 않다. 저마다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잘들 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 자신으로 피어나는 그 일들을.


지금 우리 삶의 중심에 위치한 우리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삶이 혼란스럽다면 우리는 지금 삶의 변두리에 있는 것이다. (남의) 삶의 그 언저리만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중심을 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잠깐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가?


어떻게 우리는 중생(中生)이 되는가?


어딘가에 있을 진정한 제자리를 찾아내야 하는 일이 결코 아니라서 다행이다. 노력과 성취를 통해 참된 제자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일도 아니라서 안심이 된다.


우리는 그저 지금 펼쳐지고 있는 그 삶의 상황에 앉아버리면 된다.


오직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오직 여기에서만 다 피어나고 다 질 것처럼, 마치 이곳이 우리의 고향인 것처럼.


그러면 어느 곳이든 그곳이 바로 우리의 제자리다. 즉각적으로 우리 삶의 중심은 출현한다.


중심이 없어 흔들리던 삶에 이제 우리 자신이 중심이 되었기에.


이 삶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제법 멋진 일을 하는데, 그 일은 우리가 앉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삶의 한가운데에서는 언제나 그 일만이 일어나서 삶의 모든 국면으로 퍼져나간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이 될 자유를 우리에게 지금 허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 또한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라고 함께 허가한 것이다.


자유,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는 늘 그것만이 있었고, 그것만이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 삶의 중심이 없을 때 그 자유는 혼란으로 경험되었지만, 우리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자 자유는 원래의 이름을 바로 찾게 된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왜 그토록 혼란스러웠던가?


삶의 중심에서 자유를 외칠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자유라는 것을 그 온전한 이름으로 외쳐볼 삶의 중심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중생(中生)이 왔다.


막 돌아온 삶의 중심이 마침내 그 스스로가 무엇인지를 외칠 것이다.


가장 제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가장 제자신으로 자유로운 그 역설로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자유만이, 삶의 그 본래적인 일만이 고요한 외침으로 널리널리 퍼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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