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살아볼까 #1

"판타지아"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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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엉망이다.


아무리 치워도 결코 깨끗해지지 않는 방. 아니 치울 엄두도 안나는 광활한 불용품들의 평원일까.


직접 살아보니, 우리가 질서의 세상에서 배워온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거기에 펼쳐져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놓여 있는 법이 없으며, 통째로 혼란 그 자체인 사태, 그런 것이 삶이었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몹시 당황스럽고 화도 났다.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배신당한 것 같은데 대체 누가 배신한 것인지는 찾을 수 없어서, 우리는 막연하게 세상도 원망해보고 자기 자신도 미워해봤다. 우리의 사춘기란 그러한 알 수 없는 감정들을 처리하기에 무척이나 바빴던 시간들이었다.


그렇다고 배워온 것과, 실제로 펼쳐져 있는 것의 간극 사이에서, 누군가는 그 계곡의 틈새로 투신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힘겹게 각각의 가장자리에 양다리를 걸쳤으며, 대부분의 우리는 그냥 좀 잊어보려고 했다. 정리되지 않는 혼란을 다락방의 상자에 밀어넣듯이 그저 그런대로 우리의 가슴속에 고이 묻어놓았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저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


물론 우리를 귀찮게 하던 이들도 있었다.


철학자들은 간헐적으로 발작을 하듯이, 묻어놓은 타임캡슐을 이제는 열어봐야 한다고 우리를 촉구하곤 했다. 심리상담자들은 그것을 억압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문제는 간절했던 지난 날 보내지 못한 채 그저 서랍 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던 그 연애편지 때문에 생겨났다며.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괜히 듣기가 싫었다.


그렇지만 그 날들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올 운명이었다.


우리가 소중한 것을 잃었던 날들에, 엄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순간에, 왜 사는지를 몰라서 달빛마저 시렸을 때, 우리는 불가피하게도 다시금 기억해내곤 했던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통째로 엉망이었다는 사실을.


복잡하고, 어지러우며, 한숨이 절로 쉬어지는 정신사나움에, 어딘가 기괴하기까지 한.


멍하니 다소곳하게 입을 벌린 채 다만 작은 숨만 토해내고 있던 것은, 숨가쁨이었으리라. 그것이 숨가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눈물은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왜 이리도 힘든지.


울고 싶은데 마음놓고 울 수 없던 것은, 그 눈물을 받아줄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던 까닭일 것이다. 모두는 그 눈물에 대해 알고 있기에 누구도 그 눈물을 받아줄 수가 없다. 자신의 것을 닦아내는 일만으로도 벅차다.


깨끗하게 닦아낼 수 없는 총체적인 난삽함 속에서, 자신의 눈물만이라도 자신이 닦아내려는 일은 일종의 예의 또는 최소한의 도리였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삶은 눈물을 먹고 피어난다는 사실을.


눈물은 닦아내야 할 것이 아니라 담아내야 했던 것.


고이고이 담아 삶을 통째로 적셔내야 할 것.


눈물을 머금게 된 삶은 이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배경인 삶이 움직이니 우리가 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렇게 그 자신의 길을 간다.


그의 눈물로 그의 인생을 만든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그저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힘든데도 한번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아니, 분명 그럴 수 있었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분명 갈 수 있었기에. 인생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능한 것이었기에.


불가능성의 가능성, 우리의 인생은 통째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배워오고 믿었던 모든 것이 삶에는 다 존재했다. 삶은 혼돈.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의 최대치, 바로 그 사태였다. 존재에는 불가능이 없다는 그 엄중한 증명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알았다.


이런 모습으로는 존재해선 안된다고 믿었던 우리 자신도 기꺼이 존재해도 된다는 사실을. 존재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불가능성의 가능성, 삶은 바로 그런 사태였다. 우리 자신을 위해 가장 환상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던 위대한 사건이었다.


길을 걸으면 더 많은 풍경을 보게 된다. 우리가 보게 된 풍경들은 하나같이 다 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걸으며 더 많이 보았다. 우리는 배웠다.


존재해선 안될 것이란 정말로 존재하지 않음을. 존재하는 것은 다 존재해도 된다는 사실을. 아무리 형편없이 그 존재가 부정당한 것조차, 삶은 반드시 그것을 살려내는 배경이 되어, 그것이 정당하게 존재해도 되는 풍경을 펼쳐내고 있었음을.


그 존재의 불가능성을 다 가능하다고 노래하고 있는 이것은 환상곡.


판타지아.


우리는 삶이라고 하는 판타지아에서 살고 있었다.


조금 힘은 들지만, 힘을 기울여 우리는 노래하고 있었다.


존재여, 영원하라고.


다 존재하고, 더 존재하라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아, 더 많이 존재하라고, 우리는 곱고도 정성스럽게 힘을 들여, 모든 것이 다 존재해도 되는 곳, 판타지아를 꽃피우고 있었다.


이런 것이 삶이라면, 모든 것이 다 있는 이런 엉망진창이 삶이라면, 나는 갈 것이다. 더 갈 것이다. 조금 힘은 들지만, 그 눈물이 내 자신을 계속 가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일 때, 가장 엉망진창인 것은 언제나 나였기에.


그 존재가 가장 부정되었어서, 가장 존재하고 싶던 것도 필히 나였기에.


삶이라는 것은 나를 위한 판타지아였던가.


그렇다면, 힘들지만 살아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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