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미용실"
우리는 추락했다. 아니,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가속은 더 붙을 것이다.
삼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도 잘려나간 우리의 머리와 함께 바닥으로 낙하했다. 바닥보다도 깊은 심연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더욱 떨어져내려갈 것이다.
인생이란 머리를 잘못 자른 미용실과도 같다.
잘못 잘린 머리의 문제는 그것이 결론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에 있다. 생각은 무척이나 많아지고 고뇌도 깊어진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자신은 제대로 요구사항을 전한 것 같은데, 자아상을 분명하게 그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또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성실한 태도로 임했던 것 같은데, 대체 어떤 것이 문제라서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
미용사의 기술부족을 탓해보다가도, 결국 더 꼼꼼하게 욕망의 언어화를 이루지 못해 소통에 실패한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며, 실은 괜한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
엎질러진 물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실 앞에서.
무수한 성찰과 반성의 생각들을 늘어놓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력하지 않다는 어떤 한 조각의 단서를 찾아 헤매고 있을 따름이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다짐하며, 깨어진 어느 진보의 역사를 어떻게든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필사적이다. 최종적으로 거울 앞에서 환희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그 이상적인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러나 무너졌다. 기대는 배신당했다. 여지없이 이것은 사실이다. 이미 잘린 머리는 돌이킬 수 없다.
인생은 정말로 머리를 잘못 자른 미용실과도 같다.
늘 우리가 기대했던 일보다는 우리가 원치 않던 그 일만이 일어나는 것처럼도 보인다. 아무리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할지라도 인생의 가위질 앞에서 모든 계획은 속절없이 무력하게 바닥에 떨구어지는 머리카락들이 된다. 그 가닥가닥마다에 억울함과 설움의 사연들을 한 움큼씩은 담고 있는.
그러나 또한 누군가는 기억할 것이다.
사랑은 우리를 타작해 쭉정이들은 털어버리고 우리 자신을 알곡으로만 남기려 한다던 칼릴 지브란의 노래를. 우리가 도무지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그 모든 일에는 이러한 사랑의 작용이 숨어 있는 것이라고 우리가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이라는 것이 그러한 사랑의 작용의 실제인 것이라면 또한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렇다면 여기에는 시작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 시작의 지점이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자리를 시작으로 삼아 처음부터 다시 사랑을 배우고 시도해보려는 이가.
다행스럽게도, 잘못 잘린 머리는 결론이 아니다. 모든 것의 끝이 아니다. 그것은 시작이다.
인생의 가장 망가진 지점에서, 우리는 거울 앞에 선다. 그 자리에서 정말로 시작하고자.
거울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인간의 모습이 비친다. 꼴도 보기 싫은 인간. 못생기고, 처량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멍청한 것.
그래서 아주 많이 슬픈 것. 보면 속상하고 아픈 것.
돌이킬 수 없어서 그 눈물이 더욱 서러운 것.
그런 것이 거울 안에는 비치고 있다.
돌이킬 수 없어서 우리는 들이킨다. 이 인간의 슬픔을. 잘나고 멋있고 훌륭하고 싶었는데, 그런 꿈과 희망에 부풀었었는데, 다 망가진 이 바보멍청이의 슬픔을.
못생겼는데, 애는 착하다.
가만히 들이키며 보고 있으면, 떡볶이라도 같이 먹으러 나갈까, 치킨이라도 하나 시켜줄까, 그런 어떤 자비의 몸짓을 불러일으키는 착한 얼굴이다.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그 마음을 따라 행위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 없던 시절에, 사랑을 시작하는 첫 번째의 인간이 된 것이다.
그러한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생은 그러한 사랑의 작용이 실제하게 된 무대로 즉각 변화된다.
이처럼 한번 출현하게 된 사랑에는 가속이 더욱 붙는다. 떡볶이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과거와 달라진 지금의 머리에 어울릴 옷이나 장신구들도 살펴보게 될 것이고, 어떤 미학적인 변화의 순간들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엉망으로 망가진 것도 분명 예뻐질 수 있다. 그렇게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 그 일을 한 것이다.
가장 형편없는 우리 자신이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 사랑이라는 것을 시작한 이가 바로 여기에 있기에.
인간이 어여뻐진 것은 머리를 잘 잘랐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이 인간을 어여쁘게 한다. 미용에 절대적으로 좋은 것은 언제나 사랑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이란 정말로 미용실이 아니던가.
인생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랑을 배울 기회를 마련하고, 또 그 사랑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가장 아름답게 빛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예측못할 인생을 경험할수록 우리는 미용실에 다녀오듯이 한층 더 아름다운 존재로 피어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그 삶의 사건들 앞에서 그것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그래, 여기에서 시작하자."라고 말하는 인간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렇게 세상에서 처음 출현하게 된 인간 자신을 향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삶도 인간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 된다.
그러한 삶은 살아볼 만한 것, 또는 살고도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떠오르는 아침해와 함께 인생미용실을 방문한 것이다.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기 위해 발사된 저 스페이스 셔틀처럼.
그러니 추락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근거지로 돌아온 것이다.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을 만나고자, 힘들어도 한번 떠나본 그 셔틀 자신의 운동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그런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이라는 운동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