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여행자 #12

"신비를 말하는 법"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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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를 말하는 일은 그 화자가 막 솟아난 샘물이 되는 일과 같다. 저 깊은 원천으로부터 길어올려진 샘물은 무엇보다 그 자신을 먼저 가득 적시고 흐른다. 그래서 신비를 말하는 이는 자연스레 신비를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신비와 더욱 가깝도록 일상에서도 늘 신비를 말하며 사는 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보통 말하기의 정점으로 생각하곤 하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이는 결국 신비를 말하게 된다.


관계 속에 있을 때, 사회적 역할들 속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하고 있을 때는 대개 자신이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를 잘 모르게 된다. 그럴 때 추구하게 되는 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다. 우왕좌왕 우물쭈물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이럴 바에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하자고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것이 실은 그리 많지 않다. 금방 밑천이 거덜난다. 말을 많이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면 그들은 새로운 말을 하고 있지 않다. 어떤 부조리극의 모습처럼,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고 있을 뿐이다.


그보다는 우리는 듣고 싶은 말들이 많다.


"사랑해." "귀엽다." "너무 예뻐." "괜찮아." "고생많았어." "많이 아팠지." "고마워." "네가 있어 너무 행복해." "우리 함께 영원하자."


이 말들은 듣고 또 들어도, 늘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로운 말들이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가 지금 갖지 못한 현실에 대한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무치게 그립다.


우리는 신비를 향한 여행이 어떻게 시작되었던지를 잊었던가?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 같아 그 북받치는 그리움에 우리가 먼저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을 나선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우리를 찾아 무작정 신비가 떠난 여행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길의 도중에서 우리는 서로를 찾아 만났고, 동시에 웃었다. 거울처럼.


우리에게 현재 없는 것을 만나는 그 길이 신비의 길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을쏜가.


신비의 길은 그 길로 나서는 이의 발걸음이 있기까지는 아직 길이 아니다. 길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내딛은 뒤에야 그것은 길이 된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길이 없는 곳에서도 길을 가려는 이만 있다면 길은 반드시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은, 우리가 듣지 못한 말들. 그것은 아직 우리의 세상에 없다.


그러니 샘물이 길어올려지듯,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의 저 원천으로부터 말은 길어올려진다. 그것이 없던 세상을 향해, 이제 그것이 처음 시동한다. 진동하며 그 존재를 알린다. 존재하지 않았던 현실이 존재의 기지개를 펴며 태동한다.


세상에 이제 막 태어난 말. 그 말이 가장 먼저 적시는 것은, 가득히도 흔드는 것은 바로 우리의 귀다. 봄밤처럼 감미롭고 설렌다.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 그 말들이 영원히 이 정경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있는 세상의 중심에 깊숙히 안착한다.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려고. 이제부터는 계속 함께라며.


우리는 스승을 따라서가 아니라, 보통 자신이 말하다가 깨우치는데,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아니, 그때서야 자신이 정말로 무슨 말을 듣고 싶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는 것, 그것은 우리 삶의 의미였다.


지금 이 마음이 열심히도 살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이제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은, 우리가 이루고 싶은 현실, 바로 그것이 완벽하게 다 이루어진다. 그것이 전혀 없던 곳에서 가장 있는 곳으로 우리는 흡사 차원도약을 한 것이다. 기적처럼.


신비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며,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에게 없던 그 간절한 것을 이루는 일에 대해.


그러나 실은 없던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우리 자신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감도 못잡고 있을 때조차도, 그 말은 가장 정확한 형상으로 이미 우리 안에 갖추어져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우리를.


하도 오지 않아서, 그 말도 우리를 찾아 나섰다. 세상에 흐르는 영화 속에서, 만화책 속에서, 또 노래가사 속에서, 우리는 몇 번쯤은 그 말들을 분명 스쳐지나간 적이 있다. 왈칵 하며 우리의 가슴이 저렸던 순간들이 있다. 다양한 모습이 되는 여행을 통해 그 말들도 그렇게 우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없지 않고, 있다고 알리기 위해.


늘 같이 있었다고.


자신에게 가장 없다고 생각했던 것, 그래서 늘 혼자 서럽고 사무쳤던 것, 그것이 가장 같이 있었다.


우리가 듣고 싶던 말은 그처럼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던 말. 그 자체가 우리 자신이었던 말이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맞다고 말해주던.


우리를 향해 간절히도 들려지고자 하던 그 말을 이제 아낌없이 하는 것이, 신비를 말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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