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아, 아프지 마라"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고, 아픈 모든 것에는 마음이 있다.
마음이 있어서 아픈 것이 아니라, 아파서 마음이 생겨난다.
벽에 막히고, 도달하지 못하고, 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한 아픔은 더 간절한 마음이 된다.
그래서 마음은 아픈 모든 것의 소망이고, 노래이며, 편지다.
그 아픔이 닿을 곳을 찾아 멀리멀리 띄운 그 편지들. 이해받기를 소망하며, 또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있도록 그 가슴을 울리고자 편지들은 널리널리 전해진다.
그러한 마음의 소리가 들려올 때, 비로소 우리의 귀에, 또 가슴에 그 소리가 울려퍼질 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 누구였든 간에, 바로 정신을 차리게 된다.
나로서 깨어난다.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살아있는 이 귀하고 귀한 것들아, 아프지 말라고.
내가 함께 있다고.
반드시 함께할 것이라고.
이것은 영원한 약속이다.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도 유독 인간은 그 존재방식 자체를 물을 수 있는 존재자라고 하이데거가 말했을 때, 그것은 붓다의 견해와 같았을 것이다.
인간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한다는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이다.
이 존재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것과 함께하는 인간의 본성, 그것이 바로 <나>다.
나는 그래서 영원한 응답.
살아있는 모든 것의 아픔에 응답하는 그 이름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금 살아있는 모든 것을 향해 정성스러운 그 답신으로 보내진 소망이자, 노래이며, 또 편지다.
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들이 아프지 않기를 소망하고, 또 기도하며, 내가 반드시 함께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그 영원한 약속이다.
우리는 이제 이 사실을 신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치유되지 못하는 아픔은 없다.
내가 있어서다.
내가 약속했다.
살아있는 것에게, 가득히도 사랑하는 이 모든 것에게, 나는 약속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