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환상을 깨는 거대한 웃음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실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아주 쉽게 말하면, 불변의 절대적 정답과 같이 행세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체화는 곧 우상화가 된다.
우상화된 모든 것은 인간을 그 앞에서 위축되고 속박되게 한다. 정답대로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게 하고, 정답만큼 살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 것도 없는 골목길에 날리는 비닐봉지를 귀신으로 보며 그 앞에 움츠러드는 것과 같이, 허상이 만들어내는 위축이며 속박이다.
우상은 허상이다. 허상은 사실 앞에 허물어진다.
어떠한 제도도 그렇게 실존[사실존재]하는 인간의 밑에 있다.
인간이 제도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제도의 핵심은 진리성이 아니라 편리성이다. 민주주의는 진리의 것이 아니라 다만 편리한 것이다. 단순하게 인간에게 편의를 많이 제공하는 제도가 좋은 제도다. 때문에 모든 제도에는 그 제도를 위해 인간이 목숨을 버려야 할 그 어떤 근본적 가치도 없다. 편의점이 주변에 없다고, 혹은 GS25가 아니라 세븐일레븐이 있다고 목숨을 버리는 이가 없는 것과 같다.
즉, 민주주의가 마치 우주의 진리이자 신의 말씀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우주는, 신은, 생명은, 하늘은, 존재는, 마음은, 깨달음은, 그외에 인간이 궁극으로 상정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은 사실 민주주의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궁극은 그저 미소지을 뿐이다. 아이가 무엇을 하고 놀든 간에, 그렇게 열중하며 놀고 있는 아이 자체의 모습에만 그저 미소짓듯이.
이와 같이,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말을 듣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언술과 행위가 아무리 진중하고 심각한 척 해도, 그것이 자신보다 작은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야 한다.
동시에, 눈을 충혈시키고 목에 핏줄을 세워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이 자기 자신의 존귀함을 잃은 이들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존귀함을 잃었기에 제도가 대신 그 존귀함을 찾아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귀함이라는 것이 결코 그러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빅터 프랭클이 강제 수용소 속에서도 이미 증명해내었다.
외적인 조건, 즉 제도 따위에 인간의 존귀함은 동요되지 않는다. 좋은 제도가 존귀함을 향상시키고, 나쁜 제도가 존귀함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논리다.
그러나 인간의 존귀함은 절대적이다. 언제나 그 모든 상대적인 논리의 위에 있다.
이 땅에서의 민주주의의 신성화[실체화]는, 모두를 통합하고 통솔해줄 왕을 필요로 하며, 자신의 지성적 능력으로 그 왕이 좋은 왕으로 유지되게끔 통제하고자 하는 문화적 논리에, 즉 선비정신의 문법에 그 근저를 두고 있는 세력들이 빚어내는 현실이지만, 그것은 가상현실이다.
허깨비를 숭상하고, 허깨비와 싸우며, 허깨비가 되는 것이다.
이 가상현실을 강화하기 위해, 특정한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문화권력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미디어 생산물들이 그 환상성을 실제의 진리인 것처럼 끝없이 부추긴다 해도, 홍길동이 홍길동인 것처럼 허깨비는 허깨비다. TV나 모니터, 영화 스크린 속에서나, 스마트폰의 화면 속에서나, 소설이나 웹툰 속에서나 살아 있는 척 할 수 있는 가상의 것들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선대의 피가 있었기에, 이렇게 팔자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혹자들은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 말의 논리 자체가 이미 그 혹자들이 열렬하게 비판하고 있던 6/25 전후세대의 논리와 같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아무리 많은 피가 흐른다 해도 그 피는 어떠한 것도 신성화시킬 수 없다. 피와 신성성을 일치시키는 것은, 원시시대의 인신공양과도 같이 잔혹한 희생양의 논리일 뿐이다.
피는 이념을 살리기 위해 대지에 흘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귀한 몸을 살리라고 몸 속에서 흐르는 것이다.
몇 번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신이 전부다. 이 우주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민주주의 따위는 당신의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액세서리가 당신을 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귀하기에 그러한 당신이 착용한 액세서리가 가치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당신이 빛이기에, 그 빛을 받은 보석이 빛나게 되는 것이다.
빛이 없다면 보석은 그저 무의미한 돌덩이다.
당신이 없다면 이 모든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사실을 불현듯 눈치챈 당신은 그래서 웃는다.
"어머 얘, 니 민주주의 귀엽다. 어디에서 났니?"
"오, 간지 작살인데. 민주주의 그거 나도 한번 달고 다녀볼까?"
"우리 아들, 민주주의 잘 어울리네. 이제 다 컸네, 아들?"
웃으면 된다.
그것이 실존이다.
가장 거대한 웃음이다.
그것이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