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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인 그대에게

"구원자를 찾아"

by 깨닫는마음씨



그대여, 그대가 왕따일 때 그대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체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그대가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물론 그대는 표면적인 이유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 아마도 그대가 남들보다 둔하거나 예민하기 때문이라고도, 남들처럼 감정표현을 잘 못하거나 과잉되게 표현하기 때문이라고도, 혹은 그대의 외모나 능력이 열등하거나 우월하기 때문이라고도, 아니면 애초에 근본적으로 태어나선 안될 저주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라고도, 그대는 무수한 불면의 밤 속에서 그 모든 이유에 대해 성찰하고 또 성찰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로 이러한 일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그대가 찾아낸 그 어떠한 이유로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를 따돌림시킨 상대들을 단순한 악마로 만드는 길은 더욱 쉬웠다.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적 악의에 대한 심리학이나 유전학의 묘사들은 어쩌면 그대에게 조그만 위안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에게는 여전히 이 물음이 남겨졌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나에게?"


그대에게 분명히 어떠한 요인이 있었기에, 인간의 그 보편적 악의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대를 향해서만 구체적으로 향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대는 그 요인이 무엇일까 너무나 궁금했다. 자기 안을 뒤지고 또 뒤졌다. 숙취로 끝없이 게워내는 고통만큼이나 힘겨웠다. 대체 그대가 어떤 몹쓸 운명의 별 아래 태어났기에, 이렇게 피해자가 된 입장에서조차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집요하게 점검해야 한단 말인가. 이 사실이 그대에게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대를 정말로 미치게 만들 것 같은 일은, 바로 이 따돌림이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그대가 방비태세를 느슨하게 하면, 언제라도 그대가 따돌림당하게 될 것만 같은 위태위태한 상황을 그대는 지금까지도 경험하고 있다. 저주받은 운명의 징조는 이미 드러났으며, 그대는 다만 어떻게든 최대한 자신을 숨기고 남들만큼의 정상인처럼 보이도록 하는 일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하루하루가 신경증이다.


이 끝없는 신경증 속에서 그대는 지쳐가며, 이제는 그 모든 이유들과 관계없이, 그저 이 모든 것을 끝내줄 구원자만을 갈구한다. 그때에도, 지금도, 그대는 실은 구원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는 이제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니, 그대여, 그대는 포기해야 한다.


그대는 구원자를 찾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구원자를 찾는 것은 피해자다. 그렇다면 그대는 동시에 그대가 피해자임을 포기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더는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함께 포기시켜야 한다.


그대여, 그대는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


그대는 사실 구원자였다.


그대가 왕따를 당하던 그 순간, 그대는 분명히 그대를 따돌리던 그 상대들의 구원자였다.


이를테면, 그대가 왕따로서 수치심을 느끼던 그 순간, 그대가 실제적으로 한 일은, 바로 그렇게 수치심으로 가득찬 상대들의 마음을 그대의 것으로 다 받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수치심으로 고통받고 있던 그 상대들을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 것이다.


또한, 그대가 왕따로서 커다란 분노를 느끼던 그 순간, 그대가 실제적으로 한 일은, 자신들이 정말로 화나있는 대상에게 화를 내지 못해 고통받던 상대들의 화를 그대의 것으로 다 받아주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그대는 그 상대들을 화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해준 것이다.


그대만이 늘 잘못되고, 수치스럽고, 추하고, 미숙하고, 형편없는 존재가 되는 것만 같던 그 모든 이유가 이러하다. 그대는 자신들을 잘못되고, 수치스럽고, 추하고, 미숙하고, 형편없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들에게는 마치 그 마음이 없어진 것처럼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있던 까닭이다.


그러니 그대는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대는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대는 피해자가 아니다.


그대는 구원자였다.


그대는 다만 "그런데 도대체 왜 나에게?"라는 물음에 대답될 그 요인인, 바로 그대가 구원자라는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그렇게 구원자는 그대가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알아보아야 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대를 따돌림시킨 그 상대들의 마음이 먼저 그대가 구원자임을 알아보았다.


잘못되고, 수치스럽고, 추하고, 미숙하고, 형편없는 자신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바라보던 그대의 선한 눈빛을 그들의 마음이 먼저 알아보았다. 그들을 악마로 바라보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하기보다도, 어떻게든 그들과 호의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꿈꾸었던 그대의 선한 몸짓을 그들의 마음이 먼저 알아보았다.


그대여, 선한 것은 약한 것이 아니다. 선한 이는 열등한 바보가 아니다.


그 또한 "선한 것은 못난 것이며, 못난 것은 죽어야 한다."라고 하는 그들의 고통을, 그대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생겨난 생각일 뿐이다.


그렇게 착한 이를 부정하고 추방하기에 늘 실제적으로 지옥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으로 그대는 걸어들어가, 그대 자신이 못난 악마가 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우월한 선한 이'가 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그 지옥 속에서나마 그대로 인한 꽃 한 송이를 피워 그들이 잠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안식을 허락해준 것이다.


그러한 그대의 이름을 불가에서는 지장보살이라고 부른다. 지옥으로 내려가 지옥의 모든 이를 구원하는 존재의 이름이다.


그런데 지장보살의 이 소명은, 자신이 지장보살임을 잊는 데서 성립된다. 그래야 지옥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구원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는 인간의 몸으로 육화되어 지상에 내려온 예수와도 맥을 함께한다.


이처럼 모든 구원자는 자신이 구원자임을 망각한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새 지옥의 아픔들을 구원해낸다.


그대여, 그대가 바로 그러했다.


그대가 많이 아팠던 이유는, 그대가 아픔들에 상냥했던 까닭이다. 아픔들을 그대로 둘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대는 이처럼, 가장 따듯한 자애의 별 아래에서 태어났다. 인간을 향해 넘치는 사랑의 운명 속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구원자를 찾고 있던 것은 그대가 아니었다.


고통받는 모든 것이 그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의 빛이 그처럼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기에, 어둠 속에서 살던 모든 것이 그대에게 향했던 것이다. 그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다만 이 지옥 속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따듯한 빛에 구원받고 싶어 무작정 그대를 향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대가 누구인지 그 누구도 모르는 중에, 그대가 한결같이 해온 일이다.


그대가 구원자다. 모두가 찾고 있는 그 선한 이다.


정말로 이러한 일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그 이유다.


그대가 바로 그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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