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심리학 #10

"진보의 환상: 우리가 속지 말아야 할 것들"

by 깨닫는마음씨




우리는 진보라는 단어를 사실 굉장히 싫어합니다. 정직하게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단어가 주는 어감으로만 우리에게 좋은 단어일 뿐입니다. 그 단어가 우리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우리는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진보란 앞으로 나가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앞을 쫓는 것입니다. 앞선 것을 따라잡아 그것과 똑같아진 나의 모습을 얻기 위해 쫓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것은 사실 쫓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는 쫓기고 있는 것입니다.


쫓는 자는 반드시 쫓기게 됩니다. 이것은 엄밀한 상호관계적 법칙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더 나은 진보적 존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더 나은 것들을 쫓고 있는 이는, 실제로는 자신이 지금보다 더 못난 존재가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악착같이 쫓기고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지만, 늘 불안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바로 이 진보라는 단어가 제공하는 쫓김에 의해 생겨납니다.


좋은 것을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할 것 같고, 제대로 된 것을 잘 배워야 할 것 같고, 올바른 길을 따라 똑바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느끼는 압박감은 바로 이 진보의 쫓김 속에 있을 때 경험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전도의 구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것을 정말로 진보적인 것으로 보며 추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라는 언어가 규정해낸 특정한 활동들을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그것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규정에서 벗어난 것들을 누리는 것은, 단지 진보적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전적으로 수치스럽고 잘못된 존재의 증거로 평가됩니다.


이를테면, 심리학에서의 양육이론 등에서 주장하는 진보적인 부모의 개념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반드시 하루에 최소 30분은 아이와 진정으로 교감하며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려고 하는 부모상은 정말로 진보적인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양육이론에서 그것을 진보라고 규정하기에 좋은 가치로서 추구됩니다. 더 정확하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쁜 부모가 되는 것 같은 쫓김의 압박이 발생하기 때문에 추구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마스크를 왜 쓸까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욕을 먹고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씁니다. 즉, 진보적이지 않은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 않기 위해 씁니다.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 되면 이 사회로부터 추방당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추방이라는 이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쫓김이란 이처럼 곧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진보적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이것이 쫓김의 정체입니다.


진보란 이처럼 우리 자신의 죽음을 걸고 우리를 직접적으로 협박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보라는 단어를 정말로 싫어합니다. 그 단어가 창발시키는 현실이 힘들고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진보라는 단어에 속아온 그 무수한 인생의 곡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운동을 왜 멈출 수 없을까요? 더 크고 강한 진보적 몸이 되지 않으면 죽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5평짜리 옥탑방에 살면서 더 좋은 외제차를 왜 계속 구입하려는 것일까요? 더 우월한 진보적 능력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죽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SNS 논객은 왜 되는 것일까요? 시대에 영향을 주는 날카롭고 예리한 진보적 지성을 갖지 않으면 죽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진보를 추구할수록, 우리는 우리가 협박받을 소재들의 목록을 더해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종교성이나 영성 등의 이름으로 묘사되는, 가장 심원한 삶의 깊이와 존재의 온전함에 대해서도 또한 이 진보라는 언어의 협박은 여지없이 끼어듭니다.


오바마를 지지하고, 채식을 하며, 사회운동에 앞장서고, 단체로 모여 인도음악을 들으며, 대안교육에 힘쓰면, 영성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는 식의 이야기는 드래곤볼만큼이나 꾸준히 인기있는 스테디셀러입니다.


이것은 마치, 셀비지 데님을 입고, 펩시를 마시며, 노브레이크 픽시를 타고, 명란아보카도 비빔밥을 좋아하며, 자기 집 수조에서 이구아나를 기르면, 예수와 같이 골고다에서 친구맺을 수 있는 위대한 종교적 본질의 소유자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진보는 사실 취향의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곧, 진보라는 단어가 작동하는 방식은 이러합니다.


자기 취향의 것을 남들에게 강요하고, 남들이 그 취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라는 협박을 하는 일, 이것이 진보라는 단어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소위, 리바이스 청바지를 좋아하는 이가,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지 않으면, 하늘이 불타고, 땅이 갈라지며, 아이들이 죽어가고, 특히 너는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협박을 광장에서 큰소리로 선포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가끔 들려오는 이러한 지옥에의 협박은 피식 웃으며 넘기면서, 진보라는 단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해 이루어지고 있는 또 다른 협박들에 대해서는 왜 그 허상성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지는 사실 놀라울 정도입니다.


진보라는 단어를 죽음이라는 단어와 정확하게 연결지어 이해해보면,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이상한 것이 얼마나 우리를 이상하게 만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매일 1시간씩 꾸준하게 수행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요?


특정정당과 특정정치인에게 투표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요?


더 많은 인문학 지식을 쌓지 않으면 죽는다고요?


상면발효맥주 교육과정에 나가지 않으면 죽는다고요?


자기 마음을 제대로 알고 돌봐주지 않으면 죽는다고요?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보라는 언어가 종용하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보를 추구하지 않기에 죽게 될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진보를 추구하고 있기에 죽게 될 것 같이 됩니다.


표현 그대로, 쫓고 있기에 쫓기게 됩니다. 쫓지 않으면 쫓기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나라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화장이 잘 받은 날 거울을 보며 행복한 입술로 "이것이 나야!"라고 말할 때나, 우리가 전날 새벽에 라면을 끓여먹고 잠든 날 거울을 보며 우울한 눈빛으로 "이것이 나야 ㅠㅠ"라고 말할 때나, 그 둘은 어떻게든 '나'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나라고 하는 그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곧, 우리는 언제나 나입니다. 이미 나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나이기에, 나는 쫓아야 할 것이 아닙니다. 쫓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곧, 우리를 결코 쫓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죽음의 협박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것, 그래서 우리를 가장 안심시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우리는 진보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그것을 쫓아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나이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리 진보라는 언어가 흰색을 진보라고 규정함으로써, 흰색이 아닌 이들은 다 지옥에 갈 것이라고 저주를 쏟아붓는다 해도, 우리는 그저 이미 검은색인 바, 그 나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 나만을 의지하면 됩니다.


우리가 검은색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흰색이어야 한다는 진보의 목소리가 우리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나는 검은색이어도 괜찮습니다.


나는, 검은색이어도 괜찮습니다.


"검은색이라 이쁘다."라고 말하는 그 나만 있으면 됩니다.


"검은색이 딱 내 취향이야."라며 정직한 그 나만 의지하면 됩니다.


모든 영역에서 진보라는 단어가 울려퍼지며, 그렇게 모든 영역이 우리를 사냥감처럼 쫓고 있을 때, 우리를 못살게 굴 때, 그때 나는 언제나 나의 집에서, 그 고유한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는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며, 실제로는 우리를 협박하고 있는 그 모든 진보의 것들에 그만 우리의 힘을 빌려주고, 이제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의지할 수 있는 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의 것입니다. 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인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심리학은 진짜인 나의 심리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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