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마음
이 우주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어떠한 일이 생길까?
이 영화는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영화다.
영화가 관객과 함께 그 대답을 발견해가는 방식은 철저한 체험형이다. 가장 진보된 기술의 VR 기기로도 이 시지각의 실감을 따라갈 수가 없다.
분명하게, 우리가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가 우리를 '바로 거기'로 데려다놓는다. 질문이 시작된, 그리고 대답이 완성될 바로 그 공간(space)으로.
생생하기 짝이 없다.
나의 기억이고, 당신의 기억이고, 우리의 기억이며, 인간의 기억이다. 그리고 우주(space)의 기억이다.
이 영화는 공간으로 기억을 체험시켜준다. 대화 사이의 공간으로, 인물 사이의 공간으로, 또 인간이 부재한 공간으로.
그렇게 우주가 가득하게 담고 있던 기억이 재생된다. 공간이 소중하게 담고 있던 기억이 재생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공간이 우리를 기억하던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존재들이었는지를, 그러한 우리를 대체 우주가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비겁하고, 착하고, 미안하고, 이쁘고, 화내고, 수줍어하고, 더럽고, 따듯하고, 추하고, 사려깊고, 속이고, 귀엽고, 찌질하고, 순수하고, 아프고, 다정한 그 인간이 없다면, 그 인간이 사라진다면 우주가 대체 얼마나 쓸쓸할지를, 얼마나 보고 싶어할지를, 우주는 기억하고, 우주는 안다.
인간이 사라진다면 우주가 얼마나 그리운 마음으로 가득찰지를, 우주는 기억하고, 우주는 안다.
남매는 모든 인간이다. 누군가의 누나였고, 누군가의 오빠였던 모든 인간이다. 반드시 끝나게 될 여름방학의 짧은 밤을 웃고 울며 살아가는 그 누군가의 누나와 그 누군가의 오빠를, 우주는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공간은 자신에게 가득히 안겨 펼쳐졌던 그 어떠한 삶도 잊은 적이 없다. 자신에게 다녀간 그 어느 삶도 결코 잊지 못한다.
그래서 우주는 미련(未練)하다. 숙련(熟練)되지 못했다.
우주는 미련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의 삶의 부재로 드러난 공간은 미련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삶이 채우고 있던 것과 똑같은 질량의 그리움으로.
이 영화는 이처럼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가장 바깥의 시선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금 체험시킨다. 우리는 영화가 안내하는대로 우주의 시선이 되어 '바로 거기'로, 우리 자신이 있던 바로 그 자리(there of being)로 육화되어 들어온다. 그렇게 우주가 기억하는 심정대로의 우리 자신을 체험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우리가 언제나 미련한 마음 속에서 그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가 바로 그리움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의 미련함이 가장 미려한 인간조건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이 우주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어떠한 일이 생길까?
보고플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사랑했었을 것이다.
이 우주는, 바로 거기는, 사랑으로만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우리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