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심리학 #16

"마음의 무게: 구걸과 나눔"

by 깨닫는마음씨




"마음이 짐처럼 느껴진다."


이 말은 우리가 힘들 때 하게 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짐이 되는 것일까요?


아주 단순하게, 지금 경험하는 마음이 내 마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아서, 또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 마음은 짐이 됩니다.


이 말은 다시 한 번, 내가 정말로 어떠한 사람인지를 자각하려 하지 않을 때 힘들게 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마음이 바로 나를 만드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이 나를 만든다.'라는 바로 이 사실을 신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 자신을 만들려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이 여전히 못미더워서, 자신이 정말로 그러한 모습을 얻은 것이 맞는지 끝없이 남들의 인정을 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섹시해지고 싶은 이가 있습니다. 그가 경험하는 마음의 무게는, 자신이 정말로 섹시한지를 확신할 수 없기에, 남들에게 최대한 섹시하게 보이려고 하는 데서 비롯합니다. 이러한 의도 속에서는,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계속 통제해야 하기에 에너지가 많이 쓰여 힘들어지며, 그래서 섹시하고 싶다는 마음이 결국 그에게는 버거운 짐처럼 경험되게 됩니다.


원하면서도 버거운, 끌어당기면서도 밀어내는, 이도저도 못하는 현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윤태호 화백의 명작 『미생』에는 이러한 현실의 해법이 되어주는 멋진 대사가 묘사됩니다.


"어른처럼 보이려 하지 말고, 어른으로 살아라."


같은 말입니다.


"섹시하게 보이려 하지 말고, 섹시하게 살아라."


섹시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이 섹시하다는 것을 신뢰하고, 그냥 대충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 것도 안가진 것 같은 자신을 섹시하게 신뢰하고 살 수 있는 이 역설적인 신뢰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마음 때문입니다. 현재 자신에게 '섹시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경험되고 있다면, '마음이 나를 만든다.'라는 원리에 의해 그 '섹시함을 향한 마음'이 바로 '섹시한 나'를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신뢰하고 싶다면, 먼저 나에게 경험되는 마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마음은 신뢰하지 않으면서, 혼자서 나를 억지로 만들려고 할 때, 모든 것은 힘들어집니다.


그 힘든 길이 바로 섹시하게 보이려 하는 길입니다.


마음을 무시하는 이 방식은, 어떻게든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 자신이 여러 장치들을 설치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오직 하나의 관심사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들에게 섹시하다는 말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곧, 섹시함의 구걸입니다.


이처럼, 섹시하게 보이려 하는 것은 섹시하다는 말을 들으려 하는 것이며, 곧 섹시함을 구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섹시함을 구걸하는 것은 스스로 섹시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이 있는 자는 물을 구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섹시하게 보이려 하고 있는 동안, 실은 우리는 우리가 섹시하지 않은 현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이와 같습니다.


하다 못해, 혹자들이 대단한 궁극의 것으로 보고 있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을 원하는 이들이 못깨닫는 이유는 깨달은 척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남들에게 깨달은 것처럼 보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깨달은 분이시네요." 등과 같은 말을 남들에게 듣고자 구걸하고 있기에, 깨달음이 없는 현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걸을 하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가난해집니다. 결핍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걸 주는 것 같으면, 우리는 그게 너무나 엄청나고 거대한 것 같아 미처 어쩔줄을 모르게 됩니다.


몸이 덜덜 떨립니다. 머리가 휘청거립니다. 심장박동이 빨라집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무거운 것을 들고 있을 때의 증상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구걸한 그것의 무게에 스스로 치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치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마음의 무게는 생겨납니다. 마음이 마치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짐과 같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하는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이와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이에게 마음은 공기와 같습니다. 한없이 가볍고 경쾌한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하는 '섹시한 마음'을 신뢰하며, 그로 인해 '자신이 섹시하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이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섹시한 분이시네요."라고 말하면 그저 "네, 감사합니다."라며 가볍고 자연스럽게 넘기게 됩니다.


섹시함이란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자신의 것이라서, 그게 조금도 호들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섹시함이란 것은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이 주는 것이기에, 다른 이에게 새삼 호들갑스러워야 할 이유가 그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이처럼,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것에 대해 가볍게 말하게 됩니다. 그 마음이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 마음에 대해 가볍게 말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그가 정말로 말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렇게 가벼운 공기같은 자기 자신입니다. 섹시한 마음이 자신의 것이기에 바로 그렇게 우리 주변에 있는 당연한 공기같이 섹시한 자기 자신입니다.


섹시함과 그는 하나입니다. 섹시함과 자신이 하나입니다.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 섹시함은 자신으로부터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섹시함이 그 자신이기에, 그는 섹시함을 잃을 수도 없습니다. 더는 섹시함을 잃을까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구걸이 필요없습니다.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무거운 구걸의 현실을 만들지 않고, 그것을 정말로 자신의 것으로 알고 살려면, 우리는 그냥 그것을 가볍게 말하면 됩니다. 섹시함을 자신의 것으로 알려면, 섹시함에 대해 가볍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섹시함이 이 입에서 가벼운 공기처럼 흘러나와 다른 귀로 전해집니다. 곧, 다른 이의 입에서 나와 우리의 귀로 들어오는 구걸의 현실과는 반대의 구조를 이룹니다. 이 현실을 곧 나눔의 현실이라고 칭합니다.


무거운 구걸이 아닙니다. 가벼운 나눔입니다.


이 나눔이 정말로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이미 자신의 것으로서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섹시해지고 싶은, 자신과 같은 마음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먼저 그 섹시한 마음에 대해 가볍게 말함으로써, 그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섹시함을 구걸하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더는 마음이 짐이 아니게 됩니다. 섹시함이 내가 된 까닭입니다. 나로부터 결코 없어질 수 없는 내가 된 까닭입니다. 동시에 그렇게 섹시한 나로부터 흘러나와 나눠지게 된 섹시한 마음은 그 마음을 나누고 있는 이들 또한 섹시하게 만듭니다. 그들 또한 섹시한 마음을 무거운 것으로만 경험하던 그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가볍게 섹시한 자신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나눔의 현실입니다.


마음은 구걸해서 얻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그 마음을 나누라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더 아름다운 꽃을 피어내라고, 더 멋진 꽃밭을 만들라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혼자 구걸하면 구걸할수록 결핍되고 무거워집니다. 반대로, 같이 나누면 나눌수록 풍요롭고 가벼워집니다.


이처럼 마음은 독점재가 아니라 소통재입니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무거운 짐처럼 경험하는 이들은, 실제로는 특정한 마음을 자신만 독점하려는 의도로 인해 생겨난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독점을 위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고집하기 때문에 생겨난 그 불통의 힘겨움을, 마음의 문제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통의 핵심은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이미 마음은 나눔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내 마음입니다. 그리고 네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그냥 대충 마음이라고만 씁니다.


마음 그 자체가 소통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리고 소통은 우리의 짐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쁨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소통의 방식을 연구한 에릭 번은 이렇게 마음이 나누어지는 현실을, 곧 소통의 기쁨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묘사합니다.


"당신도 나도 괜찮습니다."


당신도 나도 섹시해도 괜찮습니다.

당신도 나도 정의로워도 괜찮습니다.

당신도 나도 자유로워도 괜찮습니다.

당신도 나도 깨달아도 괜찮습니다.

당신도 나도 살아도 괜찮습니다.


당신도 나도, 마음입니다.


괜찮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사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마지막까지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심리학은 우리의 괜찮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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