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여자(2019)

기다리는 마음

by 깨닫는마음씨




우리가 도망치는 이유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다.


도망친 곳에서 또 다시 반복한다.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아 떠난 뒤 새로이 도착한 곳에서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으로부터의 도망을 반복하며, 도망도 반복의 한 양상이 된다. 반복의 지평에 합류한다.


왜 이렇게 반복되는 것일까?


도망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같은 것의 반복 속에서 언젠가는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조금 다를 것이라고 차이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거듭되는 반복에 지치면서도 여전히 차이를 꿈꿀 때, 그 피로와 기대 속에서 우리는 이젠 뭘 좀 아는 인생의 달관자처럼 초탈한 척 하거나, 닳고 닳은 까닭에 억지로 에너지를 끌어올려야만 연기할 수 있는 어색한 연기자가 된다.


3류 연극을 벗어날 수는 없으면서도, 자신은 3류 연극을 그 밖에서 보고 있는 관찰자처럼 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정신은 고고하고 자유로운데, 자신의 육체와 그 육체에서 비롯한 욕망 때문에 이토록 삶이 비루해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심신이원론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육체가 만든 지루한 감옥 속 생활의 반복에서 도망치려는 위대한 정신의 탈출기는 이렇게 구성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착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반복은 계속된다. 반복은 반복된다.


문제는, 정신과 모순의 관계에 놓인 육체가 아니다. 그러한 정신은 없다. 그러한 육체는 없다.


우리는 원래 몸밖에 없다. 그 몸이 느끼는 느낌을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몸과 마음은 같은 것이다. 이 몸-마음과 분리되어서 어느 초탈한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정신과 같은 것은 없다.


이 추상적 정신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리고 이 추상적 정신을 향한 도망 때문에, 우리의 몸은 축소되었고, 우리의 마음은 실종되었다.


그리고 그 축소되고 실종된 자리를 대신한 것은 바로 언어다. 바로 말이다.


실제의 자신의 몸이 느끼는 바, 바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소외하고, 그 자리를 언어로 대체한다. 자신의 실제적인 삶을 추상적인 언어로 대체한다. 그리고 그 언어가 지시하는 바를 실제의 자신의 삶이라고 착각한다. 말이 마음을 대신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잃은 현실이다.


그래서 영화 속 이 질문은 대단히 유효하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 거기에 진심이 있을까요?"


반복되는 말 속에 마음이 없다.


우리는 이처럼 마음을 잃은 말만 되풀이하며, 그것을 불가피한 삶의 비극적 속성인 것처럼 말한다. 이 지루한 권태를 버텨나가는 것이 삶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유일하게 정직한 태도라고 말한다. 그렇게 버티는 일을 지속하다보면 언젠가는 유의미한 차이가 생겨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반복을 진짜라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것을 의심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 의심의 단초를 제공한다.


반복되는 것 속에 진짜가 있을지를 의심하며 묻는다는 것은, 이 반복이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시선이다.


반복되는 것은 허상이다. 거기에는 진짜가 없다. 그렇다면 진짜는 반복이 멈추는 자리에 있다.


반복이 차이를 낳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반복이 멈춰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복은 만나질 때 멈춘다.


우리는 만나질 때까지 반복한다.


마음이 만나질 때까지 반복한다.


잃은 마음이 찾아질 때까지 반복한다.


모르는 척 하던 마음이 알려질 때까지 반복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일까?


바로 마음이다.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던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렇게 마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위해 마음으로부터 도망친다.


도망쳐서 도착하는 자리는 언제나 시작한 그 자리다. 뱅글뱅글 운동장을 반복적으로 돌던 이가 달리기를 멈추고 도착하게 되는 결승점은, 자신이 달리기를 시작했던 바로 그 출발점이었던 것과 같다.


마음은 어디 가지 않았다.


밀물도 썰물도 같은 배경 위에서 펼쳐진다.


같은 마음 위에서 반복이 펼쳐진다.


우리의 그 무수한 반복은 단 한 번도 마음 위를 떠나 펼쳐진 적이 없다. 우리가 자신의 몸을 떠날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몸이 다른 장소로 이동해도 거기에서 같은 반복이 펼쳐진 이유는, 우리가 어디로 이동하든 같은 몸과, 곧 같은 마음을 배경으로 함께 갖고 갔기 때문이다.


곧,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던 이유는, 도망칠 필요가 없었던 까닭이며, 나아가 우리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다. 우리가 마음과 함께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반복은 펼쳐지고 있었다.


마음이 달라질 때까지가 아니라, 마음이 알려질 때까지.


바로 나에게.


만나질 때까지.


정말로 내 마음이 될 때까지.


내 마음이 여기에 있었다.


도망친 이에게 버림받아 남겨진 것이 아니다.


돌아올 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만나러 올 나만을 기다리던, 어엿한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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