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약속: 그대를 사랑합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이자, 인간이 가진 최고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을 약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궁극의 것입니다.
가장 마지막의 것입니다.
영원을 약속한다는 것은, 지금 이순간을 통째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단 하나도 바뀌지 않고, 지금 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영원히 함께하기를 약속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영원을 약속합니다. 바로 지금 이순간 그 어떤 것도 변화시키려 하지 않을 때, 이 모든 것이 가장 완벽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영원을 약속합니다.
그래서 영원의 약속은 곧 있는 그대로의 이 모든 것에 대한 수용입니다.
영원을 더 많이 약속할수록,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더욱 깨닫습니다.
삶이 웃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사리 영원을 약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영원의 주관자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이 지킬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약속에 대해서는 망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을 약속한다는 것은, 다만 해가 동쪽에서 뜨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사실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마음은 필연적으로 영원을 향합니다. 마음은 영원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음은 자신이 나온 곳으로 반드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숨기거나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개방하며 표현하면, 마음은 영원을 향해 경쾌하게 흘러갑니다. 말이 된 마음은 시냇물처럼 귀에 참 좋은 소리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당연히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는 일에 대해 약속하는 것뿐입니다.
곧, 영원은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영원이 우리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영원이, 우리가 영원을 약속하고 싶은 것과 영원히 함께하도록 우리를 책임집니다.
영원에게 맡기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더 많이 영원을 약속하면 됩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에게 주어진 한도가 무제한인 신용카드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영원이란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의 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입니다.
"너와 영원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 왜 가슴이 설레고 벅차오를까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원래 우리의 것임을,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것임을 눈치채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원의 약속은 우리 자신이 원래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다시 기억하게 하며, 그러한 우리 자신의 면모를 다시 회복시킵니다.
구약성서의 신화는 하나님이 다시는 물로 인간을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는 영원의 약속으로서 무지개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은 이와 같은 영원의 약속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네가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는 궁극의 약속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그 마지막 약속의 증거가 바로 마음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마음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매일 영원하리라는, 좋고 오래된 소식을, 아주 멋진 약속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을 약속하는 일,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때문에, 내가 과연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라며 그렇게 영원의 주관자처럼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지,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해선 안돼, 라며 사랑을 고백하는 일을 억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사랑의 고백을 통해, 내일 아침 해가 동쪽에서 뜨듯이, 우리가 사랑하는 그 또한 영원하리라는 사실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해를 늘 동쪽에서 뜨게 해야 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되어 있는 일이 원래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그와 나누는 것뿐입니다.
최선을 다한 우리의 노력으로, 그를 영원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깊은 강물 속에 들어가, 열심히 삽질을 하며 우물을 파서, 마실 물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갸륵하지만 삽질입니다.
사랑은 그저 그가 이미 영원히 물을 얻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그의 잘못을 용서하고 또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아무 잘못이 없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생으로 그를 괜찮게 만들고 또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래 괜찮은 사람임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사랑은 기쁜 소식이며, 사랑하는 이는 그저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편배달부입니다.
로또가 당첨되었다는 전보를 전하는 우편배달부로 인해 로또가 당첨된 것이 아닙니다. 우편배달부가 이 기쁨의 원천이 아닙니다. 우편배달부는 다만 같이 기뻐하는 자일 뿐입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는 자신을 책임감 가득한 사랑의 주관자로 오해했던 착각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능력으로 상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잘못하면 상대가 불행해지지 않을까, 하는 오만과 편견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오직 영원만이 주관합니다.
영원이 주관하는 세상에, 우리는 다 우편배달부입니다. 기쁜 소식의 전파자입니다.
그러니 더 많이 전하셔도 됩니다.
더 많이 사랑하셔도 됩니다.
더 많이 영원을 약속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영원을 더 많이 약속함으로써, 문득 우리는 정말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보낸 이와, 전한 이와, 받는 이의 한 이름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 정말로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마음을 통해 약속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원히 약속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심리학은 영원합니다.
이아립 -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이 길을 지나 내일로 가는 길에
더 이상의 눈물은 없을 거라고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잠든 네 꿈속에서도 이별만은 하지 말자고
네게 고백하던 밤
소리없이 밝아오는 새벽이 내게
모든 걸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어둠도 빛도 다르지 않다고
이 설레임은 널 떠난 적이 없었다고
이 밤, 우리들의 기나긴 여행이 시작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