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시대의 황혼

"그대가 삶을 속일지라도"

by 깨닫는마음씨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최소한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왕이 사라져야 한다. 여기에서 왕이라고 하는 것은 스승(master)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를 지혜롭게 이끌어주고 인자하게 가르쳐줄 모범적인 본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과 같은 것을 지도자로 삼아, 그의 능력과 인격으로 말미암아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애초 성립될 수 없는 모순이다. 그것은 소위 성군이라고 하는 좋은 왕이 다스리는 세상을 바라는 왕권주의에 대한 신봉이다. 유교주의자들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차용해 곧잘 꿈꾸는 사회의 모습이다.


훌륭한 지도자나 리더가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지도자나 리더가 없어지는 것이 곧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스승과 같은 존재에게 자신의 힘을 위탁하는 일을 멈추고, 그 스승으로부터 자신의 힘을 다시 찾아와 그것이 원래 자기의 것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다.


이른바, 성인군자인 척 하고 있는 스승이 가장 한심하고 무력해져야,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유교주의를 근간으로 성립된 사회의 문화적 문법은 쉬이 이 스승의 자리를 포기하게끔 두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이룩하되, 스승의 자리는 유지되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다. 유교의 망령들이 남긴 최후의 집착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스승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로 최후인 것 같기 때문이다. 스승의 자리가 더는 존속되기 어려울 정도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승의 자리를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이토록 가열찬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사회의 지도자나 리더들이 얼마나 진정한 스승인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커튼 뒤에서 더욱 열렬하게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시대에 광신적으로 하늘을 찌르며 스승을 외치고 있는 목소리는, 진실된 스승의 도래를 찬양하는 예언과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스승의 시대가 이제 정말로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단말마다. 죽어가는 코끼리의 마지막 비명이다.


바야흐로 스승의 시대의 황혼이다.


스승의 시대는 끝났다. 날은 저물어간다. 그러나 우리의 날이 저물어가는 것이 아니다. 스승이 없으면 우리가 의지할 곳 없이 홀로 두려운 밤을 맞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스승 자신에게만 깜깜한 밤이 찾아올 뿐이다. 스승의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날들의 시작이다. 우리의 태양은 떠오른다. 그동안 스승의 독점 아래 놓여 있던 태양빛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스며들어,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스승의 시대란 곧 빛의 독점의 시대다. 그리고 그 빛의 유일한 소유권을 바탕으로 한 독재의 시대다.


좋은 스승은 민주주의를 하고, 나쁜 스승은 독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스승은 근본적으로 독재자다. 그것이 스승이다.


그 무수한 스승들의 말은 단 한 마디로 요약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무슨 말일까?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스승만은 우리를 지켜주고, 도와주며, 우리의 편이 되겠다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부당한 삶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용사로서 스승이 우리의 곁에 존재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스승은 삶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다. 삶 대신에 스승 자신을 보기를 요청한다. 우리를 진정으로 먹여 살리며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이 더럽고 추악한 삶이 아니라, 가장 인격적이고 정의로운 스승 자신임을 천명한다.


여기에서 삶이라고 하는 표현을 마음으로만 바꾸어봐도 이 모든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마음을 문제로 보며, 그 성가신 마음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해주겠다는 스승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마음을 개인으로부터 점점 분리시키고, 마음 대신에 스승 자신의 놀라운 지식을 신뢰하라고 요청하는 목소리들이 얼마나 만연한가.


맙소사.


우리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잃게 된 것이었다. 점점 더 삶과 분리되어, 결국에는 삶을 우리의 적인 것처럼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사는 일이 무섭고 외롭기만 하게 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우리는 스승을 절실하게 붙잡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려왔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를 삶과 분리시켜 이 모든 고통을 만들어낸 이의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그렇게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 장본인에게 우리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대통령의, 정치인의, 목사의, 승려의, 선생의, 정신과의사의, 심리상담사의, 구루의, NLP 코치의, 표현예술치료사의, 요가 치유자의, 유사심리학 강사의, 작가의, 시인의, 인문학자의, 연예인의, SNS 유명인의 , 그 모든 스승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우리의 인생의 구원을 호소하며 절규해왔던 것이다.


참담한 일이었다.


그럴수록 우리가 더 비참해지는 일이었다.


애원하면 할수록, 더욱더 우리의 힘을 빼앗기기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선포한다.


한 세기 전에 신이 죽었듯, 그 신의 자리를 대신해오던 스승 또한 지금의 이 시대에 죽음을 맞이했음을 선포한다.


스승은 없다.


우리가 따라야 할 진정한 인간의 모델 따위는 없다.


인간에게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지조차 않다.


우리는 지금껏 인간을 우습고 하찮게 보아온 그 모든 것을 기각해왔다. 신의 죽음이 그러하고, 스승의 죽음이 그러하다. 인간은 그들이 약한 존재로 보던 그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저 자신의 어린 시절만을 투사하며 바라보던 그것이 결코 아니다.


이 시대는 이제 더는 자기 부모를 붙잡고 자기가 어릴 적에 받지 못한 서비스를 대행하고자 씨름하는 망령들의 시대가 아니다. 그렇게 인간을 계몽되어야 할 모자란 아이로 보는 교만한 스승의 시대가 아니다.


지금의 이 시대는 밝아오는 동녘빛에 비친 온전한 인간의 이름을 알리는 시대다.


그 인간의 이름은 바로 나다.


이 시대는 나의 시대다.


그렇다면 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서는 임의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삶을 속이지 않는 자.'


우리는 스승의 말에 따라, 삶이 우리를 속이는 줄만 알고, 스승의 말을 들으며 우리 자신이 삶을 속여 왔다. 꽃보다 남자처럼, 삶 대신 스승이었다.


그러나 삶은 곧 우리 자신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갈 수 없으며, 누구도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삶이다. 우리가 삶이라고 할 때는, 그것은 추상적인 개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구체적인 우리 자신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곧, 삶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스승의 말에 따라 언제나 우리 자신을 속여 왔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가득 비추며 밝아오는 새벽빛이 더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일 수 없게끔 한다.


그렇게 우리는 인정하게 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 말은 철저한 거짓말이었다.


삶은 우리를 단 한 번도 속인 적이 없었다. 거울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단 한 번도 속인 적이 없는 것과 같다.


"그대가 삶을 속일지라도."


이 말이 사실이었다.


우리가 늘 스승의 말에 따라 삶을, 곧 우리 자신을 속여온 것이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그렇게 우리에게 배신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


무수한 우리의 배신 속에서도, 삶은 단 한순간도 우리를 저버린 적이 없다.


거듭되는 우리의 차가운 배신에도, 삶은 묵묵히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 서있었다.


우리가 스승을 마치 우리의 연인처럼 보며 달콤하게 사랑을 속삭일 때도, 우리의 진짜 연인인 삶은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그저 바보처럼 기다리고만 있었다.


스승이 우리에게서 그토록 떼어놓으려고 한 삶,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찾아야 했던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삶이야말로 그 어느 것보다 우리가 가장 신뢰해야 할 진정한 것이었던 셈이다.


스승이 긴 시간 동안 가르쳐준대로, 정확하게는 세뇌시킨대로, 삶은 우리의 적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삶은 가장 우리의 최측근이다. 그 정도도 아니다. 삶은 곧 우리 자신이다.


때문에 스승의 시대의 황혼을 맞이하여, 이제 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삶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의지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삶이다.


삶은 느낌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말한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그 모든 현상의 의미를 다 알려준다.


우리가 삶이 전하는 그 느낌을 믿지 않고 삶을 속일지라도 삶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끈질기게 느낌으로 알려온다.


이것은 고집스럽게 말을 듣지 않고 낭떠러지로 향하는 운전자에게 차가 계속 경고알림을 전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느낌은, 우리를 반드시 살리고자 하는 삶의 가장 상냥한 메시지다. 삶은 절대로 우리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기를 바란다.


왜 그렇게 되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삶은 곧 우리 자신인 까닭이다.


삶의 인격적 이름이 바로 나다.


나는 언제나 내 자신의 안녕과 행복만을 소망한다. 당연하다. 이러한 나보다 더 나의 편인 것은 없다. 이 또한 당연하다.


붓다는 2500년 전에 이 사실을 발견했다.


붓다 최후의 유언은 바로 자등명(自燈明)이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는 것이다.


의지해야 할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바로 그 의지처다. 곧, 우리에게 느낌으로 다가오는 삶이 바로 그 의지처다.


이러한 삶이 알리는 느낌을 바로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마음은 우리가 가장 신뢰해야 할 바로 그것이다. 마음은 결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나, 우리가 극복해야 할 적대물이 아니다.


스승은 물론 그렇게 말한다.


마음을 극복하라고, 마음에서 벗어나라고, 마음을 통제하라고 하는 것이 스승의 가르침이다.


섬뜩한 이야기다.


그렇게 스승은 내가 내 삶의 핵심인 내 자신을 부정하라고 종용한 다음에, 그 텅 빈 자리에 스승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최면의 핵심적인 기제다. 피험자의 공백을 만든 뒤에, 그 공백에 최면자의 사상을 꽂아 넣는 것이 바로 최면이다.


그래서 모든 스승은 최면가다.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며, 자기와 똑같은 생각과 행위를 하도록 조장하는 전체주의의 수장이다. 동시에 이 최면의 기제가 근대적 시민국가를 꿈꾸던 정치철학이 주장하는 계몽의 개념이다.


이제 이 모든 것이, 우리는 지겹고 끔찍하다.


1990년대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스, 펄 잼, 스크리밍 트리즈 등을 위시한, 그 모든 그런지씬의 밴드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했던 그 의미는 무엇이었던가? 그 뜨겁게 타오르던 불길이 하나의 숨결로 전하던 그 바람은 무엇이었던가?


바로 이것이다.


"단 하루라도, 내가 내 자신으로 살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스승의 시대를 종결짓고 나를 살고 싶어했는지 그 간절함에 대해 우리는 상상조차 못한다.


그리고 그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질 순간이 드디어 온 것이다.


삶이다.


이제 우리는 추상적인 정의와 보편적인 도덕의 삶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의 삶을 노래해야 한다.


가장 구체적인 우리 자신을 향해서만 펼쳐지는 바로 그 삶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도 없는 이 세상 끝에서도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삶이다.


스승이 우리에게서 강력히 분리시키려 한 바로 그 삶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손으로 되찾아야 한다.


나는 인간의 모범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붓다가 명확하게 선을 그어 선택했듯이, 나는 왕이 아니다. 나는 깨달은 자다.


삶을, 곧 나를 깨달은 자다.


스승의 시대가 저문 뒤에 펼쳐질 새로운 시대, 그것은 깨달음의 시대다.


바로 나의 시대다.


하늘 끝까지 나의 웃음이 쩌렁쩌렁 울림으로써,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 까무라칠만큼 멋진 기적이라는 사실을 가장 충만하게 알릴 바로 그 시대다.


나의 작은 호흡마저도 감동이 될 것이다.


이것은 약속이다.


가장 신성한 언약이며, 판도라의 상자 속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그것이다.


그대가 삶을 속일지라도, 나는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부정할 수 없이, 나로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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