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를 위해

"당연하지 않은 환상을 기각하며"

by 깨닫는마음씨




밥을 안 먹으면 죽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연합니까?


아주 높은 데서 떨어지면 죽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연합니까?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가 있으면 죽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연합니까?


선문답이 아닙니다. 정말로 당연한 이야기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벗어나면 우리는 삶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정의를 추구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연합니까?


잘 사는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연합니까?


남을 위해 살지 않으면 죽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연합니까?


이것들은 조금도 당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즉, 우리의 실제적인 삶의 안녕과 행복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삶이라고 하는 것을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처럼 당연한 이야기와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를 헷갈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곧, 당연하지 않은 환상이 마치 진짜처럼, 당연한 이야기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법같은 일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가장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가 가장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여기고 있는 핵심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러합니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마치 동화책 속 마법의 주문인 것처럼 여깁니다. 즉, 이 이야기에 대한 감흥이 없습니다.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응, 그래 맞는 말이지, 라며 사실 우리 자신과는 상관없는 어디 먼 나라의 이야기로 멍하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 까닭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핵심적인 이 당연한 이야기 대신에, 당연하지 않은 환상에 따라 살아갑니다.


곧, 남을 위해 살아갑니다. 나의 삶이 남의 것인 양 살아갑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삶은 흘러만 갑니다.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이 한 번뿐인 나의 삶은 강물처럼 소리없이 흘러만 가버립니다.


그렇게 끝내는, 여울가의 소리없는 울음으로만 남습니다.


환상은 우리를 기쁘게도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도 합니다. 삶의 당연함을 무시하는 환상은 특히나 우리를 비탄에 빠트립니다.


우리가 속상해지는 것은 삶이 잔혹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환상을 삶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에 대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환상은 무수하고, 그 내용은 다양합니다. 환상을 핵심주제로 삼아 그 끝없는 환상들을 쫓다 보면, 우리는 오히려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포획하려는 이가 포획되는 것입니다. 분석심리학의 융과 같은 이가 잘 보여준 모습입니다.


그보다는 우리는 환상과 아무 상관없는 삶의 당연함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삶의 핵심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생명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사실입니다. 생명체는 스스로의 삶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최대치로 동원합니다. 그럼으로써 충족됩니다. 여기에서의 충족감은, 더 좋은 자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야기됩니다. 즉, 필요와 그 응답이 일치된 충족감입니다.


이 충족감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부릅니다.


나의 삶을 나의 것으로 알며, 그렇게 나를 위해 내가 사는 이는 그래서 행복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 모양새가 좋아도 나의 삶이고, 싫어도 나의 삶입니다. 나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구걸해서 받은 것도 아니고, 우리의 능력으로 얻은 것도 아닌, 그저 나에게만 오롯하게 허락된 나의 것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정말로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나의 것입니다.


즉,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한 나의 삶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절대 남을 위해 작동하지 않습니다.


나의 폐는 정의를 위해 뛰지 않으며, 나의 심장은 세계의 평화를 위해 뛰지 않습니다. 오직 나를 위해서만 그것들은 작동합니다.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나는 나여야 합니다.


당연하게 나로서 나를 위해서만 살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늘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빚을 내서라도 나에 대해 빛을 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있는대로 또 없으면 없는대로, 능력이 있으면 있는대로 또 없으면 없는대로, 그 순간 드러나 있는 현실적인 한계와 가능성 속에서 늘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핵심은 바로 그 가장 좋은 것을 누구보다 나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남에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것을 먼저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 남이 가족이 되었든, 애인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간에, 먼저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해야 합니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이 무조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 주변의 것들은 오히려 그 가장 좋은 것의 수혜를 자연스럽게 얻게 됩니다. 이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메마른 물펌프에 먼저 마중물을 부어야, 그로 인해 끌어올려진 물이 넘쳐나서 주위의 목마른 사람들이 가득 물의 은총을 얻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남에게 먼저 가장 좋은 것을 주면 어떠한 일이 생겨나는지에 대해 우리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로부터 가장 좋은 것을 얻게 된 상대는 늦든 빠르든 간에 불만족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가장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하는 우리를 힐책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내가 가장 먹고 싶은 것을 오히려 상대에게 줘버린 우리는 만성적인 욕구불만에 시달리고, 우리 또한 그 상대를 증오하게 되며, 그 결과 우리 자신은 더욱 비루하고 가난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가 익히 경험해온 일입니다.


이 또한 환상 때문입니다.


"남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우리의 환상에 따라 우리는 상대에게도 환상을 줍니다. "저 사람이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환상을 상대 또한 갖도록 촉진합니다. 실제로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처럼 간주하며, 서로의 환상을 통해 서로의 피를 말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내가 아닌 상대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환상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아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그것이 정말로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소외입니다. 즉, 사랑은 그 사랑의 시발점을 시발놈으로 소외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나의 희생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먼저 나를 희생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스스로를 위해 충만하게 사는 일, 이것이 사랑의 원형입니다. 곧, 사랑은 무엇보다도 먼저 나를 위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표상으로 묘사되는 예수와 붓다도 결코 남을 위해 산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나를 위해 사는 삶의 대가들입니다.


예수와 붓다는 우리의 상상보다 더 거대하게 나를 위해서만 산 이들입니다. 이른바, 그들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물펌프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더 거대하게 나를 위해서만 펌프질했던 만큼, 역설적으로 물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풍요로운 수량으로 쏟아져나와 주위의 사람들을 가득 적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실제적인 움직임입니다. 나만 놓아둔 채 소리없이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나의 목마름을 위해 터져나와 시원하게 모두를 적시기까지 하는 분수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나로서 나를 위해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증명이며, 사랑의 체화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사랑이 체화된 존재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당연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당연하지 않은 환상들 속에서 우리는 당연한 이야기를 잊어 왔습니다. 정말로 우리를 살리는 삶을 잃어 왔습니다.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담당하는 삶을 잃었는데, 우리가 안녕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은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의 삶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당연하게 우리가 안녕하고 행복해도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기쁜 이야기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에서만 시작됩니다.


나의 안녕과 행복이 더는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 의해서 가능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이야기입니까? 대체 얼마나 기적같은 이야기입니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나는 기적입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하는 나는 기적입니다.


나의 삶은 결코 이기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의 삶은 바로 이 기적인 이야기입니다.


나의 삶은 나의 것입니다. 곧, 기적의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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