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서브컬쳐계에서는 이(異)세계물이 범람하고 있다.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
이것은 외로움이 낳은 소망이다.
그러나 자신이 외로운지는 잘 실감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처럼 외로움을 지루함으로 바꾸어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는 자신이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지루함을 견디어 나갈 흥미롭고 유익한 소재를 우리 자신이 개척하지 못하는 상황에 우울해한다. 즉, 자신이 못난 사람이지 않고 더 능력이 있거나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지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외로움을 지루함으로 바꾸어 경험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하자화(瑕疵化), 즉 소외의 문제는 더 깊어지는 셈이다.
실제로 많은 이(異)세계물에서는, 이 세계에서 결함많은 존재처럼 살아가던 주인공이 이(異)세계로 넘어감으로써, 그동안의 하자로서의 인생을 깨끗하게 리셋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서사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 세계를 떠나 이(異)세계로 가고자 하는 마음, 여기에는 분명 존재세탁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정당한 소망이다.
우리의 존재가 온전하기를 꿈꾸는 가장 정당한 소망이다.
이세계로 가야 한다.
지루한 이들이라고 쓰고 외로운 이들이라고 읽어야 하는 우리는 이세계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가는지를 모른다. 이동수단도 없다.
때문에 이세계물에서는 주인공이 우연하게 트럭에 치이는 사건이 이세계로 전송되는 결과를 만드는 전형적인 공식을 제공한다.
이 세계의 여행자들이 주로 트럭을 히치하이크의 대상으로 활용하듯이, 이세계로 떠나는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있어서도 트럭은 유용한 이동수단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세계로 보내줄 트럭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이세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챙겨야 하는 필수사항이다. 히치하이크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어야 히치하이커일 수 있는 까닭이다.
트럭은 어디에 있을까?
외로움이 그 힌트를 제공한다. 우리가 외로움을 바꾸어 경험하는 지루함이 힌트다.
지루하다는 것은 살아있는 실감이 없다는 것이다. 실감이 없어지는 핵심적인 이유는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까닭이다. 무의미한 반복은 무감동을 낳는다.
즉,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지루함을 경험한다는 것은, 이 세계가 무의미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모든 것이 똑같다. 정말로 아무 의미없이 돌아가기만 하는 쳇바퀴와도 같다.
이것을 자기폐색적 세계라고 부른다.
닫힌 생태계다. 새로운 것의 유입도, 낡은 것의 배출도 없는 까닭에 늘 똑같은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의 모습은 그대로 자신의 모습이다. 새로운 것의 유입도, 낡은 것의 배출도 없는 자기폐색적 자신의 모습이다.
결국 이와 같이 우리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동일한 모습의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외로움을 경험하는 이유 또한 동일하다. 늘 같은 모습을 반복하기만 함으로써 새로운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기에 외로움은 찾아오는 것이다.
세계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인 것처럼, 이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는 곧 세계로부터의 소외이기도 하다. 이 세계의 어느 곳에도 자신이 있을 곳이 없다. 더 정확하게는, 이 모든 반복의 구조를 순환시키는 하나의 톱니바퀴로서의 자신만 있을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자신일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구조의 동일성을 위해 봉사되기만 할 뿐인 인간의 사물화, 이것이 바로 소외다.
이 동일한 세계는 동일하기 때문에 동일한 소외만을 낳는다. 이처럼 세계로부터 소외된 개인은 자신의 가능성으로부터도 소외된다. 그 소외가 영원히 반복된다. 변하지 않는다. 절망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절망이다. 그래서 지루함의 끝은 절망이다.
가장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곧 가장 살 맛나지 않는, 때문에 우리의 것이라고 가장 실감나지 않는 세계의 모습이다.
이토록 실감나지 않는 이 세계가 절망적이기에 우리는 실감나는 이세계를 소망하는 것이다.
실감은 동일하게 반복되는 절망 속에는 없다. 그것은 절망 밖에 있다. 즉, 절망만이 반복되는 동일한 이 세계의 밖에 있다.
때문에 히치하이크의 적확한 방향은 밖을 향해서다.
곧, 밖을 향하는 것이 트럭이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그 모든 소재 중에서 가장 밖을 향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음이다.
마음은 언제나 관심가는 것을 따라, 동일한 자기의 밖으로, 동일한 세계의 밖으로 이동한다. 늘 갇히지 않고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것이 마음의 핵심적인 속성이다. 생명의 속성이며, 삶의 속성이다.
관심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의 이동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 자신 안에 포섭된 작은 것이 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에는 쉬이 관심이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때문에 우리보다 큰 것에 대해 관심은 작동한다.
이처럼 마음은 언제나 지금의 자기[세계]보다 큰 것을 향해 흐르고자 한다.
지금의 자기[세계]보다 큰 것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 경험되는 것이 바로 재미와 의미다. 감동이라고 부른다. 감동은 언제나 자기보다 큰 것을 향한 마음의 반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를 히치하이커가 되지 못하게 막는 가장 큰 여행의 장애물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우리의 외로움의 이유가 정확하게 알려진다.
우리가 외로운 이유는 지금의 우리 자신을 제일 큰 것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의 자신이 인식하는 이 세계를 제일 큰 것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와 세계가 이미 소외되어 있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 세계를 우습게 보거나, 이 세계 앞에 위축되어 있는 양가적 태도로 교차되어 드러난다.
그러나 자기 즉 세계라는 입장에서는, 그 둘은 동일한 자기폐색의 옥좌를 의미한다. 홀로 제일 높은 곳에서 제일 대단한 자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현실이다. 혼자라서 춥고, 높아서 더 춥다. 이미 냉담하게 분자운동이 멎은 그 현실 속에서는 생생한 실감의 활력이 있을 수 없다. 외로운 것도 당연하다.
자신이 다만 한 자세로 가만히 똬리를 틀고 있어서 지루할지 모른다는 착각이, 이런저런 재미있을 만한 동작을 옥좌 위에서 끝없이 추구하게도 만들지만, 그렇다고 외로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때문에 외로움의 굴절된 이름인 지루함도 사라지지 않는다. 자기폐색의 옥좌 위에 동일하게 머물러 있는 한, 외로움도 지루함도 동일하게 반복될 뿐이다.
이(異)세계라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자기[세계]와 다른 것이다.
이것은 곧 타자를 지시한다.
마음은 언제나 지금의 자기[세계]가 제일 크다는 착각을 무너뜨리고 바깥의 타자를 향해 흐른다.
그래서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이란 바로 타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동일한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세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자세와는 무관하게 그 동일한 세계의 밖으로 나가는 일이다.
마음을 트럭으로 삼아 성공적인 히치하이크를 이루는 일이다.
이세계로의 여행에 있어 트럭에 치이는 일은 곧 트럭을 타는 일과 같다.
치인다는 것은 강렬한 접촉이다. 달리는 트럭에 접촉하면 큰 충격이 있다. 타자를 향해 움직이는 마음을 접촉한다는 것은, 즉 타자를 마음으로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그러한 충격을 수반하는 일이다. 그로 인해 기존의 자신 및 세계가 해체되는 충격적인 경험이다.
이와 같은 트럭의 충격에 열려 있는 일이, 그 충격을 우리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일이, 바로 트럭을 타는 일이다.
타자를 향해 자신의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히치하이크는, 이처럼 역설적으로 타자를 자신의 안쪽으로 들여놓으려는 의도를 통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배출은 유입의 의도로 인해 성취된다.
이로써 닫혀 있던 하나의 생태계의 유출입이 회복된다.
반복에서 순환으로 거듭난다.
동일한 세계의 자기폐색적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상호관계적 순환이다.
그렇게 동일했던 이 세계는 불현듯 새로운 이(異)세계가 된다.
마음이 한 일이다.
마음은 하나의 세계의 밖을 향함으로써, 원래의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서 열어낸다.
곧, 마음은 세계를 여는 힘이다.
세계의 가능성을 새롭게 여는 힘이다.
외롭고 지루하던 이 세계를, 따듯하고 즐거운 세계로 개방하는 마법의 힘이다.
이 세계를 여행하다가 지쳐 이제 이(異)세계를 여행하고자 하는 정당한 소망을 가슴에 품은 히치하이커들은 그래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
이 소망이 구현될 수 있는 실천적 문장은 다음과 같다.
"타자를 마음으로 만나고 싶다."
이 세계를 이(異)세계로 여행하게 된 성공적인 히치하이커들이 그 여행의 가장 마지막까지 가슴에 가득히 품고 있던 소망이며, 이제 이 세계를 이(異)세계로 발견하고자 하는 새로운 히치하이커들을 위해 전해지는 친절한 안내서의 가장 첫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