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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Jul 05. 2019

시끄러운 그대에게

"사람이야기"


  그대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그대는 너무 시끄럽다. 


  외제차를 타고 엔진의 굉음에도 모자라 클랙슨을 추가하는 그대여. 배달오토바이를 타고 머플러의 굉음에도 모자라 소음기를 탈거하는 그대여. 


  클럽의 음악소리에도 모자라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노래하는 그대여. 시장의 호객소리에도 모자라 자신이 얼마나 못났는지에 분노하는 그대여. 


  서점을 가득 채운 책들에도 모자라 유튜브로 지식을 먹어대는 그대여. 머리를 가득 비운 자동 파일럿 모드에도 모자라 술집에서 무식을 토해내는 그대여. 


  그대는 너무 시끄럽다. 


  그래서 그대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그중에서 제일 시끄러운 그대는 바로 모르는 데 아는 척 하고 있는 그대다. 마치 어울리지도 않는 요란스러운 옷을 입은 것 같은 그대다. 


  그대가 모른다는 것을 그대 자신은 안다. 


  그대는 똑똑하다. 이 세상의 누구도 결코 그대를 속일 수 없다고 자부한다. 인생에 대해 좀 아는 그대다. 


  그 말대로다. 그대는 결코 그대 자신을 속일 수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대 자신을 속일 수 없이, 그대는 모른다. 


  그대가 모르는 것은 단 하나다. 그 하나를 몰라 그대는 전부를 모른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모른다. 


  자신을 모르니 그대는 늘 존재감이 없다. 그래서 늘 존재감을 어필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현란한 화장을 하며, 극적인 표정으로 과장된 대사를 외친다. 그대는 삼류연극을 한다. 그대는 삼류연극의 광대다. 광대가 되어야만 누군가가 자신을 중요하게 봐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대는 늘 대상을 갈구한다. 


  대상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그리고 자신이 대상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얻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대상을 향한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 그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삼아 그대 자신의 존재감을 위탁한다. 


  때문에 그대는 늘 상대를 조종하고, 통제하며, 지배하려고 한다. 그대에게는 그것이 그대의 존재감과 관계된 너무나 절실한 문제인 까닭이다. 그대가 죽는가, 사는가의 문제와 같다. 


  하나의 광대가 이처럼 다른 누군가를 또 다른 광대로 삼아 인형놀이를 한다.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 입히고, 잠을 재운다. 부산한 소꿉놀이다. 


  인형뿐이다. 살아있는 자는 여기에 없다. 체온을 가진 이는 여기에 없다.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어서 그대는 늘 외롭다. 외로운 정적이 견디기 힘들어, 그대는 더 시끄러워진다. 


  그대는 그대가 얼마나 수줍음이 많은지 안다. 그대라고 하는 존재는 수줍음이 많다. 그대가 시끄러울수록 존재는 부끄러워 커튼 뒤로 숨는다. 그렇게 그대가 더욱 시끄러울수록 그대는 더욱 존재감을 잃는다. 그대가 존재감을 잃고 더욱 인형이 될수록 그대는 더욱 사람을 잃는다. 


  나는 안다. 


  그대가 시끄러웠던 이유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사람 있다며,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그대는 단지 사람과 친해지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과 친해지는지를 몰랐기에, 그저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사람과 친해지는지를 몰랐기에, 그저 사람을 대상으로 삼아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하게 통제하려는 인형놀이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사람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것이 되어갔다. 붙잡아두려는 모든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대의 인형들은 사람이 되고자 반드시 그대의 곁을 떠나갔다. 사람은 그대에게 미지의 생물체와도 같았다. 


  사람은 미지다. 이것이 그대가 안 것이다. 


  그대는 안 것이다. 그대는 미지다. 


  그대가 알지 못하는 미지 앞에서 그대가 떠벌일 수 있는 말은 없다. 요란스럽게 꾸며야 할 이유도 없다. 통제하려는 의도는 꿈에서라도 생각할 필요도 없다. 


  미지와 친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지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미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지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미지인 그대 자신에게 조용히 다가가 물어보는 것이다. 


  그대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것은 그대 자신밖에 없다. 


  그대가 모른다는 것을 그대 자신은 안다. 그대가 모른다는 그대라는 미지를 그대 자신은 안다. 


  묻는 자는 고요하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대는, 푸른 초원 위에 뿌리내린 거목과도 같다. 대답을 들을 때까지 그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견고하다. 듬직하다. 탄탄하다. 


  그것이 그대의 존재감이다. 


  사람이라는 미지와 친해지기 위해, 미지에게 다가가 묻는 그대는 무엇보다 존재한다. 가장 존재한다. 존재감으로 가득 찬다. 자신의 존재감을 실감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실감하며 사는 존재, 그것이 사람이다. 


  그대는 사람을 다시 찾은 것이다. 그렇게 간절히 찾아 헤매던, 하늘 위에서 땅 밑까지를 시끄러운 소리로 도배하며 찾아다니던 그 사람을, 이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찾은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만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사람으로만 가득하다. 온기가 넘쳐 흐른다. 이것이 그대가 만든 따듯한 세상이다. 차가운 광대의 세상을 끝내고, 그대가 스스로 펼쳐낸 사람의 세상이다. 


  이제 그대의 이야기가 들린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사람을 사랑했던 그대의 이야기로 가득 찬다. 사람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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