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이 아닌 사람"
머리가 무겁다. 관자놀이가 눌린다. 의식이 혼탁하다. 목이 결리고 어깨가 아프다. 뭘 먹고 싶지도 않은데 속을 게워내고 싶다. 손발이 차고 저릿하다. 전신의 신경이 어딘가에 붙잡혀 있는 것 같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줄에 매달린 마리오네트 인형이 된 것 같다. 잠들고 싶은데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자고 싶다. 계속 자고 싶다. 깨고 싶지 않다.
나는 알았다.
그대가 경험하는 이 증세의 이름은 성실함이라는 것을.
그대는 성실함을 앓고 있다.
그대는 그대가 성실하지 않아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대가 평가하기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수줍고 뿌듯한 미소를 띠며 입버릇처럼 하던 말들이 "그저 성실하게 하루하루 노력했을 뿐이에요."이었기에, 지금 성공하지 못한 이 모양 이 꼴이 된 그대는 충분히 성실하지 못했던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적어도 그대의 성실함을 세상이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다. 그대가 더 성실하게 노력해 부정할 수 없는 결과를 남겼더라면, 세상은 그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전제에 그대는 동의하는 까닭이다.
그대는 무언가를 잘 못한 자다. 성실하게 잘 하려고 해보았지만, 결과는 이 모양 이 꼴이다.
이처럼 잘 못한 그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서도, 혹시나 더 잘 해볼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며 그대가 더 성실해지기 위한 솔루션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지쳐서 마냥 잠들고픈 그대가 잠들 수 없는 그 이유다.
그렇게 잠들 수 없어 완벽하게 소진된 그대는 더욱더 잘 못하게 되어 간다. 더욱더 못난이가 되어 간다. 더욱더 가슴에 못이 박혀 간다.
잘 못한 그대는 이제 잘못한 그대가 되었다. 존재 자체로 잘못이 되었다. 살아서는 안될 죄인이 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대는 성실함을 앓고 있었다.
성실함은 그대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러나 그대여, 성실함으로 인해 그대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일은 필연이었다. 그것은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그대는 잘못이 아니다.
그대는 그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성실함이 정확하게 그대를 이 모양 이 꼴이 되게 만든 것이다. 성실함의 정확한 결과다.
꼴을 만드는 것은 틀이다. 거푸집이다.
그대는 누군가가 그대를 자신의 이득에 맞춰 조형하기 위해 만든 거푸집에 들어가, 거푸집의 형상 그대로 성실하게 이 모양 이 꼴로 찍혀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대는 거푸집으로 만들어진 도구였고, 곧 역할이었다.
그대는 바로 역할에 성실했던 것이다.
그대는 잘 못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실하게 잘 했던 것이다. 바로 역할을.
그럼으로써 그대는 단지 사람을 잘 못하게 되었던 것뿐이다. 사람임을 잘 기억 못하게 되었던 것뿐이다.
사람이 역할로 축소된 것을 우리는 소외라고 부른다. 소외는 부품이 된 것이다. 톱니바퀴의 삶이다.
그동안 그대는 자신이 이 톱니바퀴로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는 암묵적인 협박 또한 받고 있었다.
성실한 톱니바퀴가 되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며 그대에게 들려온 이야기는 분명 협박이었다. 성실하지 못하면 죽어야 한다는 명백한 협박이었다.
역할을 잘 할수록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이 건강한 의지의 이야기 속에서, 역할을 못 할수록 죽음이 닥쳐온다는 이 두려운 상실의 협박 속에서, 그대는 성실하게 톱니바퀴를 돌려갔다.
그렇게 역할에 최선을 다한 그대는, 최선을 다해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사람이 아닌 부품이 되었다. 필연이었다.
사람을 얻으려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사람을 잃게만 된 그대는, 필연적으로 그대 자신이 잘못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해도 해도 안되는 그대는 애초부터 결격사유가 있는 존재인 것만 같았다. 살면 안되는 부적격자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가 해도 해도 안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해도 안되는 길 위에 그대가 서있었던 것이다.
성실함이 만든 역할의 길은 안되는 길이었고, 성실함이 만든 이 모양 이 꼴의 길은 못하는 길이었다.
사람이 안되는 길이었고, 사람을 못하는 길이었다.
그대가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그대가 이미 아무 것도 안해도 사람인 까닭이다.
그대가 아무리 다양한 톱니바퀴가 되어도 결코 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대 자신이다.
그대가 이미 아무 것도 안되어도 그대 자신인 까닭이다.
역할이 아닌 것에 사람이 있고, 역할이 아닌 곳에 그대 자신이 있다.
그대는 사람인 그대 자신을 이제 이렇게 불러야 한다.
"나다."
성실한 부품으로 사는 것이 사람다운 것이 아니다.
나로 사는 것이 사람다운 것이다.
나는 역할이 아니다. 이 세상에 나라는 역할은 없다. 때문에 나는 성실하지 않다.
다만 나는 사실일 뿐이다. 성실이 아닌 사실일 뿐이다.
태양이 성실할 필요가 없듯이, 사실이 사실이기 위해 성실은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성실이 집요하게 들이대는 상실의 협박으로도 결코 부정될 수 없는, 나는 사실이다.
성실한 역할로 자신을 잘못 알던 그대여. 자신을 잘못으로 알던 그대여.
그대는 사실이다.
그대는 사실 사람이다.
잘못이 아닌 사람이다.
잘 못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미 사람하는 사람, 그대하는 그대다.
사랑하는 사람, 그대다운 그대다. 어여쁜 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