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푼이의 삶"
그대는 사는게 무척 힘이 든다.
그대가 무엇을 해도 한 만큼 인정받지 못한다. 그대가 무엇인가에 열심히 노력한 만큼 그 반대편에서 불만족은 똑같은 크기로 누적된다. 그대가 하려고 한 그 모든 바람직한 것들보다 그대가 하지 않으려 한 실책들만 부각된다.
그대는 억울하다. 착한 사람만 바보가 되는 세상인 것 같다. 그래서 그대는 더욱 힘들다.
그대의 삶은 왜 이토록 힘든가?
그대여, 바위를 옮기는 일이 힘든 것은, 바위를 옮길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힘이 든다는 것은, 곧 힘이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왜 힘이 없게 되었는가?
힘을 키우려고 자기계발에 매진하며 무수한 노력을 경주하였건만, 왜 그대는 아직도 힘이 부족하단 말인가. 언제나 무슨 일을 하기에는 그대는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은 것처럼, 왜 늘 힘이 부족한 모습으로 느껴진단 말인가.
그대여, 착한 그대여.
그대가 힘이 없게 된 것은 그대가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해왔기 때문이다.
그대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실행해야 할 착함의 명세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착함의 명세서에는 나쁨의 목록들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착함은 반드시 나쁨의 상대항으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그것은 이와 같다.
그대가 빨간 볼펜을 나쁜 것으로 보며, 그 빨간 볼펜을 그대의 일상 속에서 결코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하루종일 그대의 머리 속에는 빨간 볼펜만 맴돌 것이다. 빨간 볼펜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대를 빨간 볼펜은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붙잡고 있는 까닭이다. 빨간 볼펜을 나쁜 것으로 말하기 위해, 또 그 반대편에 위치시킨 그대 자신을 착한 사람으로 말하기 위해, 그대가 빨간 볼펜을 스스로 붙잡고 있는 까닭이다.
이처럼 그대가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만큼, 그대가 규정한 나쁜 것은 함께 끌려온다. 그대가 착하게 되려는 그 열정의 강도만큼 나쁜 것은 동일한 세기로 끌려온다.
그러나 그렇게 끌려온 나쁜 것을 그대는 결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대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대는 결코 나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대는 힘들다.
이는 마치, 만 원짜리 지폐를 많이 갖고 싶은데, 세종대왕이 그려진 한쪽 면만을 가지려 하고, 그 반대쪽 면은 버리고 싶어하는 모습과 같다. 그래서 그대는 힘들다.
우선적으로, 세종대왕님만을 모시기 위해, 그대는 심혈을 기울여 얇은 지폐를 더 얇게 반으로 갈라야 한다. 상상만 해도 아득한 작업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갈라낸 지폐들을 그대의 책상 위로 쌓아갈 때, 그대는 그저 휴지조각들을 쌓는 것과 같다. 반으로 갈라진 지폐는 이미 화폐로서의 기능을 잃는 까닭이다.
결국 그대에게 남는 것은, 지폐를 갈라내기 위해 녹초가 되어 힘을 잃은 그대 자신과, 반으로 갈라져 화폐로서의 힘을 잃은 휴지조각들의 현실뿐이다.
그렇게 힘을 잃었기에, 쓸 수 있는 힘이 부족해 그대는 힘들다.
하나인 것을 반으로 쪼개 반푼이가 되었기에 그대는 힘들다. 반푼이의 삶이기에 그대는 힘들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는 하나다. 아무리 착해도 그대고, 아무리 나빠도 그대다. 그대가 드러난 지금의 모습과 같이 그대로 고유한 것은, 이 세상에서 그대 하나뿐이다.
그대는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저 그대라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일 뿐이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착한 그대여,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며 민폐만은 끼치고 싶지 않은 착한 그대여, 누구에게도 비난받거나 욕먹고 싶지 않은 착한 그대여.
태양에게 햇살을 받아야 그대는 꽃필 수 있고, 대지에서 양분을 빨아들여야 그대는 꽃필 수 있으며, 나비에게서 화분을 전해받아야 그대는 꽃필 수 있다.
그대는 심히 이 우주의 민폐덩어리다. 그대라는 꽃 화사히 피워내고 싶어, 우주가 심히 사랑하는 민폐덩어리다.
때문에 그대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하나이기에 그 일은 힘들지 않다.
그대가 하나라는 사실에, 그대는 그저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우주가 그대를 사랑스러운 민폐덩어리로 삼아, 먹이고, 재우며,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그대를 이루어준 그 모든 것에 그저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그대여, 그대는 잘못이 아니다. 이 우주의 실책이 아니다. 나쁜 존재가 아니다.
그대가 그대 자신을 나쁜 실패작으로 생각한 만큼, 그대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왔다. 그대가 잘못된 존재라는 죄책감을 씻고자 민폐덩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
그렇지 않다.
그대는 언제나 좀 병신같지만 멋있고, 좀 찌질하지만 이쁘고, 좀 못났지만 사랑스럽다. 그렇게 하나다. 그렇게 하나인 그것이 바로 그대다. 우주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금 단 하나밖에 없을 그대의 모습이다.
지금 주어진 그대의 모습 때문에 그대가 힘든 것이 아니다. 그대 사는 삶이 힘들지 않도록 지금의 그대 모습이 주어진 것이다. 그대가 결사코 부정하며 밀어내던 그대의 반쪽 속에는, 그대가 지금 힘들어 하는 삶을 열어낼 열쇠가 담겨 있다. 그대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의 저자인 로버트 풀검은 이러한 이야기를 전한다.
친애하는 동료 순례자에게.
1984년 여름이 끝날 무렵, 당신은 홍콩 국제공항 대합실의 내 옆자리에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보나 '귀국하는 젊은 미국 여행자'였다. 그때 당신은 청바지와 티셔츠 대신 회교도의 전통의상을 걸치고 샌들을 신고 있었다. 단정하게 잘랐던 머리는 어느새 치렁치렁 자라 있었다. 당신의 옆에 놓인 배낭은 좀 고생스러운 여행을 한 표시로 흠집이 나 있었고, 때도 묻어 있었으며, 세상을 둘러보면서 주워 모은 신비한 기념품들로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운이 좋은 젊은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는 실연을 했거나 아니면 개강으로 말미암아 모험을 멈추게 된 것이 안타까워 우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당신이 흐느끼기 시작하자 나도 덩달아 슬퍼졌다. 과거에 때때로 외로웠지만 용감하게 이겨냈던 일을 생각해보라. 실컷 울고나면 풀릴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목을 놓아 울었다. 그리고 나를 붙들고 하소연했던 것이다. 슬픔과 두려움이 오뉴월 장마비 같은 눈물을 쏟게 했다. 내 손수건과 당신의 손수건이 다 젖고 휴지 한 곽이 풀죽이 된 뒤, 당신은 폭포처럼 쏟아지던 눈물을 소매 끝으로 훔치며 겨우 눈물을 거두고 마침내 사연을 털어 놓았다.
사실 당신은 아직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당신은 여행을 계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신은 돈이 떨어졌고 친구들도 주머니가 바닥났다. 그래서 당신은 홍콩 국제공항 대합실에서 자존심 때문에 구걸도 못하고 굶다시피하면서 이틀 동안이나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당신이 탈 비행기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당신의 비행기표는 온데간데가 없었다. 당신은 말을 마치자 다시 내 손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은 어뢰에 맞은 화물선처럼 차갑고 절망적인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심정으로 대합실 의자에 세 시간이나 앉아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이렇게 앉아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문득문득 들었다.
눈물이 다시 잦아들자, 당신의 눈물의 파도에 함께 쓸려갔던 시카고에서 온 어느 친절한 노부부와 나는 당신에게 점심이나 사준 뒤 뭔가 대책을 마련하도록 항공사의 고위 관계자를 만나보겠노라고 자청했다. 우리와 함께 가기 위해 일어선 당신은 짐을 들려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당신이 총에 맞은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라 당신의 비행기표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비행기표를 여태 깔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무려 세 시간 동안이나.
지옥의 문턱에서 구원받은 죄수처럼 당신은 눈물과 웃음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우리 모두를 껴안아준 뒤 홀연히 떠나갔다.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그리고 다가올 삶을 맞으려고───. 당신의 극적인 상황에 울고 웃다가 술에 취한 것처럼 얼떨떨해진 공항대합실의 우리 승객 일행을 남겨놓은 채 당신은 그렇게 떠나갔다.
나는 당신 이야기를 셀 수 없을만큼 많이 되풀이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 아가씨는 자기 비행기표를 깔고 앉아있었던 거지요."
종종 내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비행기표를 깔고 앉았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 다가올 일에 맞서게 해주는 내가 가진 그 어떤 것을 깔고 앉았을 때, 나는 당신을 떠올리며 우리 둘에게 씽긋 웃어보인 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대여, 그대가 깔고 앉아서, 그대 등 뒤로 없는 것처럼 돌려서, 그대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떼서, 그대가 부정하고 있는 그대의 반쪽이 그대의 열쇠다. 한쪽에 그대라는 문제가 있으며, 그 반대쪽에 그 문제에 대한 열쇠가 있다. 그 둘은 하나다.
하나임을 기억한 그대는, 하나임을 받아들인 그대는, 하나임에 감사할 수 있게 된 그대는 힘차다. 씽긋 웃어보인 뒤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더는 그대를 힘들게 하지 않을, 다가올 삶을 맞이하기 위해.
속상한 반푼이의 역사를 끝내고, 그대는 한 몸으로 함께 나아간다. 햇살이, 대지가, 나비가, 함께 웃는다. 정겨운 하나의 웃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