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망각자

"오늘도 큰웃음 있었네"

by 깨닫는마음씨




아름다움을 망각한 이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유교는 대표적으로 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길이다.


반면, 깨달음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길이다.


이를 다시 표현하자면, 사실과 멀어질수록 아름다움이 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아름다움에 대한 그 어떤 추구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가장 아름답게 발견된다.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 중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라는 작품이 있다. 여기에서는 한 시계공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최고의 예술품을 창조하는 일에만 매진한다. 그것은 곧 인공생명의 창조며, 결국 시계공은 정교하게 작동하는 기계나비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 즉시 기계나비는 자기처럼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의 손에서 뭉개지는 결말을 맞이하며, 시계공은 알게 된다. 있는 그대로 창조되어 있는 것이 이미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반면, 유교는 있는 그대로를 아름답게 보기보다는, 자기 의지대로 임의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려는 이들이 가는 길이다.


하이데거도 한때는 유학자와 같았다.


그러다가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그 일이 결국 폭력이 될 수밖에 없음을, 또한 아름다움의 미의식에 중독된 이가 결국 파멸을 지향할 수밖에 없음을, 또 다른 유학자인 히틀러의 모습을 보고 알게 됨으로써 전회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말년은 그저 숲속에 지은 통나무집에서 하루종일 자연을 보고 사색을 하는 가운데 무르익어갔다.


사실 자신이 해야 할 근본적인 과업은 아무 것도 없으며,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대해 자신이 필수적으로 보탤 것 또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는 그 자신이 직접 아름다움을 창조하려고 한다. 그렇게 아름다움의 원천을 자기 자신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가 창조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실제는 모방이다.


유한자의 입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은, 있는 그대로 창조된 것을 가공하는 이외의 일로는 성립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유한자에게 있어 무(無)로부터의 창조란 없다. 사실은 다 모방이다.


자신이 이 유한자임을 소외하고 있는 이들을 대개 유학자라고 부른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자신이 모방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소외한다. 자신은 모방하고 있는 이가 아니라 창조하고 있는 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구원과도 같다.


신이라고 불러도 좋고, 마음이라고 불러도 좋고, 존재 그 자체라고 불러도 좋은 '바로 그것'이 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창조했다고 할 때, 유교적 주체는 이를 모방하여 아름다움을 창조하려 함으로써, 결국 자신이 창조주인 척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적인 작가가 되어야만 자신이 여력을 다해 소외시키고 있는 유한자로서의 처지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창조라고 하는 이름의 모방은 이들에게 "예술은 영원하다."의 진술로 선언되는 것처럼 불멸의 이득을 얻게 해주는 듯한 착각을 제공하며, 이 착각이 곧 유한자로서의 필멸의 운명이 두려운 이들에게는 흡사 구원이다.


이러한 상황은 아주 정확한 의미로는 코미디인데, 이것이 왜 코미디인지를 말하려면 미친 소리를 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이러하다.


한 화가가 자신이 이미 한참 전에 완벽하게 완성시킨 그림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그는 그 그림이 자신의 것인지도 모른 채 그림을 필사적으로 모방해 또 다른 그림을 그린 다음, 이제 그 모방품을 들고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의 걸작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결국 이러한 방식으로 화가가 창조해낸 것은 작품이 아니라 그저 코미디일 뿐이다.


화가가 이미 완벽한 마스터피스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을 때 이 코미디는 만들어진다.


모든 코미디는 망각이 만들어낸다.


이것은 이와 같은 미친 소리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가장 아름답게 창조한 것을 보러 이 세상에 온 것이다.


우리가 실은 창조주다.


그러나 창조주라는 것을 잊은 채, 우리가 창조한 것을 다시 우리가 모방하고는, 그 모방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한다.


"보라. 이것이 내가 창조한 오리지널의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걸고 추구해온 유일한 아름다움이며, 긴 노력 끝에 드디어 완성하게 된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이와 같이 말하며 우리는 유학자가 된다.


노자는 정확하게 공자가 유학자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참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깨닫지는 못했구나."


이와 유사하게, 홍인 선사도 제자인 신수가 유학자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참 아름다운 말이지만, 깨닫지는 못했구나."


깨달았다는 것은, 내가 창조주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내가 창조주라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망각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이 태초에 만든 것을 계속 모방하며, 그 모방품을 오리지널로 인정받기 위해 사람들에게 열과 성을 다한다. 그러다가 열을 내고 성을 낸다.


이것은 다시 또 이러하다.


자신이 마스터피스를 그렸다는 사실을 망각한 화가가 모방품을 그려낸 뒤, 이제는 자신이 화가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평론가가 되어서, 그 모방의 그림이 오리지널로서 정당한 아름다움을 갖추었는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입장에 서는 것과 같다.


이미 자타가 아니다. 자신과 사람들이라는 두 입장이 아니다.


창조주가 창조주임을 잊고 창조주임을 평가받고자 하는 창조주가 있으며, 창조주가 창조주임을 잊고 창조주임을 평가하고자 하는 창조주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 연극에 동참하고 있는 자신도 사람들도 둘이 아닌 동일한 창조주다. 동일한 망각 속에서 자신이 창조한 마스터피스의 모방품에 대해, 이제야 유일하고 진정한 오리지널이 이 우주에 처음으로 창조되었다며, 복화술처럼 떼창을 부르고, 거울을 보며 군무를 하는 동일한 창조주의 모습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코미디다.


창조주는 이 코미디를 좋아한다.


그가 자신을 자꾸 망각하려는 이유는 웃음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쇼가 정확하게 말했듯이 깨달음은 이 웃음이다.


창조주는 깨달음 놀이를 좋아한다.


자신이 창조주인 것을 잊었다가, 마빡을 탁 치며 웃음으로 깨어나는 일을 좋아한다.


『갈매기 조나단』의 작가 리차드 바크의 걸작 『일루전스(Illusions)』에서는 그 이유가 묘사된다.


"우주를 가장 멋지고 즐거운 곳으로 상상해보라. 그러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창조주는 네 상상보다 더 멋지고 즐거운 곳으로 이 우주를 상상했다."


창조주는 이 우주를 지루한 곳으로 상상하지 않았다.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의 곳으로 상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망각한다.


망각을 통해 그는 자신을 잊으며, 곧 자신을 잃는다.


거듭해서 자신을 잃음으로써, 그는 이 우주가 늘 동일하게 꽉 차있는 곳이지 않도록 했다. 동일한 것의 영원한 지속이 바로 지루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없이 계신 신'의 의미다.


창조주는 자신을 망각함으로써 없이 계신 분으로서, 이 우주에 불확정성의 구멍이 뻥뻥 뚫리게 만든다. 한 번도 같은 일이 없도록 만든다.


그렇게 그는 망각을 통해 지금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없이 계신 주로서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발견될 수 있는 아름다움 중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이 사실을 깨달아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창조주는 그래서 이제 망각을 꺼리지 않는다. 더 적극적인 망각 속으로 들어간다. 자각의 망각이며, 망각의 자각이다.


그는 망각으로 오늘도 우주를 어제보다 더 멋진 곳으로 창조하고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창조하고 있다.


이미 그렇게 실시간으로 가장 멋지게 창조된 마스터피스인 바로 오늘이기에, 오늘 이와 같이 펼쳐지고 있는 그대로이기에,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있는 그대로는, 외재적 대상물이 나와 상관없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는, 내가 만든 것이라는 의미다.


내가 가장 완벽하게 만들었기에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만든 뒤 "보시기에 좋았도다."가 있는 그대로의 의미다.


이것이 사실이며, 또한 사실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다.


이러한 것들은 어디 책을 보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블로그나 유튜브, 영성서적들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들을 무수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에 담긴 정보를 얻었다고 그것이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정말로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스스로라고 하는 것은 '나 혼자 외부에 맞선 그 보상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안에서 물이 샘솟듯이'의 의미다. 그래서 그냥이라고 한다.


정말로 알게 될 때는 다 그냥 알게 된다.


그냥 잠들고, 그냥 깨어나는 것과 같다.


아름다움도 그냥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이 미친 소리인 이유는 이 소리를 활자로 듣고 있는 당신에게 내가 그냥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발견되었다. 당신에게 내가 미쳤다. 발견된 당신에게 이 손끝이 미칠 수 있었다. 가까이 닿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신도 미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당신은 그냥 미(美)친 사람이다.


당신은 그냥 더없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당신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이 모든 아름다움이 만들어졌다. 당신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밥먹고 계속 자."라는 것은 엄마의 가장 아름다운 말씀이다.


당신도 한 번만, 정말로 이 모든 것이 그러하다는 사실에 미친 사람으로 자신을 살짝 발견하고, 다시 망각 속으로 젖어들도록 하자. 꿀같은 망각일 것이다. 자면서 짓는 그 미소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렇게 잠시 후 오늘도 큰웃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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