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초월심리학을 리스펙하며"
그래도 심리학 나부랭이라고 심리학이 우습게 보이면 화가 납니다. 특히 심리상담 분야가 얕잡아 보이면 그렇습니다.
자기작업도 되지 않은 이들이 심리상담을 할 수 있습니까? 자기 인생에서 많은 고통을 겪고 그 고통을 스스로 치유한 경험이 있으니 자기작업은 된 것이라는 논리는 정말로 성립 가능합니까?
그렇다면 대한민국 해병대 장병들한테는 왜 상담을 안 받으십니까? 노래를 부르며 자기 상처를 치유했다고 하는 연예인에게는 왜 상담을 안 받으십니까? 연극을 하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하는 배우에게는 왜 상담을 안 받으십니까? 무엇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집안 환경 속에서 홀로 일가를 일구신 부모님께는 왜 상담을 안 받으십니까?
만약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심리학 박사학위는 갖고 있니?
(박사학위 미만이라면) 공신력 있는 심리상담 전문기관에서 3년 이상 근무했니?
(석사학위 미만이라면) 아니면 상담과정의 방향을 잡아주고 점검해줄 슈퍼바이저라도 있니?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이 성립되지 않는 상황에서 심리상담의 제반활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가능한 일입니까? 아니면 대한민국이라 가능한 일입니까?
만약 (결코 그럴리는 없겠지만) TV에서 BTS가 나와 "마음은 온전합니다."라며 심리학 이야기를 해 인기를 끌면, 이제 BTS는 대중에 의해 지지받는 그 권위를 통해 바로 심리상담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심리학이 좀 우스워 보입니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연인을 그렇게 우습게 대하는 일이 행복합니까?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자기 분야가 우습게 대해지면 분노할 거면서, 남의 분야인 심리학은 왜 그런 식으로 취급합니까?
만약 심리학을 자기 분야로 삼아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자연스럽게 그 사랑을 증거합니다. 보통은 학위며, 또한 유관기관 취업경력입니다. 그 길을 사랑해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소설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이가 글을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등단해서 출간작가의 지위를 얻게 되듯, 심리학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이가 심리학의 학위를 얻게 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게 아니라 도구처럼 이용만 하고 싶다면 물론 다 필요없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자기 분야가 장난감처럼 희롱되고 무시받는 건 기분나쁠 거면서, 왜 타 분야는 그러한 방식으로 취급합니까?
바로 이러한 상황 자체가, 앞서 말했듯이 자기작업이 되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여기에서 자아초월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이라는 심리학의 한 분과를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 태동하여 오늘날까지 심리학의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잡은 이 분과는, 소위 영성과 심리학의 만남을 다루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자아초월심리학자들이 심리학계에 공헌한 업적들 중 두드러지는 부분은, 영성이라고 하는 자아 바깥에 상정되는 소재를 다루는 만큼이나, 실은 자아의 발달을 대단히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자아초월심리학자인 잭 엥글러는 함축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무아가 되려면 먼저 자아가 되어야 한다(You have to be somebody before you can be nobody)."
이 말은 이렇게도 쓰일 수 있습니다.
"자아가 초월되려면 먼저 자아가 발달되어야 한다."
자아초월심리학자들은 여러 사례들을 연구하는 동안 이러한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모종의 비일상적 체험을 해서 온전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보고하는 많은 이들이 실은 삶의 수준에서 형편없는 퇴행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이들에게 심리적 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미성숙성을 지지하고 강화해줄 마법적 소재로 쓰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군의 자아초월심리학자들은 깨달음이니 온전함이니 영성이니 하는 것들보다, 오히려 미성숙한 자아를 발달시키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자아초월심리학의 성과는 절대적으로 리스펙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작업이라는 것은 곧 자아발달에 대한 것입니다.
자아발달은 자아가 입각한 스토리를 갈아치우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렇게 스토리를 갈아치우고자 하는 세력이 바로 자아입니다. 자기는 오히려 갈아치우는 주체로 위치해서 발견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자아발달은 언제나 그렇게 은밀하게 숨은 자아를 노출시키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식물이 빛을 받고 자라듯이, 자아가 조명되어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출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보통 이 과정에는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사실 삶을 그냥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일상에서 이러한 작업이 자연스럽게 되곤 합니다. 그러나 불안과 두려움에 싸여 세상을 지성의 힘으로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성을 발달시켜온 이들의 경우에는, 이 자아와의 숨바꼭질은 지난한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아발달의 자기작업이 충분히 되지 않은 이가 심리상담을 했을 때, 그 역기능적 영향력은 우리의 생각보다 심대합니다.
잘 숨는 자아란 곧 잘 지배하는 자아입니다. 자아가 숨는 이유는 자기의 지배력을 상실당할 것 같아서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숨어버린 자아가 노출되지 않은 채 상담자로 활동하게 될 경우, 그러한 상담자는 거의 반드시 자기에게 있어 불확정요소인 내담자를 지배하려는 경향성을 보이게 됩니다. 악의가 아니어도 선의로 지배합니다. 더 질이 나쁜 지배의 형태입니다.
심리상담 분야에서 트레이닝의 기간이 긴 이유는 이러한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충분하게 자아발달의 자기작업을 이룬 상담자가 되어 내담자를 만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유사한 예로, 선(禪)에서 수행승들에게 몇 년간 장작패기나 시키는 것 또한 실은 자아발달을 위해서입니다.
모든 신뢰할 만한 상담심리학의 접근들에서는 이 자아발달을 위한 과정이 충실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들을 소화하고 또 검증받은 상담자들이 활동을 하면서도, 다시 또 슈퍼비전 등을 통해 자기점검을 이어가는 것이 건강한 심리상담의 활동입니다.
보통은 상담전공이 개설된 대학원들과 공신력 있는 상담센터들에서 이러한 트레이닝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임상적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학술적 트레이닝도 포함하는 이야기입니다.
상담과 관련된 제반분야들, 이를테면, 연극치료, 미술치료, 표현예술치료, 문학치료, 이야기치료 등과 같은 것들도 다 대학원 이상의 교육기관에서 연구과정으로 개설되어 있는 분야들입니다.
이러한 분야들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 사랑에 투신하려는 정직한 태도가 있다면, 상담자 지망생은 자아발달을 위한 자기작업을 정규적인 학업과정 속에서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라면, 우리는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내 사랑은 아닌데 탐은 나거나, 아니면 남의 연인이 이미 자기의 연인이라고 착각하거나.
전자라면 귀여운 맛도 있지만, 후자라면 조금 생각해봐야 합니다.
결국 후자의 경우가, 자기를 심리학 전문가라고 착각함으로써 교만에 싸여 배우려 하지 않는 상태와 같습니다. 마치 학원폭력물에 나오는 단골대사처럼 "학교 따위에서 배울 게 뭐가 있다고! 심리학에서 진정 중요한 건 학교 밖에 있다고!"를 외치며, 본인이 무슨 인생마스터 심리사부님처럼 행세하는 대다수의 경우가 바로 이 경우입니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튜브에서, 혹은 무슨 재야의 전문가를 자칭하는 이에게서, 진정한 마음의 비밀과 같은 것을 배웠다고 자부하던 이가 상담교육 과정 내에 들어오면 놀라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밖에서 희소한 보물처럼 배운 그 지식이 학술적으로 대단히 흔한 조약돌에 불과하다는 것이 금방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학교 안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은 자기가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실입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현실이 생소해서 생겨나는 일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심리학 공부를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 질문 자체에 답이 있습니다. 심리학은 학(science)입니다.
그에 대한 학위가 있거나, 논문 한 편이라도 가져오면 됩니다. 학위와 논문은 어떠한 학의 전문가가 그 전문가라는 증명입니다.
개인적으로 소설 공부를 한 이가 소설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소설을 써서 등단하면 되듯이, 개인적으로 심리학 공부를 해서 심리학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이라면 학위와 논문으로 자기를 증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소설 한 편 쓰지 않은 어떤 심리학도가, SNS와 유튜브 등지에서 소설 전문가로 자신을 소개하며, '마스터 소설쓰기' '이것만 알면 나도 소설가 완전정복' '소설 집필 놀면서 쉽게 하는 마법의 비밀' 이러한 것들을 말하고 있다면,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기분으로 그 인물을 보게 될 것 같습니까?
우리에게는 억지사기가 아니라 역지사지가 필요합니다.
심리학은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섬세한 분야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심리학을 우습게 보는 이들이 주관하는 심리상담 제반활동에 엮이게 되면, 자신의 삶이 아주 우스워집니다. 주관자의 자아발달의 미성숙한 정도만큼 같이 우스워집니다.
서로의 얼굴에 같이 똥칠하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들의 기만성은 자기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접근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전문분야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둔 채, 남의 전문분야만을 계속 수준낮은 농담거리로 만들어 조소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자면, 이러한 이들은 자기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자기의 재능을 자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문이 생겨납니다.
그만큼 자존심 높게 자부하는 재능을 왜 본인의 전문분야에 쓰지 않고, 남의 전문분야를 진흙탕으로 만드는 데 쓰는 것인지가 필연적인 의문이 됩니다.
재능만큼 본인 전문분야에서 성공하며 사는 일이 모두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실은 자기 전문분야에서는 충분히 성공하지도 못한 고작 그 정도의 재능이기에, 슬금슬금 남의 전문분야로 터전을 옮겨 이곳에서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기회를 엿보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심리학을 우습게 봐도 이만저만 우습게 보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고작 그 정도의 재능으로 성공할 수 있는 분야로 보았다니, 심리학이 조롱되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재능으로 조롱하니 재롱이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심리학은 유치원에서 펼쳐지는 재롱잔치의 소재로 전락합니다.
재롱잔치에 모인 엄마들을 향해 눈웃음을 치며 열심히 엉덩이를 흔드는 무대 위의 아동이 있습니다. 그 아동을 보면서 "와 대박 전문가다."라고 존경과 감탄의 눈길을 보내는 이는 그렇다면 누구겠습니까?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밖에는 없습니다.
자기는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지 못해 조금 속상했지만, 이제는 심리학이라는 마법의 재롱술을 알아서 자기도 이내 무대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꿈에 부푼 SNS 연예인 지망생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으로 심리학은 정확하게 제로투댄스와 동급이 됩니다.
골반을 좌우로 튕기며 과장되게 자기를 뽐내는 자세를 반복적으로 실행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어오는 일이 심리학이고 또 심리상담이라고 말해집니다.
연예기획사의 아이돌 양성과정에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의 한 모듈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순수한 꿈에 불타는 또 다른 연예인 지망 아동들은 심리학자 내지 심리상담사를 찾아가 그 앞에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속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제로투댄스 왜 안 가르쳐주세요? 어떻게 심리상담사가 되어서 제로투댄스를 쉽게 추는 법을 안 가르쳐주실 수가 있죠? 진짜 전문가 맞아요? 사이비심리학자 아니세요? 화나네. 이런 심리학 꽃도 모르는 사기꾼에게 비싼 돈을 지불했다니. 이 더러운 학벌사회. 제로투댄스도 못 추는 것들이 심리학 전문가랍시고 부당하게 권위를 점유하면서 서민 피 빨아먹는 세상 같으니라구. 역시 학위 따위 없어도 혼자 연습해서 제로투댄스 추는 분들이 진정한 심리학 전문가 맞구만."
이처럼 심리학을 조롱하는 이에게 조롱된 이들이 다시 조롱합니다. 조롱이 연쇄됩니다.
모든 사이비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물에 똥을 풀듯이 전체의 장을 몰락시킴으로써, 결국에는 누구도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없도록 판 자체를 망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으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들이 대개 이러한 사이비가 됩니다. 자기 분야에서의 망함을 망각하기 위해 대신 다른 분야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작품을 쓰지 못하게 된 극작가가 심리학 전문가로 행세함으로써, 심리학을 공부하거나 심리상담을 받는 다른 이들이 힘겨운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연쇄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롱이 함께 연쇄되는 이유 또한 명확합니다.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실은 그 자신이 조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타 분야를 망하게 하고 조롱하는 일 또한 필연적으로 연쇄됩니다.
물론 많은 경우 이러한 이들에게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자각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실은 망하게 하려고 이동한 그 타 분야에 속한 전문가들에게 자기 자신이 학벌 및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조롱받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때문에 그 조롱을 이기고 그들보다 자신이 더 진정한 전문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씩씩거리며 경쟁적인 태도로 임합니다. 그 결과 타 분야에 반드시 똥물을 타게 됩니다.
전부 다 쉐도우복싱에 의해 생겨나는 일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망한 것을 그 자신이 회피하며 조롱하고 있기에, 타 분야로 그 망함의 현실이 투사되고 있는 것이고, 타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를 비웃는 조롱의 주체인 것처럼 투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만 조롱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자기 자신을 비웃으면서, 타 분야로까지 그 비웃음의 역동을 연쇄시키는 일을 그만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이 사랑하는 것을 우습게 만드는 일을 그만 해야, 자기 자신이 우스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야 자기가 사랑했던 자기 분야에서의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자기 자신을 비로소 정당히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아픔을 가졌던 자신이 리스펙될 수 있습니다.
자아발달은 남의 집에 자기 쓰레기를 투기하는 일을 그만 하고, 그 쓰레기를 회수하는 일로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회수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아픔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아픔은 자신이 어떠한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 사랑의 증거라는 사실을.
아직도 아프다는 사실은, 아직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 그 전문성의 자격입니다.
심리학이라고 하는 남의 사랑을 우습게 조롱하는 일을 멈추고, 바로 그렇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우습게 조롱하는 일을 멈추고, 자기의 진짜 연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언제나 좋습니다. 그 길은 언제나 리스펙됩니다.
그것은 실패와 좌절 속에 있던 자아를 초월해 다시 또 사랑하기 위해 가는 길인 까닭입니다.
자아가 발달해야, 자기 쓰레기를 자기가 직접 회수해야, 자아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아초월심리학은 분명 리스펙될 필요가 있습니다.
심리학을 그만 우습게 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