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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Jul 16. 2019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대에게

"36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지금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은 그대여. 또는 그 언젠가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을 꿈을 꾸는 그대여.


  그저 그대의 방이 제일이다. 그대의 침대보다 완벽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신자유주의의 폭력과, 정치판의 아귀다툼과, 중학교 2학년 대상의 TV 프로그램들과, 개인방송의 별거지들과, 직장의 비합리적 구조와,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학교라는 이름의 사막과, 무식한 귀머거리들인 부모와, 주식 정보의 공유거나 트위터 야동의 공유뿐인 술자리와, 그대보다 더 깝깝한 그대 친구들의 몰골과, 그대보다 별반 잘난 것도 없으면서 그대에게는 오지 않는 찬사를 받는 SNS 인기인들과, 그리고 이 모든 일들에 대해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도 싶지만, 3초만에 의욕이 떨어지는 바로 그대 자신.


  그대는 이 모든 것들이 지겹다. 진절머리난다. 떠나고 싶다. 떠날 수 없다면, 적어도 자신만의 작은 낙원이라도 확보하고 싶다. 시대정신이다. 작은 것 속에 진리가 있다. 이 시대의 조나단은 "가까이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라고 말한다. 그대는 유목민처럼 그대의 작은 방에 천막을 세운다. 천막의 기둥에 맥북 충전기를 꽂으며.


  그대는 그것을 자유라고도 부를 것이다. 또한 그대는 그것을 소확행이라고도 부를 것이며, 어쩌면 그대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기보다도 그저 웃을 것이다. 그래도 뭘 좀 아는 그대다.


  그대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대에 대해 뭘 좀 안다.


  그대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대가 반드시 이 세상에서 그것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분명한 바로 그러한 소명을 기다리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와 그대가 하고 싶어하는 바로 그러한 일을 찾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용수철처럼 그대 스스로를 더욱 낮추어 우물 밖으로 보란듯이 뛰쳐나가기 위한 바로 그러한 도약력을 준비하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렇게 그대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그대에 대해 좀 안다.


  그대에 대해 좀 알고 있는 척을 하느라 그렇게 그대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는 사실 다 알고 있다. 그대가 조금만 아는 척 함으로써 아무 것도 몰라지려는 이유는, 바로 모르는 척을 하고 싶어서다. 모른 체 하고 싶어서다. 못본 척 하고 싶어서다. 그대가 그처럼 못본 척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는 이미 스스로 다 보아왔다. 무엇을 못본 척 하려 했는지, 그대는 이미 스스로 다 알고 있다.


  그대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대는 무서워서, 도망간 것이다.


  그대는 아무 것도 안한 것이 아니라, 오직 도망만 한 것이다.


  그대는 이미 스스로 다 알고 있다.


  그대여, 그대는 그대가 비웃고, 무시하고, 한심하게 본 그 모든 것들이 다 무서웠다. 그 모든 것들 앞에서, 그대만 점점 더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느껴지는 추락 속에서, 그 추락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그대를 무력하게만 만드는 현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세상 모두가 그대를 병신이라고 비웃는 것만 같았고, 무능력자라고 무시하는 것만 같았으며, 좀 모자란 애라며 한심하게 보는 것만 같았다. 그 시선이 너무나 무서웠다. 무겁고, 숨차고, 버거웠다.


  그대는 광장에서 공황에 빠졌다. 머리가 휘청이고, 숨을 쉴 수 없으며, 지축이 흔들린다. 그대가 제대로 설 수 없어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을 때, 사람들은 그대를 스쳐 지나갔다.


  '한심한 새끼'

  '다 큰 새끼가 길거리에서 무슨 병신짓이야.'

  '야, 존나 찌질해보인다. ㅋㅋ'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미친 듯이 집으로 달려가던 그대의 얼굴은 창백한 푸른 빛이었을까, 달아오른 붉은 빛이었을까?


  그대의 뒷모습조차 이미 남지 않은 광장에서, 나는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대가 주저앉았던 그 자리에 똑같이 웅크려앉아 아스팔트에 가만히 손을 얹어 보았다. 거기에는 그대의 체온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만큼이나 그대의 자취는 이미 허공 속으로 부산하게 흩어졌다.


  그대는 정녕 그대의 방 외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


  그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대의 뒤로 남는 모든 것은 그대에게 훈장인 까닭이다. 수치의 훈장이다. 사방을 둘러싼 거울처럼 그대가 얼마나 수치스러운 존재인지를 비추는 창살없는 감옥이다. 그대가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영원한 저주의 낙인이다.


  그대는 바로 그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자신이 너무나 수치스럽다는 사실이,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모자란 부적격자라는 사실이, 존재론적 실패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던 것이다.


  그 수치심의 무서움에서 벗어나고자, 그대는 오직 도망만을 했다. 그대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미명하에 지금껏 해온 유일한 일은 도망뿐이었다. 그대에게는 선택이 없었고, 선택이 없던 만큼 간절했다. 간절하게 도망쳤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그대가 유일하게 한 그 도망의 행위로 인해, 그대는 더욱 수치스러워졌다. 세상 모두가 도망간 그대를, 더웃 비웃고, 더욱 무시하고, 더욱 한심하게 보는 것만 같았다.


  수치스러워서 도망가고, 도망감으로써 더 수치스러워지는,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이 지옥의 순환 속에서, 그대는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대는 그저 침대 위에서 무기력하게 눈을 감은 채, 세상이 끝나는 종소리가 언제 울릴지를 기다리며,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리고, 그대의 세상을 끝장낼 소리가 이윽고 들려온다.


  그대여, 착한 그대여.


  도망가도 괜찮다.


  무서울 땐 도망가도 괜찮다.


  그대여, 도망가는 그대 자신을 비웃고, 무시하고, 한심하게 보지 말라. 자책도 비난도 그대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도망이라는 간절한 행위를 통해 착한 그대를 살리려 하는 어엿한 그대 자신이다.


  전쟁에서 쓰이는 병법의 핵심은, 결코 지지 않는 결과를 안내하려는 것이다. 즉, 결코 그대가 죽지 않는 결과를 안내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바로 병법이다.


  그대여, 잘 알려진 36계(三十六計)의 병법 중 최후의 36번째 병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주위상책(走爲上策)'이다. 앞선 35가지의 이런저런 방법으로도 여의치않을 때에는 도망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의미다.


  병법은 말한다.


  승리를 포기해서라도, 그대만은 반드시 살아야 한다고.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지옥 속에서도, 그대만은 반드시 생환해야 한다고.


  병법은 말한다.


  다른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이, 그대가 가장 귀하다고.


  머나먼 시공 속의 모두가 그대를 살리려 한다. 그대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귀한 그대라고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외친다.


  이 소리가, 그대의 세상을 끝장내는 소리다. 늪 같은 자기혐오와, 새까만 저주와, 비탄의 눈물과, 냉혹한 자기비난과, 막역한 후회로 얼룩진 그대의 옛 세상을 끝장내고, 새 하늘을 비추기 위해 그대의 귀에 간절히 닿고자 울리는 종소리다.


  그대여, 정말로 괜찮다.


  무서울 땐 도망가도 괜찮다.


  얼마든지 살아도 괜찮다.


  그대의 도망에는 선택이 없었다. 그처럼 도망은 선택이 아니다. 귀한 그대를 살리는 일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이 드러난 거룩한 운명이며,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위대한 예언이다.


  가장 아름다운 운명적 예언이 성취된 예수의 마굿간처럼, 그대의 방이 그와 같다.


  그저 그대의 방이 제일이다. 그대의 침대보다 완벽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


  그곳은 성소(聖所)다. 무서워서 도망간 그대를 그대 자신이 귀하게 다시 살려내는, 사방이 막힌 죽음에서 다시 새로운 삶이 피어나는, 그렇게 그대가 잠시 잊고 있던 그대의 운명적인 소중함이 다시 그대 안에 깊이 새겨지는, 그곳은 그대 자신의 신전이다.


  그대여, 그대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대는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대는 스스로를 다시 또 사랑하고 싶은 것이며, 그렇게 지금 스스로를 가득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대는 오직 사랑만을 하고 싶다.


  그래서 이것은 언제나 거룩한 운명의 증명이며, 위대한 예언의 성취다.


  사랑이 스스로를 다시 찾는 역사다.







강아솔 -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
불 꺼진 방
긴 슬픔이 내려 앉은 이 곳에
나는 혼자 있고 싶어요
나를 향한 그대 마음 
다 알고 있지만
마음껏 슬퍼할 시간이 내겐 필요해요
불을 밝히지 말아요
어둠을 해치지 말아요
환한 불빛만이 모든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오늘도 나는
내 몫의 슬픔과 함께
숨쉬며 살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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