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없는 잘 자란 것들 같으니"
아이가 잘 자라게 하는 최상의 방법, 그것은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아이로 키우지 않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영적 우회(spiritual bypas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은 소위 영성 등과 같은 고급언어를 소비함으로써 또 그 언어가 지시하는 바를 실천함으로써, 개인이 자신의 심리적 미발달을 회피하려고 하는 성향을 말해주는 개념입니다. 자신은 더 높은 것을 추구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더 낮은 차원에 위치한 것처럼 상정되는 현실적인 발달과업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러한 영적 우회의 소재로 가득한 것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유교적 훈육기제입니다. 특히 예의범절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에게 심리적 미발달을 우회하도록 만드는 동인으로 작용함으로써 오히려 그 개인이 항구적인 미발달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됩니다.
심지어 예의범절을 잘 지키며 자라온 개인은 자신이 높은 수준에 위치해있다고 착각하게 되기에, 자신의 심리적 미발달 상태에 대한 자각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자신은 무오한데 남들만이 아직 제대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결격사유의 존재들인 것처럼 인식하는 오만한 폭력성을 잠정적으로 내포하게 됩니다.
심리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정서발달입니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정서발달이 심리적 발달의 핵심입니다.
정서가 잘 발달되지 않은 이들이 그 결과로 삶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문제를 경험하며 심리상담을 찾습니다. 심리상담은 많은 소재들 중에서도 특히나 중요하게 정서발달을 조력하는 활동입니다.
정서가 더욱더 발달되지 않은 이들은 그래서 심리상담을 찾지 않습니다. 자기가 아니라 세상과 타인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자기의 정서적 미발달로 인해 삶이 막힌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서적 미숙아들은 끊임없이 훈장님처럼 자기 주변의 사람들만을 옥죄이고 괴롭힐 뿐입니다.
정서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쉽게는 심리적으로는 영유아의 수준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이들의 내심은 사실 대단히 유치합니다. 아무리 표면적으로는 고급언어를 활용하여 인생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이들은 성숙하게 자라지 못한 아동이기에 그 발상이나 목적하는 바가 유아스럽습니다.
이들은 이와 같은 자신의 유치함이 드러나는 것을 대단히 수치스러워합니다. 원래 개인에게 있어 미발달된 측면은 수치심의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이들이 동원하는 것이 바로 예의범절입니다.
예의범절을 잘 따르면 성숙한 어른처럼 보일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른의 모방을 하고 어른흉내를 냄으로써 자신의 미발달된 측면을 영구히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이들의 의도입니다.
예의범절, 곧 예절이란 일종의 연극 대본과도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취해야 할 적절한 동작과 대사가 적혀있는 메뉴얼입니다. 그대로 잘 따라서 연기하기만 하면 남들에게 괜찮은 존재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되는 모방의 소재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연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실제적인 차원에서 발달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자기가 정말로 그런 존재인 줄 착각하게만 됩니다. 그러니 더욱더 발달의 필요성은 은폐됩니다.
예절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서로 세련된 표현들을 쓰며 완숙한 연극대사를 노련하게 주고받듯이 그 교류의 과정이 찰지고 멋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성숙한 어른으로 발달해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연기에 능숙해진 것뿐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수학문제를 능숙하게 풀어낸다고 그 아동이 어른인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예절의 연극을 하면 할수록, 실은 정신적으로는 미숙한 아이만이 계속 양산될 뿐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심리적으로 발달한다는 것, 곧 성숙해진다는 것의 핵심은 정서발달입니다.
정서가 잘 발달되었다는 것은 감수성이 높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감수성은 실시간으로 늘 변화해가며 움직이는 삶의 작용들을 느껴서 아는 성질입니다. 고감도 안테나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감수성이 높은 이들은 변화에 섬세하고, 상황에 따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을 수 있으며, 자신 또한 유연하게 상황에 따라 응답하게 됩니다. 즉, 감수성이 높은 이들은 삶에 대해 아주 조화롭게 적응하는 일을 잘 합니다. 삶의 조건이 달라졌다고 고집부리며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조건에 따라 자신의 자리를 쉬이 찾아 이동하게 됩니다.
이처럼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곧 생존력이 높은 사람입니다.
이들은 삶을 잘 경청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늘 삶의 편으로 만들기에, 이들의 생존력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잔머리를 굴려 억지로 생존을 잘 하려고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생존력은 이들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이들의 존재방식 자체에 내재된 패시브 스킬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본질적인 생존력이 높으니 이들은 생존에 대한 두려움에 잘 갇히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걱정과 불안에 떨고 있는 대신에, 이들은 한층 여유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차분히 점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애초부터 높은 생존력이 더욱 증대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으니, 이들은 주변과 타인에 대한 여유 또한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사정을 섬세히 배려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높은 생존력이 결과적으로는 주변과 타인의 생존력도 높여주는 현실을 만들게 되는 셈입니다. 굳이 예절을 따르지 않아도, 결과적인 차원에서 예절보다 더 예절의 효과로 기대되는 이득들이 크게 발생합니다.
이것이 감수성의 힘입니다.
정서발달이라고 하는 것은 이 감수성의 힘이 무르익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는 느낌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의 힘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성숙한 어른이란, 곧 잘 자란 개인이란, 바로 이 느낌의 힘으로 사는 이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고급언어를 활용한 연극을 펼치며 연극 속 대사와 동작으로만 자기가 어른인 척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냥 생존력 높은 어른으로 살아버리는 것이 정서가 잘 발달된 이의 모습입니다. 아주 잘 자란 이의 모습입니다. 왜 사냐건 그냥 웃지요, 라는 표현은 이 경우 이들의 모습을 묘사하기에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우리의 아이가 바로 이들과 같을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예절을 키울 시간에, 감수성을 키울 수 있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웃어른에게 표면적으로 인사하고 다닐 시간에, 웃어른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는 정서적 방향성을 겨냥할 수 있다면 이미 이루어진 일과도 같습니다.
예절을 모방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을 소외시키는 방식을 학습할 시간에, 자신의 느낌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따놓은 당상입니다.
그게 잘 자란 아이입니다.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다는 말이 오늘날에는 아주 오염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나의 길을 갈 거라고!"라며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며 내세우는 일이, 그러면서 남들에게도 "스피크 유어셀프!"하며 우리 각자의 멋진 이야기를 이 세상에 자유롭게 널리 알리자고 촉구하는 일이, 마치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며 사는 삶인 것처럼 각별하게 오해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오버스럽지 않습니다.
아주 고요합니다. 그 결이 부드럽고 섬세합니다. 심지어는 화로 표현되더라도, 그 화조차 뜨거운 곰탕처럼 그윽한 깊이가 있습니다.
오버스러움은 감수성이 낮은 이들의 특성입니다. 안테나가 약해서 전파에 잡음도 생기고 잘 안 들리니까, 억지로 볼륨을 높이려다보니 오버스러워지는 것입니다. 보청기를 낀 이에게 외부의 소리가 잘 안 들리니 자기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는 현상과 같습니다.
잘 자란 아이는 유난스럽고 과잉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들립니다. 귀가 좋아 남의 말이 잘 들립니다.
그러니 말도 잘 듣습니다.
예의바르게 진정한 나의 자세로 듣지 않으니, 역설적으로 사람의 말을 경청하여 잘 듣습니다.
예의없는 우리 아이는 이처럼 여러모로 키우기도 수월한 아이입니다.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는 아이입니다.
선이 고운 안테나를 더듬이처럼 쫑긋 정수리에서 빼내어, 이미 부모 마음을 섬세하게 느끼며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 마음을 자기 마음처럼 느끼며 알아주는 아이, 이것보다 더 잘 자란 아이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시중에 널린 예의바른 자기주장의 복제품들과는 달리, 예의없는 우리 아이는 이처럼 네 마음을 내 마음으로 그윽하게 느끼는 진짜 자기표현을 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아마도 둘도 없을, 잘 자란 아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