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의 인류로서"
지금 이 시대는 왜 이렇게 화로 가득 차 있는가?
두려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가?
이대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쳇바퀴만 돌리다가 초라한 건어물처럼 마르고 비틀어져서 허무하게 죽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다.
남들 사는 대로 똑같이 살다가 남들처럼 죽게 될 것 같은 그 두려움이다.
새해라는 것은 그래서 기쁨의 소재가 아니다. 매일 아침이라는 것은 설레는 만남의 기회가 아니다. 보잘 것 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어갔다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이며, 오늘도 똑같을 것이라는 건조한 좌절에 대한 예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조차 조금도 특별할 것 없이 남들도 바로 그렇게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최종적인 확인사살이다.
"남들과는 다르고 싶다."
그렇다면 이것이 두려움 속에서 부르짖고 있는 소망의 정확한 의도라는 것을 이해하겠는가?
남들과 정말로 다르고 싶다면 남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남다르다는 것은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대적인 비교의 의미가 아니다.
'남다른'은 '나다운'이다.
그러나 나답다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멋지게 한판 펼쳐내는 마당놀이 삼류 유치원학예회를 의미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것은 나의 시간을 남다르고 나답게 쓴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살고 죽는 문제에 있어 아무런 응답도 되지 않는 남들의 이야기에, 또 남들이 만든 이야기에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내가 사는 것이고 내가 죽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재능을 펼쳐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도취되면 자신의 죽음이 망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삼류 스토리다. 유아적 퇴행인 동시에 조기성 치매다.
짱구처럼 꼬츄로 코끼리댄스를 춰서 엄마의 미소를 만들어내고, 그 미소에 따라 자기도 미소짓게 되면, 세상을 가득 채운 미소 속에서 모든 것이 다만 해피해피하게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치한 스토리다.
본질적으로 퇴행이자 치매인 이러한 성격의 일만 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실제적으로 죽는다.
남의 얼굴의 표정을 내 재능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사는 동안, 그렇게 남을 이 우주의 중심으로 삼아 그 남만을 만족시켜주려는 모든 목적으로 사는 동안, 우리는 허무하게 죽는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살기에 허무한 것이고, 하루하루 나이를 먹는 일과 끝내 찾아올 죽음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우니, 더불어를 외치며 서로가 서로를 관계라는 끈으로 묶어 떠받쳐주려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제대로 떠받쳐주지 못한다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사는 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시간을 자신으로 충만하게 채우며 잘 살았고,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도록 존재한 삶인 만큼, 죽음이 단지 존재방식의 전환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까닭이다.
남다른 삶, 나다운 삶이란 결국 죽음을 초월하게 되는 삶이다.
그러나 이것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마법과 초능력 같은 또 다른 삼류 스토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두려워서 화를 내고 고집스러워지며, 다른 이들을 강박적으로 통제하려 하고, 연예인과 같은 관심종자가 되어, 실제로는 남들에게 에너지를 착취하는 에너지 뱀파이어에 불과하면서 남들에게 착취한 그 에너지로 자기가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라도 된 양 인생스승처럼 굴며 세상을 기만하고 대존재 사기를 치는, 오로지 두려움이 만들어낸 이 모든 삼류 인생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다.
한 번 태어났으면 일류로 살아야지.
남과 상대적으로 비교할 필요없는, 절대적인 일류로.
인류는 원래 일류다.
애초 일류로 창조되었는데 왜 자기 자신을 삼류로 만드는 인생을 그토록 고집하는가?
복종하지 말아야 한다.
내 자신의 인생을 삼류로 만드는 그 모든 삼류 스토리에, 스토리라고 하는 그 모든 삼류에.
이것은 인류의 자존심이다.
인류 그 자체인 나의 자부심이다.
그래서, 나는 복종하지 않는다.
한용운 시인은 나를 님이라고 말한다. 그 님에게만 사랑으로 복종할 뿐, 다른 무엇에도 복종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와 같이, 나는 나에게만 복종한다.
나에게만 복종하는 이 길은 인류에게로만 향하는 길이며, 자신에게로만 향하는 길이다.
다른 것에는 복종하지 않는 이 길은 인류라고 하는 유일한 것을, 그리고 내 자신이라고 하는 인류의 유일한 것을 사랑하고자 향하는 길이다.
때문에 "사람이 먼저다." 등의 인간에 대한 보편적 허깨비와 같은 삼류 스토리로 사는 추상적 군집체로서의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 나는 복종하지 않는다. 인류는 절대로 복종하지 않는다. 절대의 힘으로, 절대가 아닌 것에는 결코 복종하지 않는다. 유일한 절대의 일류에만 복종한다. 단 한 번뿐인 비교불허의 절대적 인간만을 사랑한다.
나는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의 인간만을 사랑한다.
나는 내가 살기 전에는 아직 미지인 나라고 하는 인생만을 사랑한다.
깊고 기쁜 마음으로, 오직 나를 향해서만 노래한다.
나로 말미암아, 인간이 대체 무엇인지를 이 우주에 환히 밝히고자 한다.
두려움을 넘어 남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일류임을 말하고자 한다.
인간에 대한 이 사랑을 걸고, 나는 복종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