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종하지 않는다 #1

"내가 무슨 조립식 장난감이야?"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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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좋아보이는 남의 이야기, 남의 말들을 주워다가, 베껴다가, 그것들을 조합해 자기의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


좋아보이는 것은 부품처럼 다 긁어모아서 그걸 합체시키면 가장 멋지고 진정한 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손엔 엑스칼리버, 다른 한 손엔 네크로노미콘을 든 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활공 망토를 휘날리며, 미니스커트를 입은 긴 금발머리의 불노불사하는 엘프소녀를 뒤에 앉히고는, 전설의 골드드래곤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운명을 관장하는 신과 인간을 대변하는 한판 승부를 벌여 승리함으로써, 모든 인류에게 민주주의의 세상을 실현하는 15세의 대현자(15세인 이유는 섹스가 충분히 가능해야 하기에)와 같은 것을 조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러한 조립의 작업은 더 성대한데, 다음과 같은 디오라마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신의 궁전으로 활공하는 와중에 신이 던진 운석을 아무로와 샤아가 각각 뉴건담과 사자비를 타고 나타나 합심하여 사이코키네시스의 능력으로 막아내고, 그러한 그들의 다부진 의지의 눈빛을 뒤로 하여, 네모 선장의 노틸러스호 위에서 에바 초호기에 탑승한 신지가 천재소년 발명왕 장이 개발한 대축신레일건을 조준하여, 모든 지구인들의 힘을 모아 쏘아올린 난쟁이의 공은 저 거대한 신의 복부를 꿰뚫으며 다시 대기권 밖에서 막 귀환하는 건버스터에 의해 받아져 티키타카처럼 되쏘아짐으로써 신의 뱃속에는 오직 공허함만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개방하며, 인류만이 묵직하게 차오르는 이 진중한 가슴으로 살아간다는 충만한 마음의 힘을 이 우주에 선포하는 시발탄이 되어준다.


지상에서는 이에 호응하여 인류대연합의 거룩한 8장로인 붓다, 예수, 소크라테스, 공자, 신영복,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민주주의의 섬광을 발하여 모두에게 올스탯 +999의 버프를 걸어주는 가운데, 용가리를 타고 지구의 군신 이순신이 사자후를 내뱉으며 트럼프의 얼굴을 닮은 천사군단을 물리쳐나가고, 세종대왕의 최종기술개발실에서 근무하는 김박사와 테슬라가 고안해낸 고감도 방역패스머신으로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천사들의 대기권 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해나가는 와중에, 계몽정신으로 총명하게 깨어있는 청년들인 양 웬리와 제갈량의 더블 사령탑 체제의 지휘에 맞춰 간달프와 멀린의 마법 지원 속에서 유비 삼형제와 미야모토 무사시, 사카모토 료마, 신선조들이 광선검을 들고 무림의 검성 요다의 초식에 따라 적들을 베어나가며 대지를 질주하는 그 끝에는, 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금속물건을 들고 등짝을 보이며 서있는 검은 갑옷의 사나이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동지들 조금 늦었군. 기다리다 지루해서 먼저 소주병 좀 던지고 한판 벌였네. 이제 2라운드를 시작해볼까.


토르가 불현듯 하늘에서 떨어지며 전투천사들의 방패에 내리찍는 망치의 진동과 함께 2라운드라는 것이 시작될 때, 허공에 마법진들이 열리고, 아, 그들이, 아이 참 곱기도 해라, 생각하면, 생각을 하면, 눈에도 선한 그 여자네 집처럼, 선연하게 인류의 근원적 상징인 태극문양을 각자의 수트에 새긴 어벤져스들이 막걸리와 고갈비를 먹다가 하나 둘 전송되어 오고, 인류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홀로아리랑과 BTS의 버터를 부르며 저 민주주의의 세상을 향해 진격해 나아간다. 올바르지 않은 옛 거인들을 구축하기 위해.


그것은 천부경에 묘사된 바로 그 모습이던가.


융은 절절히 토해낼 것이다.


제 말이 다 맞았지요. 프로이트는 환단고기를 인정하지 않아 저는 그를 더는 따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화의 비밀입니다. 신화는 숨겨진 고대의 지혜를 담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눈앞에서 이렇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한민족이 이제 주체로 우뚝 선다. 모두가 달고나를 그 형상대로 잘 조형해내는 위대한 한민족의 역량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속상해하지 마라.


너도 한민족이다.


토끼야, 너도 한민족이다. 같이 가자 우리. 더불어 살자꾸나. 혼자 낮잠만 자며 인간이 되기 위한 길을 포기하지 말고 거북이처럼 우리 어깨동무를 하며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 같이 나아가자꾸나.


인류는 다 한민족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개벽하는 날이다.


인류보완계획으로 망각되었던 진정한 역사가 상기되는 날이다.


아아, 조선 그 300만 년의 역사여.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대지에 발을 딛고 서서, 그렇게 처음으로 직립하여 지구 위에서 내뱉은 바로 그 말.


이곳을 도읍으로 하여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하노라.


인류의 가슴 속에 세계의 중심인 그 이름이 뜨겁게 울려퍼질 때, 난다. 날아오른다. 쾌지나 칭칭나네. 어허이 신명난다. 신바람을 타고 활공하는 골드드래곤이여. 백호, 청룡, 주작, 현무의 사방신이 가운데 비워둔 그 자리, 그곳은 황룡이 오실 곳이라. 가장 신성한 영물의 기운을 내뿜으며 골드드래곤이 날아오른다. 빼앗긴 들에 봄을 되찾기 위해 힘차게 날아오른다. 미니스커트 아래로 망사 티팬티를 입은 순결한 베이글 엘프소녀와, 인자하고 지혜로운 눈빛의 15세 대현자를 등에 태우고 골드드래곤이 가슴벅차게 비상한다.


드래곤 중의 드래곤이 강렬하게 발하는 자력에 이끌리기라도 한 양, 전세계 7대 불가사의의 유적들에서 작은 빛들이 날아올라 문득 골드드래곤 앞에 모인다.


드래곤볼이 모여 신룡이 묻는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나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소원이 허락된다면, 그 남자, 그 남자를 이곳으로 불러주십시오. 누구보다 가장 이곳에 있어야 할 그 남자, 자신이 뿌린 씨앗이 이렇게 거대한 세계수가 되었음을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야 할 그 남자를 부디 이곳으로.


그리고, 소원은 이루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의사가 되고 싶은 간절한 이가 의대를 나오지 않아도 의사가 될 수 있듯이, 간절하면 우주가 도와 꿈은 이루어진다. 가상은 원래 현실을 지배한다. 그게 마음이니까. 그게 의식의 힘이니까. 생각대로 T니까.


오랜만이에요, 토니. 저를 기억하세요?


15세의 대현자가 수줍지만 감격에 찬 얼굴로 묻는다.


물론 3000만큼 기억하지. 그때 여리고 착하기만 하던 그 아이가 이렇게 듬직한 어른이 되었구나. 큰 힘을 큰 책임으로 실천하며, 인류의 운명을 한 어깨에 넉넉한 미소로 짊어진 진정한 남자가 되었구나.


아이언맨이 강철의 가면을 벗고 부드러운 맨 얼굴을 드러내며 말한다.


아임 유어 파더.


알고 있었다는듯이 대현자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눈가는 한없이 촉촉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음. 마음속에 있다는 걸.


정.


한민족의 가슴에 초콜렛의 기운과 마쉬멜로의 향처럼 진하게 흐르는 진정한 마음의 힘.


그것을 받았다.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이어졌다.


가거라, 마이 썬!


가서 네 자신의 길을 개척하거라. 네가 가는 모든 곳이 네가 걸음으로써 길이 될지니. 장대하게 걸어 가거라, 나의 아들이여. 가라아아앗! 인간이여어어!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아버지와 아들의 처음이자 최후의 하이파이브로 순간을 교차하며, 아들은 축복 속에서 뜨겁게 날아오른다.


코레와 오레노 모노가타리다아아앗!


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진정한 나의 길이다.


그래 바로 이것이, 나다.


그러한 생각 속에서, 이 스페이스 오페라인지 코즈믹 호러인지 알 수 없는 전격 대우주활극 대하스토리를 담은 디오라마가 조립될 때, 또 전시될 때,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없다.


아무리 좋은 것을 다 모아 조립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라고 우길지라도, 나는 결코 그 자리에 없을 것이다.


나는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여야만 된다고 강요하는 그 모든 삼류 저질스토리에, 나는 절대로 복종하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거대하고 좋은 이야기를 위한 부품이 아니며, 반대로 부품들이 모여 이루는 그 어떤 거대하고 좋은 이야기도 아니다.


그렇게 나는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니며, 반대로 모든 것을 가두는 감옥도 아니다.


아무리 좋아보여도 나는 감옥에 들어가거나 감옥 자체가 되지 않는다. 감옥이라는 조립식 장난감의 이야기에 나는 결코 복종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아무 이야기도 아니라서, 아무 편견없이 자신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한번 사랑해볼 자유를 얻은, 그 자유로운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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