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깊이"
아름다운 무지개는 창문 밖에 있고, 그대는 창문 안에 있다.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모든 것 사이에는 투명하지만 커다란 여백이 놓여 있는 것만 같다.
이것이 그대의 외로움이다.
차마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감히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오직 여백뿐이다. 오직 여백으로만 표현할 수 있다.
그대가 대체 어떻게 살아 왔는지, 그대가 삶 속에서 느낀 그 생생한 순간들을, 그대 가슴을 메이게 하던 그 모든 눈물을, 붙들 수 없는 것을 영영 붙들려는 그 절실한 몸짓을, 차마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감히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오직 이 세상에서 그대만이 유일하게 느낄 수 있던 순간들이다. 그대만의 특별한 순간들이다.
그대여, 그대가 외롭다는 것은 그대가 이와 같은 특별한 순간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가 외롭다는 것은 그대가 결코 관습에 매몰되어 뻔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대여, 화석화된 관습을 거부하는 실존철학이 외로움의 철학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실존은 외로운 그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것은 그대의 깊이를 파내려가는 길이다.
실존철학자들에게서 드러나는 선지자적인 면모는, 그대처럼 그들 역시도 그들 자신의 깊이를 파내려갔던 까닭이다.
깊이는 높이와 같다. 수직에 대한 감수성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고 하는 『갈매기 조나단』의 잘 알려진 인용구는 그래서 "깊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고 하는 의미와 동일하다.
그대는 깊이 내려가 멀리 봄으로써, 아무도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
아무도 본 적 없는 것들이라 그대는 이를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고, 감히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대는 외롭다.
너무나 전하고 싶은데 전할 수 없어서 그대는 외롭다.
깊이는 섬세함이다. 섬세함은 더욱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대는 남들보다 더 입체적인 스펙트럼 속에서 산다. 단순한 하얀 빛이 그대에게는 무지개로 체험된다. 풍요롭다. 그대는 마음의 부자다. 그러나 그대가 바로 이러한 부자라는 사실을 몰라서 그대는 외롭다.
많은 이들이 그대와 같은 것을 볼 수 없기에 그대만 다른 세상에 소외된 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대는 외롭다.
아주 가끔, 그대만큼이나 섬세한 이가 영롱한 언어로 길어올린 에세이를 읽으며,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기타 소리를 들으며, 정겹디 소박하나 왠지 좀 슬픈 가슴의 미소를 담은 일러스트를 바라보며, 그대는 정말 아주 가끔씩만, 그대가 혼자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 느낌은 이내 지나가고, 지나간 것이 귀했던만큼 그대는 잃어버린 낙원을 향수한다. 본 적도, 들은 적도, 가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있다고 믿어야만 하는, 그렇게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러한 그대의 낙원을, 그대가 마침내 안착할 수 있는 그대의 자리를.
Jewel - Last Dance Rodeo
알래스카 출신의 포크싱어인 쥬얼(jewel)은 그대가 더는 인간이 아니라고 노래한다. 그대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이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그대가 안착할 집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랑(heart)뿐이다.
그렇게 그대는 심연(abyss)이다.
그대가 그대의 깊이를 파내려가는 길은 심연으로 향해 가는 길이다. 심연은 존재의 터전이다. 심연의 깊이만큼 존재는 크게 드러난다. 곧, 심연은 존재가 터하는 공간이다. 존재의 자리다. 존재의 집이다.
그렇게 심연인 그대는 존재가 터할 그대라는 공간을 발견한다. 그대라는 자리를 발견한다. 그대라는 집을 발견한다.
쥬얼의 노래가사처럼, 그대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바로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열려 있는 가슴(heart)이다. 활짝 개방된 공간이다. 비어있는 투명한 여백의 자리다.
그대여, 그대가 외로움을 호소할 때 그대는 늘 이렇게 말해왔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아."
그대의 가슴이 텅 빈 것은 그대가 바로 심연인 까닭이다.
또 그대는 이렇게도 말해왔다.
"가슴이 너무 메어져."
그대의 가슴이 메어지는 것은 그대가 바로 심연으로서 존재를 담고 있는 까닭이다.
그대여, 그대는 심연이다. 그대 자신조차도 스스로의 깊이를 추량할 수 없는 심연이다. 때문에 그대는 결코 뻔한 삶을 살 수 없다. 얕은 관습의 토양에 매몰될 수 없다. 그대의 외로움은 끝없는 깊이만큼, 말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여백을 의미한다. 그대는 그렇게 텅 빈 여백의 가슴이다.
그리고 그대라는 심연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대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체험한 그 모든 것이, 그대가 결코 잃고 싶지 않았던 그 모든 것이, 곧 이 우주에 단 한번밖에 없는 그 모든 특별한 존재들이 그대의 가슴 속에 영영 담겨 있다. 그대의 가슴이 존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대는 그렇게 메어지도록 꽉 찬 가슴이다.
심연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심연에 담긴 존재는 영원하다.
존재하는 것들이 영원하기를 꿈꾸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대여, 외로운 그대여, 그대의 가슴은 지금 이 사랑으로 꽉 차서 메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가 외로울 때면, 그대가 심연일 때면, 그대의 가슴이 그토록 아픈 것이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들이 그토록 특별하게 많은 까닭이다. 그대가 특별하게 사랑하는 까닭이다.
그대가 외로워서, 그대는 비로소 사랑할 수 있다.
그대가 그대의 깊이를 파내려간 이유는, 그대는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사랑이 그리웠고, 사랑할 수 있는 그대 자신이 그리웠다. 그래서 그대는 심연이어야만 했다. 텅빈 가슴이어야만 했다.
그대는 깊이 내려가 멀리 봄으로써, 아무도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것들까지도 그대는 결코 소외시키는 일 없이 그대의 가슴에 귀하게 담아낸다. 그대의 사랑은 도무지 끝을 추량할 수 없다. 그대는 엄청나게 사랑하고 있다. 그대는 특별하게 사랑하고 있다. 그대는 특급의 사랑이다.
외로운 그대여, 그대는 사랑 그 자체다.
사랑인 그대여, 때문에 그대 자신이 바로 그대가 찾던 그 자리다. 그대 자신이 바로 그대의 집이다.
그대는 마음의 부자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찬 집을 가진 부자다.
그대가 이처럼 그대 세상의 모든 것을 그대 가슴에 가득 채우고 있기에, 그대는 세상으로부터 결코 소외될 수 없다. 그대가 움직이면, 그대 가슴 속의 세상도 함께 움직인다. 그대는 언제나 함께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들과 그대는 언제나 함께다.
Ida - Don't Get Sad
슬로코어 밴드인 아이다(Ida)는, 그대가 사랑하는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그것들은 이동할 뿐이다. 그대의 가슴 안으로. 그래서 그대는 그대의 가슴 안에서 종종 무게를 느낀다. 밖에서는 사라진 그것들이 그대의 가슴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그 무게를 실감한다.
그대여, 그대가 사랑하는 것들과 그대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분리될 수 없다.
아름다운 무지개는 창문 밖에 있고, 그대는 창문 안에 있다.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모든 것 사이에는 투명하고 커다란 여백이 놓여 있는 것만 같다.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이처럼 투명하고 커다란 여백을 통해 함께 연결되고 있다.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이처럼 투명하고 커다란 그대의 가슴을 통해 함께 연결되고 있다.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이처럼 그대의 외로움을 통해 함께 연결되고 있다.
그대가 분리되어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분리된 것들을 그대가 외로움을 통해 다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외로움은 분리의 결과가 아니다. 외로움은 분리라는 결과를 돌이키고자 하는 영원의 원인이다.
사랑 속에서 어떤 것도 분리되지 않기를 그리는 바로 그것이 외로움이다. 그리는 것이라서, 그것은 그리움이다.
하늘이라는 투명하고 커다란 여백이 있어서 무지개가 그려진다.
모두가 바삐 스쳐 지나가는 퇴근길 위에서도, 그대의 여백은 그려진 것을 따라 그리움의 시선을 낳아 무지개를 바라본다. 바라본 그 끝은 따듯하고, 시리면서, 외롭다.
그대의 가슴은 따듯하고, 시리면서, 외롭다.
가장 생생한 것들이 사라질 것을 아는, 그리고 영원할 것을 아는, 하늘과 똑 닮은 투명하고 커다란 그대 가슴의 느낌이다.
그대 가슴과 똑 닮은 그대 눈빛이다.
무지개는 이미 그대 눈빛 속에 있다.
사라질 모든 것을 영원으로 그려내는 그 깊은 시선 속에 있다.
조규찬 - 무지개
창백한 아침 햇살이 동산을 맴돌 때
나무 위에 새들도 구름마다 흐르네
집앞에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나도 모르는 기쁨이 내 몸을 감싸네
한 여름날 소나기를 흠뻑 맞은 아이들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띄워 보내고
뒷산 위에 무지개가 가득히 떠오를 때면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따라갔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