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연인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마라"
마음에 대해 딱 하나만 알아야 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마음은 자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것만 알면 마음에 대해 다 안 것과 같다.
마음을 통제하고, 조종하며, 구속하려는 그 모든 억지가 결국엔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특정한 소재들을 통해 마음을 좋게도 또 나쁘게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그 모든 도구적 방법론들이 실은 전부 무용하다는 사실 또한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임의적 도구의 힘에 의존해 조작적으로 얻어진 자유라면 그것은 이미 자유가 아닌 까닭이다.
자유는 오직 이것에만 근거해서 얻어진다. 이것은 무엇일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있기에 자유가 있다.
사랑은 나의 자유를 너의 자유를 위해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 또한 자유의 힘에 의존해 성립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은 가능하다.
말만 되는 질문이다.
정확하게는 사랑과 자유는 같은 것이다.
사랑이 상대적인 세계에서 움직이면 자유고, 자유가 멈춰 그 절대성을 드러내면 사랑이다.
그래서 다만 '스스로'라고 말한다.
"쟤는 스스로가 불가능해."
우리가 이렇게 착각할 때, 상대를 시험하려 하게 된다.
상대를 시험하는 방식은 언제나 무수한 규칙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표현 그대로, 규칙들의 올바른 준수가 이루어지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가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다.
즉, 규칙으로 마음을 옭아매는 것이 마음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다.
시험에 든 마음은 자신의 '스스로'가 불신되는 까닭에 자신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자유는 마음의 가장 큰 소망이기에 완전히 잊을 수는 없다. 막연한 끌림으로 계속 남아 있다.
그 결과, 시험에 든 마음은 끝내 그 끌림을 따라 반드시 자신을 제한하던 규칙을 깨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자신이 정말로 자유로운지를 알고 싶어서, 시험장 밖으로 뛰쳐 나오는 이의 모습과도 같다.
우리가 마음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두렵게 경험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마음을 통제하고, 조종하며, 구속하기 위해 끝없이 마음에게 규칙을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반동으로 마음이 어디로 튈지를 몰라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두면 마음은 결코 파괴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으면 마음은 고요하다. 자신이 자유로운지를 알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딘가로 부산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자유를 확인할 필요가 없어진 까닭이다.
이러한 상태를 안심이라고 한다.
마음은 자유로울 때 안심한다.
안심이 함께 나누어질 때 생겨나는 것이 신뢰다.
이것은 상대의 자유를 시험하지 않기에, 자신 또한 상대에게 시험되지 않는 상태다. 서로가 자유로운 상태다. 곧, 서로가 사랑하는 상태다.
신뢰는 억지의 규칙들로 상대를 옭아맴으로써 이루는 거짓 안정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상대가 안심하게 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신뢰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로에게 확인된 것이 신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신뢰는 더 큰 자유를 낳고, 더 큰 자유는 더 큰 신뢰로 돌아온다.
사랑의 작용이다.
우리가 마음과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 그럼으로써 마음이 스스로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일이, 마음의 연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마음에 대해 딱 하나만 해야 한다면, 우리는 바로 이 일을 해야 한다. 자유라고 하는 사랑의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