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은 멀리 가지 못한다
이 영화는 힐링 영화라기보다는, 힐링의 힘겨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존은 알코올 중독자로서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오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반신불수가 된다. 그러한 파국적 운명 앞에 지금껏 존이 은폐해 온 모든 고통은 한순간에 쏟아닥치고, 결국 존은 알코올 중독이 이 모든 고통의 이유라는 사실을 통감하며 AA(Alcoholics Anonymous)의 도움을 받으러 찾아간다. 그리고 AA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12단계(12 steps)를 따라 조금씩 재활의 여정을 밟게 된다.
영화는 존의 이러한 여정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영화가 정말로 친절한 시선을 비추고자 하는 지점은, 이 힐링의 여정보다도 더욱 긴 존의 삶이다.
힐링을 위한 의도 속에서 존은 애초 멀리 가지 못할 운명이다.
많이 가봐야 12 걸음(12 steps)이다. 다 가봐야 12 걸음이다. 금방 익숙해지는 12 걸음이고, 그 자체가 한계인 12 걸음이다. 그래서 존의 휠체어는 늘 익숙한 한계 밖에서는 전복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영화는 그 전복을 통해, 익숙한 힐링의 걸음 밖에 진짜 삶이 있음을 묘사하고자 한다. 전복을 통해, 삶의 증거인 새로운 만남과, 생생함과, 활력이 찾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
결국, 핵심적인 사실은 이것이다.
알코올 중독만큼이나 힐링도 중독이다.
힐링의 힘겨움은 여기에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일은, 어떤 것을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일이다. 중독의 힘겨움이 이와 같다. 우리가 중독재를 통해 얻은 자신의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할 때, 이는 언제나 더 많은 중독재의 소비를 낳는다. 과거와 동일한 자극으로는 동일한 그 상태를 얻지 못하는 까닭이다. 더 많은 소비란 곧 더 많은 에너지의 투입을 의미하고, 이로 인해 우리는 반드시 힘들어진다. 생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맥락에서, 힐링 중독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보잘 것 없는 자신으로 느껴져 고통받던 우리가, 어느 순간 우리보다 더 대단해보이는 어떠한 원리, 또는 어떠한 타인으로부터 온전한 자신으로 승인받는 경험을 한다. 하찮은 자신에서 괜찮은 자신으로 회복된 것이다. 감동스럽다.
그리고 이 감동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보다 더 대단한 것으로 본 바로 그 힐링의 원천으로서의 대상을 계속 추구하게 된다. 심리학적 원리, 영성 서적, 스승, 동료, 배우자, 부모, 연인 등 그 대상은 다양하다. 심지어는 지금의 자기보다 더 높은 자기(higher self)라는 이름으로, 자기조차도 대상으로 삼아 이를 추구하는 일에 매진한다.
대상이 바로 중독재다. 그리고 중독재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약해지듯이, 대상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약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대상을 통한 힐링의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까닭이다.
이것이 바로 힐링 중독의 역설이다.
자기가 더욱 괜찮은 존재로 회복되기를 추구하는 만큼, 실제의 자기는 필연적으로 더욱 취약한 존재로 드러나게 된다. 부모의 관심을 계속 받고자 하는 아이가,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 앞에서 계속 미숙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과 같다. 취약하다는 것은 힘이 없다는 것이고, 그렇게 자기가 힘이 없음을 스스로 천명하기에 힘겨워진다.
나아가, 이러한 힐링의 대상이 이제 자기대상화를 이룰 때, 즉 자기를 힐링의 원천인 대상으로 삼을 때, 이 중독은 더욱 힘겨운 것이 되어 버린다.
자기대상화로 이루어지는 힐링 중독은, 이제 사람들을 남용하게 되는 까닭이다. 곧, 자기는 사람들보다 더욱 높은 위치에서 그들을 용서하고, 돌보고, 보듬을 수 있는 유력한 상위의 존재처럼 형상화됨으로써, 그 높은 자기로부터의 수혜자가 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자기보다 낮은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자기는 이제 그 낮은 사람들을 돌보는 역할을 해야 하기에 더욱 힘들어진다.
이처럼, 자기대상화된 중독의 형태 속에서, 사람들을 용서하려는 행위는, 실제로는 그 사람들의 위격을 낮춤으로써 더 높은 자기의 모습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힐링의 쾌감을 경험하고자 하는 의도로 쉬이 변질되기 쉽다. 존 웰우드는 이러한 현상을 영적 우회(spiritual bypass)라는 용어로 묘사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bypass)은 언제나 더 힘겨운 것이다. 자기대상화의 쾌감은 결코 우회로의 힘겨움보다 크지 않다.
영화에서 이러한 자기대상화의 의도는 정직하게 고백된다. 주인공인 존이 힐링의 원천으로 삼아 의존하던 대상이자, 존을 포함한 다른 중독자들에게 스승처럼 행세하던 도니라는 인물은, 자기가 더욱 괜찮은 자기가 되는 것 같은 힐링의 쾌감을 경험하고자 사람들을 이용했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특히 존을 돌보는 일이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이와 같은 도니의 진솔한 고백을, 존은 너그럽게 이해한다. 힐링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존 또한 이해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의 사건 후, 얼마 되지 않아 도니는 에이즈로 죽게 된다. 결국 힐링의 스승이었던 그도 멀리 가지 못한 것이다. 진실로, 힐링은 멀리 가지 못한다.
멀리 갈 수 있는 자는, 사는 자뿐이다.
산다는 것은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포기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특정한 대상을 통해 특정한 자기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포기하는 것이다.
중독전문가인 제랄드 메이는, 중독 현상 속에는 실상 무엇보다 뜨거운 삶을 향한 의도가 담겨 있음을 말한다. 즉, 누구보다 생생하게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 중독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삶을 향한 모든 의도가 오로지 특정한 대상을 향해서만 투여될 때, 그 대상은 중독재가 되고, 삶은 중독으로 변질된다. 이와 같다.
힐(heal)의 어원적 의미는 온전함이다. 힐링은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온전하게 하는가?
바로 삶이다. 온전하다는 것은 다 있다는 것이다. 통째라는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삶을 온전하게 한다는 것이다.
삶을 온전하게 하면, 우리는 통째로 다 있는 그 삶 속에서 우리 또한 있게 된다. 즉, 힐링의 어려움 없이 삶에 의해 자연스레 힐링된다.
그래서 정말로 포기해야 할 것은 바로 자기다. 특정한 자기의 모습이다. 대상화된 자기상이다.
도니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며 존에게 가장 현명한 말을 남긴다.
"온전한 자기이고 싶으면, 자기를 잊으면 되요."
그리고 존은 자기를 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실천한다. 그것은 자기가 누구인지와 아무 상관없이, 그저 지금 이 몸에 좋은 느낌이 밀려오는 일을 하는 것이다. 곧, 자기가 아닌 자신(自身)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존에게는 그것이 카툰이었다. 그는, 카툰을 그리는 일은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카툰은 존을 힘차게 한다. 그것이 삶인 까닭이다. 삶이 존을 온전하게 만드는 방식인 까닭이다.
존의 전복은 역설적으로, 그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넘치기 때문에 일어난 전복이다. 삶이 가져다준 힘찬 기운이 만들어낸 전복이다. 그는 삶이 넘쳐서 전복된다. 그럼으로써 삶은 그 전복을 통해, 존을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게 해주고, 사람들로 말미암아 존이 더욱 활기차게 일어설 수 있게 해준다.
존은 이제 더는 힐링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힘겨워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예측불허의 삶을 즐기고, 다만 웃을 뿐이다.
그는 그 웃음과 함께, 멀리, 아주 멀리 간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삶이, 언제나 그의 가장 가까이에 있다.
Ally Kerr - The Sore Feet Song (蟲師 OP)
I walked ten thousand miles, ten thousand miles to see you
난 만 마일을 걸었어, 당신을 보기 위해 만 마일을 걸었어
And every gasp of breath, I grabbed it just to find you
숨이 차오를 때마다 당신을 찾기 위해 견뎠어
I climbed up every hill to get to you
당신을 찾기 위해 모든 언덕을 올랐고
I wandered ancient lands to hold just you
오직 당신을 만나기 위해 고대의 땅을 헤맸어
And every single step of the way, I paid
나는 기꺼이 발걸음을 내딛었고
Every single night and day I searched for you
매일 밤낮으로 당신을 찾아 헤맸어
Through sandstorms and hazy dawns I reached for you
모래바람을 뚫고 안개 낀 새벽을 지나 드디어 당신에게 닿았어
I stole ten thousand pounds, ten thousand pounds to see you
나는 만 파운드를 훔쳤어, 당신을 보기 위해 만 파운드를 훔쳤어
I robbed convenience stores 'cause I thought they'd make it easier
난 편의점을 털었어, 그러면 당신을 쉽게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
I lived off rats and toads and I starved for you
쥐와 두꺼비들과 지내면서 당신을 갈망했어
I fought off giant bears and I killed them too
거대한 곰들과 싸웠고 또한 그들을 죽이기도 했어
And every single step of the way, I paid
나는 기꺼이 발걸음을 내딛었고
Every single night and day I searched for you
매일 밤낮으로 당신을 찾아 헤맸어
Through sandstorms and hazy dawns I reached for you
모래바람을 뚫고 안개 낀 새벽을 지나 드디어 당신에게 닿았어
I'm tired and I'm weak but I'm strong for you
난 지치고 약해졌지만 당신을 위해서라면 강해질 수 있어
I want to go home but my love gets me through
이제 집에 가고 싶지만, 이 사랑이 나를 끝까지 가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