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를 사랑한다
마치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영상으로 옮긴 것 같은 영화다. 여백을 통해, 직접적인 대사보다 더 깊고 섬세한 감정선을 담아낸다. 그렇게 인물들의 감정선끼리 교차하고, 엇갈리며, 조우하는 긴장을 영화 내내 세심하게 유지함으로써, 푸르른 한여름의 풍경처럼 영롱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정말로 아다치 미츠루적이다.
이 영화는 시한부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다. 인물이자 시간에 대한 우화다.
우리는 현재 앞에 늘 죄책감이 든다.
그 죄책감만큼 우리는 현재를 무시하고, 소외하며, 오히려 현재에게 화를 낸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게 뭐야?"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현재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여름이 가면 금방 겨울이 오듯이, 현재 또한 금방 떠나가고 미래가 올텐데, 현재는 자꾸만 보채듯이 자신만을 바라봐달라고 시위하는 것만 같다.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만 같은 현재가 너무 힘들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내 훌쩍 떠나버릴 현재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계속 우리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미래다. 더욱 멋진 보상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라면 현재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현재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
머리로는 정확하게 그렇게 알고 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현재 앞에 죄책감이 드는 것일까.
현재가 우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까닭이다.
현재는 우리를 좋아한다. 우리가 제일 예쁘다고 말한다. 우리만 있으면 제일 좋다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를 좋아하는 현재이기에, 현재를 무시하는 일이 영 마음에 걸린다. 우리에게 고백한 현재를 방치하고, 미래를 선택하려는 일이 영 찝찝하다. 그렇다고 미래를 포기하며 현재를 선택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현재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어느새 이처럼 현재를 문제로 느끼며,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는 자가 되어 있다.
현재를 설득하고, 달래고, 협박하고, 회유하고, 어르고, 다스림으로써, 현재가 우리를 편히 놓아두고 제 갈 길을 가도록 안내하는 자가 되어 있다.
현재야, 너는 네 갈 길로, 우리는 우리 갈 길로.
현재야, 너는 과거로, 우리는 미래로.
그렇게 현재를 자기 길로 잘 가도록 인도하면, 우리의 죄책감은 사라질 것이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를 자기 갈 길, 곧 과거로 빨리 보내려고 해도, 그렇게 우리의 눈 앞에서 현재를 사라지게 하고 그 대신 미래를 영접하려고 해도, 죄책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우리가 현재를 너무나 좋아하는 까닭이다.
우리가 현재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그 말을 전하지 못한 까닭이다.
우리가 현재에게 물은 그 질문은, 실은 우리가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게 뭐야?"
바로 너야.
바로 현재야.
나도 너를 너무나 좋아해.
그래서 네가 떠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좋아한 만큼 너를 잃게 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여름의 햇살처럼 반짝이며 나를 가슴 깊이 찾아왔다가, 소나기처럼 내 가슴 깊이 빗소리만을 남긴 채 떠나가게 될 네가 너무 가슴 아파. 눈 앞에서 생생히 빛나던 모습이 금새 과거가 되어 사라지게 될, 시한부의 운명을 결코 거스를 수 없는 현재를 좋아하는 일이 너무 가슴 아파.
우리는 현재를 이토록 좋아하기에, 현재를 잃고 싶지 앟았던 것이다.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우리의 죄책감이 아닌, 우리의 사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미래를 준비한다는 미명하에 모른 척 과거로 흘려보냈던 그 현재를, 그 무수한 현재를, 그토록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현재를 그토록 사랑했다는 사실을, 현재를 잃어버린 뒤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로 작별을 고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여름에 안녕이라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한 이만이 작별을 고할 수 있다. 사랑을 고백한 이만이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차마 안녕을 말하지 못하고, 늘 과거로 떠나보낸 무수한 현재에 대해 가득찬 후회와 미련 속에서만 살고 있는 우리에게, 현재는 다시금 찾아와서 말을 건넨다.
"너는 나 좋아해?"
좋아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정말 좋아해. 안녕.
그동안 대답되지 못했던 말이 현재에 대답된다.
반드시 떠나갈 것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한 그 고백뿐이다.
그리고, 결코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아, 잘 떠나보내기 위해 건네진 이 역설의 인사를 전해받은 현재는 이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영원을 향한다.
우리의 가슴 깊은 곳을 향한다.
살포시 걸어 들어온다.
우리가 현재에게 전한 안녕은, 우리의 가슴 속으로 현재를 초대하는 연애편지였던 까닭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안녕은,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결코 잃고 싶지 않다는 가장 진실된 고백의 연애편지다.
그렇게 우리의 가슴 속에 현재가 담긴다. 영원에 현재가 담긴다. 현재는 영원이 된다. 지나버린 그 여름의 향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 생생함이 우리를 일깨운다.
떠나간 현재가, 여기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우리가 사랑했던 현재가, 우리의 사랑 안에서 영원함을.
지금 또 여름의 햇살 속에 빛나고 있음을.
우리는 현재를 사랑한다.
성시경 - 안녕 나의 사랑
여름 냄새 벌써 이 거리에
날 비웃듯 시간은 흐르네
눈부신 햇살 얼굴을 가리면
빨갛게 손 끝은 물들어가
몰래 동그라미 그려놨던
달력 위 숫자 어느덧 내일
젤 맘에 드는 옷 펼쳐 놓고서
넌 어떤 표정일까 나 생각해
해맑은 아이 같은
그대의 눈동자 그 미소가
자꾸 밟혀서 눈에 선해
한숨만 웃음만
그대 힘겨운 하루의 끝 이젠
누가 지킬까, 누가 위로할까
내 턱끝까지 숨이 차올라
내 머리 위로 바람이 불어온다
온 힘을 다해 나는 달려간다
이게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몰라
눈물이 흘러 아니 내 얼굴
가득히 흐르는 땀방울
늘 그랬듯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안녕, 나의 사랑 그대
미안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눴던
잘잤어 보고 싶다는 인사
그리울 때면 꺼내볼 수 있게
하나 하나 내 맘에 담곤 해
어떻게 어떻게 그대없는
내일 아침은 난 겁이 나요
수많은 밤들 견딜 수 있을까
웃으며 안녕
길 건너 멀리 네가 보인다
지루했나 봐 발끝만 바라보네
온 힘을 다해 나는 달려간다
이제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몰라
눈물이 흘러 아니 내 얼굴
가득히 흐르는 땀방울
나 없을 때 아프면 안돼요
바보처럼 자꾸 울면 안돼요
괜찮을 거야 잘 지내요 그대
나의 사랑 그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