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좀 할 줄 아세요?"
그대여, 아직 포기하지 말라.
그대에게만 사랑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
그대는 결코 사랑 무능력자가 아니고, 선천적 사랑결핍증을 앓는 환자가 아니며, 사랑 경쟁에서 도태된 낙오자도 아니다.
그대는 단지 사랑에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실패는 그것을 이루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대가 밥 짓는 법을 정말로 잘 안다면, 그대는 밥짓기에 실패하지 않는다. 이와 같다.
더군다나 사랑은 사랑하는 법을 정확히 알고만 있다면 결코 실패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만이 우리의 희망인 것이다. 제대로 알기만 한다면, 여타의 조건을 넘어서 결코 실패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랑했는데도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즉, 그대의 노력이 문제라고 말하지 말라. 애초 물이 없는 곳에서 아무리 우물을 파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한다 해도 물은 얻을 수 없다. 물을 얻기 위해서는, 그대의 노력보다, 먼저 그대는 물이 무엇인지, 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대여, 사랑이란 무엇인가?
주는 것이다. 주는 것은 사랑의 핵심이다.
그대는 물론 이 일견 뻔해보이는 말에 따라 이미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었음에도 사랑에 실패했다며, 허울 좋기만 한 이 말의 뻔뻔함과 허무함에 대해 빈정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대는 분명히 이 말에 따라 상대에게 주는 자가 되어 왔다. 주는 자가 되면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대는 그대의 능력을 키우려 했다. 능력이 있으면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고, 그러면 그대는 더 효과적으로 사랑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 속에서, 그대는 끝내 상대에게 그대의 능력 이상의 것을 줄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렇게 더 줄 수 없는 자신을 자책하게 되었다.
때문에 그대는 아예 그대보다 못난 이를 대상으로 삼아 사랑을 얻으려고도 했다. 못난 이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잘난 그대가 그리 큰 힘을 기울이지 않고도 유능하게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못난 이는 그대가 조금만 줘도 감사하며 만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대는 평강공주의 꿈을 꾸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못난 이는 그 자신의 열등감을 채우기 위해, 오히려 그대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대는 그 결핍을 메워주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줘야 했고, 그 결과 그대는 더 착취되어 피폐해졌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줘야 한다. 이 구조는 그대를 계속 몰아 세운다. 상대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대는 그것을 그대가 상대에게 줘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에게 바로 그러한 의무를 부과한다.
그 결과, 현실에서 반드시 줄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 그대는, 그리고 상대를 만족시켜줘야 한다는 그 무거운 의무로 인해 지치게 된 그대는, 이제 상대를 나쁜 이로 만들게 된다. 그대가 줄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개념없는 무뢰한으로 상대를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대는 상대에게 차가워지고, 상대를 비난하며, 상대를 피해 도망가게 된다. 상대에게 화가 나게 된다.
이것은 그대가 주기 위해 주고 있었던 까닭에 생겨난 일이다.
이와 동시에 그대는, 그대가 어떻게든 무리하게 노력함으로써 상대가 원하는 것을 대체로 다 채워준 결과를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대가 노력한 그만큼을 상대로부터는 돌려받지 못하는 것 같기에, 더욱 힘들어지고 불만족스러워진다. 그래서 결국 그대는 상대에게 차가워지고, 상대를 비난하며, 상대를 피해 도망가게 된다. 상대에게 화가 나게 된다.
이것은 그대가 받기 위해 주고 있었던 까닭에 생겨난 일이다.
주기 위해 주는 일, 그리고 받기 위해 주는 일, 이 모든 일은 바로 조건거래다.
그리고 이 조건거래의 형식으로 주는 대표적인 원리를, 우리는 바로 양육이라고 부른다.
그대여, 그대는 바로 양육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을 원하는데 양육을 하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그대는 사랑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양육은 생존의 원리다. 그리고 모든 생존의 원리는 다 조건적이다. 그러나 사랑은 생존의 조건적 현실을 넘어서, 인간이 고유하게 창발해낸 탈조건적 원리다. 그래서 사랑은 양육의 동의어도 아니며, 양육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양육의 확장어도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양육의 반대편에서 성립되는 원리다.
양육은 사랑이 아니다. 바로 이 사실을, 붓다나 예수와 같은 종교적 천재들은, 철학의 대가들은, 심리학의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왔다. 실제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부모가 정말로 자식을 사랑하게 될 때는, 양육의 조건적 원리를 벗어나, 자식을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존재로 보는 탈조건적 관계를 맺게 될 때다.
조건거래는 우리를 둘 중의 하나로 만든다. 승자거나 패자다. 장사꾼이거나 거지다. 그래서 우리가 양육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이를 열심히 추구하고 있던 동안, 우리는 결국 사랑을 계산적으로 얻으려 하는 얄팍한 입장이나, 사랑을 구걸하는 비루한 신세밖에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혹자는, 소위 나쁜 남자 및 나쁜 여자를 추구하는 이들은, 사랑은 구걸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갑의 입장에서 당당히 얻어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근간에 깔린 양육의 원리 속에서 이러한 당당함을 주장하는 일은, 그저 자신이 부모에게 양육받는 것은 당연한 일임을 외치는, 여전히 사랑과는 아무 관계 없는 피양육자로서의 아이의 목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사랑을 양육으로 착각하고 있는 한, 우리는 양육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 까닭에, 그 결과로서 피양육자인 아이밖에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는 사랑을 하지 못한다.
"사랑하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라는 착각의 말로, 아이는 양육의 당연함만을 원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사랑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인간이 그 고유한 상냥함으로 창발해낸 이 우주의 기적이다. 애초에 당연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고, 가장 귀한 것임을 아는 어른만이 오직 사랑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반복해서 사랑에 실패했던 이유는, 우리가 양육만을 당연하게 추구함으로써, 사랑의 당연하지 않음을 아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사랑을 모르는 아이로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교묘한 양육의 원리 속에서, 우리는 상대를 양육해서 아이로 만들고 자신은 어른인 척 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상대에게 양육됨으로써 상대는 어른으로, 우리 자신은 아이로 삼는 일을 강제했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다.
그대여, 정직하게 한번 기억해보라. 우리가 사춘기 시절, 어른이 되기를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이유는, 바로 사랑하고 싶어서였다. 아이로 계속 남으면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양육의 원리가 끝난 자리에서 사랑은 시작된다. 아이가 어른이 됨으로써 사랑은 시작된다.
그렇다면, 어른의 사랑은 무엇인가?
주는 것이다. 주는 것은 사랑의 핵심이다.
그러나 양육의 당연함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주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고, 받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대여, 그대는 이제 준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어떻게 주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어도 주는 법을 이해해야 한다.
준다는 것은, 그냥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는 것이다.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의 원리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줄 수 없는 그 모든 상황에서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그 모든 상황에서도,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통해 그냥 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도, 그렇게 희생한 만큼 상대에게 돌려받지 못해 느끼게 되는 그 모든 불만족을 경험하지 않고도,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줄 수 있다.
그대여, 한번 섬세하게 떠올려보자.
그대가 너무나 주고 싶었는데,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주지 못해 좌절된 그 모든 장면을 떠올려보자. 좌절된 그 모든 장면은 반드시 그대가 그것을 주고 있는 그림으로 구성된다. 이를테면, 명품백을 선물하지 못해 좌절한 그대는, 이미 명품백을 받아들고 상대가 너무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 장면을 보면서 좌절한다. 그대의 좌절은 이미 그것이 실현된 장면 속에 있다.
그대가 보고 있던 그 장면은 바로 마음의 풍경이다.
그대는 그 풍경 속에서 분명 주고 있었다.
그대는 마음 속에서 분명 주고 있었다.
그대가 상대에게 줘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그 속에서 분명 주고 있었던 그 마음을 상대에게 줘야 하는 것이다.
그대여, 준다는 것은 바로 마음을 주는 것이다.
마음을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대여, 정말로 이해해야 한다.
마음을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상대의 사랑을 얻고 싶을 때 "넌 나에게 왜 마음을 안줘?"라고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마음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대가 현실적으로 줄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마음 속에서 이미 보인, 그대가 이미 주고 있던 그 그림을, 그대가 그것을 너무나 주고 싶었다는 그 사실을, 그 간절함을 상대에게 전하면 된다. 그것이 마음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줄 수 없는 것도 반드시 줄 수 있다. 마음을 준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불가능도 가능하다.
마음에는 어떤 불가능도 없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랑에는 불가능이 없다.
마음으로는 다 줄 수 있는 까닭이다.
외제차도, 명품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도, 함께 이루지 못한 일도, 이제는 없는 그 어떠한 것도, 마음으로는 다 줄 수 있다.
상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어 그가 행복해하는 풍경을 우리가 떠올릴 때, 그리고 그 풍경이 전하는 느낌 속에서 우리가 상대에게 바로 그러한 것을 주고 싶었다고 그 생생한 느낌을 전할 때, 우리는 이미 마음으로 준 것이다. 마음을 준 것이다. 그렇게 실현된 현실을 창조한 것이다.
창조는 없던 것을 있게 하는 것이다. 없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창조다.
그리고 창조를 낳는 것은 언제나 소망이다.
주고 싶다.
주고 싶다.
주고 싶다.
이 소망의 발화가 바로 마음을 주는 것이다. 소망은 언제나 사랑의 표현이다.
이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고 싶다'의 소망을 품는 자는, 그 소망을 발화하는 자는, 곧 마음을 주는 자는, 언제든 그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줄 수 있다. 그의 능력과 관계없이 줄 수 있다. 그의 한계와 무관하게 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모든 불가능함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자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다. 사랑하는 자의 힘이다.
그대는 마음을 주었다.
다 주었다.
이 말은 예수를 통해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다 이루었도다."
사랑이 다 완성한 것이다.
마음을 주는 그대가 다 완성한 것이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없다.
다 준 까닭이다.
가장 충만하다.
그것이 그대다. 사랑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 자다. 사랑 좀 할 줄 아는 그대다.
Jewel - Satisfied
If you love somebody
당신이 사랑한다면
You better let it out
부디 표현하세요
Don't hold it back
숨기지 마세요
While you're trying to figure it out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애쓰면서
Don't be timid
용기를 내세요
Don't be afraid to hurt
아플까봐 두려워하지 마세요
Run toward the flame
그 열정에 몸을 던지세요
Run toward the fire
그 뜨거움으로 뛰어드세요
And hold on for all your worth
당신의 진심을 다하세요
Cause the only real pain a heart can ever know is the sorrow of regret
가슴이 아는 유일한 고통은 후회의 슬픔이기 때문이에요
When you don't let your feelings show
당신이 당신의 느낌을 숨긴다면요
So did you say it?
사랑한다고 말했나요?
Did you mean it?
전했나요?
Did you lay it on the line?
분명하게 밝혔나요?
Did you make it count?
소중하게 했나요?
Did you look 'em in the eye?
똑바로 눈을 마주봤나요?
And did they feel it?
그들도 그걸 느꼈나요?
Did you say it in time?
늦지 않았나요?
Did you say it out loud?
크게 말했나요?
Cause if you did
당신이 했다면
Then you lived some
당신은 살았던 거예요
And that feeling inside
당신 안의 그 느낌을
That's called satisfied
충만함이라고 불러요
Busy people walking by
사람들은 분주하죠
Can't help but worry some
걱정으로 가득차 있어요
With so many things to do
할 일이 너무 많아서요
So little love gets done
그래서 사랑이 어려워요
Empty hearts everywhere
어디에나 텅 빈 마음만 가득하죠
Drowning but dying of thirst
물 속에 잠겨 있지만 목마름만 가득해요
If we want love
사랑을 원한다면
It's not that tough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Start by giving it first
주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It's easy to give
주는 것은 쉬워요
Baby can't you see?
안 보이나요?
Just close your eyes open your heart
그러면 그저 눈을 감고 가슴을 열어보세요
And do what comes naturally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하세요
So did you say it?
사랑한다고 말했나요?
Did you mean it?
전했나요?
Did you lay it on the line?
분명하게 밝혔나요?
Did you make it count?
소중하게 했나요?
Did you look 'em in the eye?
똑바로 눈을 마주봤나요?
And did they feel it?
그들도 그걸 느꼈나요?
Did you say it in time?
늦지 않았나요?
Did you say it out loud?
크게 말했나요?
Cause if you did
당신이 했다면
Then you lived some
당신은 살았던 거예요
And that feeling inside
당신 안의 그 느낌을
That's called satisfied
충만함이라고 불러요
Horses are built to run
말은 달리도록 만들어졌어요
The sun is meant to shine above
태양은 하늘에서 빛나도록 만들어졌죠
Flowers are made to bloom
꽃은 피어나도록 만들어졌고요
And then there's us
그리고 우리가 있어요
We were born to love
우리는 사랑하도록 태어났죠
We were born to love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어요
So did you say it?
사랑한다고 말했나요?
Did you mean it?
전했나요?
Did you lay it on the line?
분명하게 밝혔나요?
Did you make it count?
소중하게 했나요?
Did you look 'em in the eye?
똑바로 눈을 마주봤나요?
And did they feel it?
그들도 그걸 느꼈나요?
Did you say it in time?
늦지 않았나요?
Did you say it out loud?
크게 말했나요?
Cause if you did
당신이 했다면
Then you lived some
당신은 살았던 거예요
And that feeling inside
당신 안의 그 느낌을
That's called satisfied
충만함이라고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