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들(GRASS, 2017)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이가 만든 영화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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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이가 만든 영화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삶을 바라보는 선량하고 아름다운 시선이 어느덧 맞은 편에서 떠오른다. 스크린을 사이에 둔 채, 우리는 수줍게 눈을 맞추고 미소로 인사를 나누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 미소는 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아는 이의 미소다. 그래서 슬프고 따듯하다. "당신도 알고 있었군요." 이해받은 느낌이 들고, 이해한 느낌이 든다. 그 선량한 이의 손을 맞잡고, "좋은 일이에요(善哉), 좋은 일이에요(善哉)."라는 말을 나누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 영화는 선시(禪詩)를 닮아 있다.


서사가 아닌 느낌으로, 조소가 아닌 미소로, 자학이 아닌 상냥함으로, 홍상수 감독은 이행해가고 있다. 정말로 그의 영화는 시가 되어가는 듯 하다. 그러나 이는 한 쪽의 대극에서 다른 쪽의 대극으로 옮겨간 변화가 아니라, 하나를 끌어안고 다른 하나를 함께 성립시키고자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역설이다. 그건 "살아있는 건 다 함께 살자."의 어여쁜 소망의 고백이자, 그 현실태이다.


영화의 후반부 한 인물이 발화하는 "이거 다 쇼야!"라는 대사를 들으며 가슴이 가벼워질 때, 우리는 언제나 삼류연극과도 같은 우리의 모습을 우스우면서도 아프게 묘사해왔던 우리의 정직한 친구가,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비루한 유한성과 씨름하며 살아온 그 깊은 고뇌의 무게로부터 이제 조금은 자유로워졌음을 짐작해본다. 아니, 꼭 그렇게 되기를, 우리의 정직한 친구가 이제는 외롭지 않게 사랑받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사라져 갈 불쌍한 것들이기에 삼류연극을 펼치고, 사라져 갈 불쌍한 것들이기에 그 삼류연극을 관찰하며 조소한다. 그렇게 삼류연극의 배우나 삼류연극의 관객이나 다 같이 사라져 갈 불쌍한 것들이다.


그리고 불쌍하기에 이토록 싱그럽다. 사라져 갈 것들이기에 이토록 생생하다. 여린 풀잎들과 같다. 바보 같으며 어여쁘다. 그래서 사랑한다. 그리고 또 사랑한다. 이 영화에는 이 삶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이 따듯한 시선이 담뿍 담겨 있다.


우리의 잘못은 단 하나뿐이다. 우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그것이다. 차라리 풀잎들처럼 모르면 좋으련만, 자기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도 모른 채 하늘하늘 어여쁘게 지금 이 순간 사랑받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우리의 필멸을 예감하기에 영원을 꿈꾼다. 지금 상태의 영원한 유지를 꿈꾼다. 그것만이 우리의 잘못이다. 잘못 아닌 잘못이다.


이 잘못 아닌 잘못으로 말미암아, 좋은 순간을 유지하려는 꿈을 위해 작위를 만들어내고, 관계의 도식을 발명해, 차이와 반복 속에서 삼류연극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정말로 잘못 아닌 잘못인 이유는, 그만큼, 즉 유지하고자 하는 만큼, 우리는 이 삶을, 이 순간을 정말로 너무나 사랑했다는 사실이 거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랑해서 잃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억지로라도 유지하고 싶었다. 촌극의 형상으로나마, 그 형상을 우리 곁에 남기고 싶었다. 우리 모두는 바로 그렇게 우리의 삶을 사랑했다. 사랑한 만큼 간절했고, 진정어렸다. 그 모든 촌극 속에는, 촌극 속에서일지라도 반드시 이처럼 사랑을 향한 진실된 우리의 소망이 있었다.


허세와 허영이 외로움이라는 소재를 날실과 씨실로 엮어 직조해내는 이 영원한 삼류연극들 속에서도, 우리의 가장 진실된 소망을 발견한 이가 있었을 때, 그 이는 분명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영화의 시선 위에는 흡사 "보시기에 참 예쁘더라."라고 말하는 미소가 살포시 내려앉는다.


사라질 모든 여린 풀잎들이 삶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이었듯이, 그 모든 삼류연극들 또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이었음을 이해하는 미소가 이제 여기 이 영화의 충만한 느낌이 된다. 달이 가득 차 우리는 또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라도 사랑할 수 있는 우리였음을 기억해낼 것이다.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정직한 우리였음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라질 것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잊을 수 없는 것이기에, 삶은 이토록 좋은 것이다.


우리는 분명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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