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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Aug 09. 2019

캡틴공자와 아이언맹자

"선비게임"



  이 시대는 선비의 시대다. 그리고 선비는 분명하게 하나의 영웅상이다. 조선의 어벤져스다.


  이 조선의 어벤져스들은 평소에도 깨어있는 정신의 주체들이며, 공동체의 위기가 닥칠 경우 그들은 기개있는 지사처럼 고고한 의관의 선비 수트를 갖춰 입고 캡틴공자와 아이언맹자 앞으로 집결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것이 토르이황이라든가 헐크이이가 될 경우도 있겠지만, 핵심은 이 어벤져스들이 늘 그들의 리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선비들에게는 늘 리더가 필요하다. 하늘을 대신해서 자기들의 위에 있어줄 권위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양육의 부모가 필요하다. 아무도 없다면 자기들이 의지로 쌓은 비분의 역사라도 부모처럼 위에 올려 놓고 하나의 권위로 삼아 의지해야 한다.


  그래야 홀로 불안에 떠는 일 없이, 부모가 지켜보는 듯한 안심의 조건 속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신나게 놀 수 있는 까닭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선비게임을 즐길 수 있는 까닭이다.


  이처럼 선비는 아이다. 머리만 똑똑해지고, 몸만 커진 아이다. 위로부터의 부모의 양육과 같은 기제가 없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아이다.


  이러한 선비가 추구하는 자아상은, 그래서 아이가 꿈꾸는 이상적인 자기의 모습과 동일하다.


  그 자아상은 흥미롭게도, 동시대적으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묘사되는 캡틴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모습을 대단히 많이 닮아 있다. 정확하게는 선비의 이상적인 자아상은 그 두 인물의 통합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비의 자아상을 구성하는 양축은 바로 모범생과 일진이다. 그리고 그 둘의 통합적인 모습이 바로 이상적인 선비로 구현된다.


  이는 아이들의 가슴과 지갑을 열기 위해 쓰인 인터넷 소설들에서 묘사되는 인물의 모습과도 같다.


  자신의 일에는 털털하지만 약자가 피해를 당하는 일에는 불같이 일어서고, 반항적이나 자기 편인 사람들에게는 끝내주는 의리를 갖고 있고, 매사에 시크해보이나 내 여자에게는 따듯하며, 머리는 엄청 좋으나 공부를 귀찮아 하고, 그러나 하루만 당일치기를 하면 전교권에서 노는 성적을 갖고 있고, 특별히 좋아하는 운동은 없으나 운동신경은 발군이고, 특히 싸움은 지역구에서 알아주는 실력이고, 그러나 귀찮은 걸 싫어해 조용히 뒷자리에서 이어폰을 꽂고 지내는 걸 좋아하며, 술담배도 잘하고, 그러나 내 여자가 담배를 피울 때면 몸에 좋지 않다고 짜증내며 담배를 빼앗아 던져버리고, 진정한 친구도 많고, 밥 잘 먹는다고 친구 엄마들의 사랑도 독차지하고, 실은 학교선생님들도 저 놈이 그래도 사람은 참 진국인 놈이라고 예뻐하고, 그리고 존나 유치해서 더는 못쓰겠는 바로 그러한 인물의 모습이다.


  뭘 하든 다 만능이고, 다 잘 하는, 그래서 마치 인생을 마스터한 듯한 면모의 인물이 풍기는 향기를, 선비들은 바로 풍류라고 부른다. 그리고 외적으로 흘러나오는 그 풍류의 향기의 원천이 되는 고고한 내적 중심을 바로 기개라고 부른다.


  투박하게 비유하자면, 풍류는 일진인 아이언맨이 대표하는 특성이고, 기개는 모범생인 캡틴아메리카가 대표하는 특성이다. 그래서 선비는 일진과 모범생의 통합인 것이다.


  이처럼 풍류와 기개를 갖춘 선비, 바로 이것이 이 시대의 영웅상이다. 위인전을 열심히 읽고 자란 아이가 꿈꾸어낸 아름다운 자아상이다. 그리고 모든 자아상은 반드시 그 자아상을 꿈꾼 주체의 소망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선비라는 이 자아상에는 어떠한 소망이 담겨 있는가?


  바로 칭찬과 인정이다.


  자기가 얼마나 거룩한 하늘의 뜻에 따라, 즉 위대한 부모의 뜻에 따라 열심히 잘 살고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 특별한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칭찬과 인정은 고래도 춤추게 하며, 불안한 아이도 영웅으로 만든다.


  그리고 마치 학예회 무대처럼, 부모의 칭찬과 인정의 시선 속에서, 즉 양육의 시선 속에서, 아이가 영웅이 되기 위해 채택하는 구조가 바로 선비게임이다.


  선비게임의 양상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것은 적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적은 가능한 한 최악의 것일수록 좋다. 그래야만 그 적에 대항하는 자기의 고고한 도덕주의가 더 빛을 발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 도덕주의는 적으로부터 우리편을, 곧 우리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우국지사의 민족주의로 다시 한 번 강화된다. 영웅의 수호지심이다.


  어느 때는 서로 대립하기도 했던 모범생과 일진은 이처럼 자기 반을 위협하는 적이 나타났을 때, 하이파이브를 하며 단결한다. 캡틴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불의를 무찌르기 위해 손을 잡는다. 서태웅과 강백호가 함께 골을 만들어낸다. 맨날 싸우던 엄마와 아빠가 우리를 위해 화해한다. 그 모든 것은 하나가 된다. 통합된다. 위대한 근대의 통합주의가 이렇게 완성된다.


  "우리반 반장 민철이와 캡짱 규식이가 손을 잡았어! 이제 우리반은 무적이야! 와, 세상에 어떻게 이런 멋진 학급이 다 있냐?!"


  모두는 도취한다. 어벤져스와 시민도, 북산팀과 관객도, 부모와 자식도 함께 도취한다. 모두가 하나되어 아리랑을 부르며 널뛰는 마당놀이 한마당이며, 이 땅을 부모처럼 지키는 하늘의 귀신들에게 올리는 별신굿이고, 필승 코리아 월드컵 4강이다.


  그 도취 속에 불안은 망각된다. 아니, 망각된 척 뒤편으로 밀려진다. 그렇게 실존은 소외되고, 전체주의가 모든 무대를 지배한다.


  아이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이 주인공이 된 무대에서 마치 하늘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부모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얻은 것 같은 경험을 한다. 즉, 영웅이 된 것 같은 경험을 한다. 그래서 이 게임을 멈출 수 없다. 소영웅주의에 빠져, 끝없이 적을 만들고, 도덕주의의 이름으로 규탄하며, 영원한 갈등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조선에서 당파싸움이 끊이지 않던 그 이유다.


  싸우는 동안에는, 고고한 영웅적 도덕주의의 지사로서 칭찬받고, 또 인정받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게 칭찬과 인정이 주는 도취 속에서, 자신의 불안을 잊을 수 있는 까닭이다.


  불안한 지금의 현실에서, 정치인은 연예인처럼 대중주의적 인기를 지향하려 하고, 연예인은 정치인처럼 도덕주의적 인품을 지향하려 한다. 그리고 시민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연예인, 즉 인플루언서를 지향하려 한다.


  이는 전부 모범생과 일진의 통합이 변주된 형태들이다. 이러한 통합을 이루어야, 풍류와 기개를 갖춘 선비가 될 수 있으며, 그 결과 영웅으로 드러난 자기를 향한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간주된다. 이렇게 남으로부터 받는 칭찬과 인정으로 자신의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이것이 바로 아이의 꿈이다.


  진실로, 아이의 꿈이다.


  부모로부터, 또는 부모의 시선을 양적으로 대신한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또는 부모의 시선을 질적으로 대신한 도덕주의적 이념의 시선으로부터, 그저 끝없이 칭찬과 인정이라는 이름의 양육만을 바라는, 영원한 아이의 꿈이다.


  이 꿈이 영원한 꿈이 된 이유는, 피해의식 때문이다. 노력했으나 얻지 못했다는 좌절이 피해의식이 되고, 곧 보상심리를 낳는다. 유교주의 나라인 조선의 성립 이후 500년간 열심히 해왔으나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선비들의 보상심리가 영원한 꿈이 되어 다시 현재에 재생된다.


  이러한 보상심리는 또한 복수심이다.


  어벤져스(avengers)는 표현 그대로 복수자들이다. 선비는 바로 이 복수자들이다.


  하늘로부터 위대한 뜻을 이어받은 자기들이 실패하고 좌절하게 된 데에는, 유교의 숭고한 정신을 탄압하는 무지한 타노스처럼 거대한 악의 세력이 있었을 것이라 가정하며, 그 악의 세력에 복수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타노스도 선비다. 자신을 하늘의 대행자로 여기고, 우주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우주의 경영을 고민하며, 결코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닌 청렴결백한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고자 하는 그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선비다.


  즉, 이러한 현실은 그저 선비가 똑같은 선비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아이가 똑같은 아이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것은 그치치 않는 당파싸움이며, 멈추지 않는 골목대장놀이다.


  여기에서 정말로 이해해야 할 중요한 지점은, 사실 선비들이 화나 있는 대상은 같은 선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 어벤져스들이 정말로 화나 있는 대상은 바로 캡틴공자와 아이언맹자다.


  그들을 진리처럼 모시며 낭비한 500년이 미치도록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그리고 분통이 터지는 만큼, 이내 그들이 맞다며 다시 미소지어야 한다.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한 구루의 말에 따라 전 재산을 처분한 이가, 그 예언이 빗나가더라도 그 구루가 맞다고 미소짓는 이유와 같다. 인지부조화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의 말에 따라 바보처럼 산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비의 꿈은 복수의 꿈이다. 자신의 인생을 망친 것 같은 유교주의를 향한 복수의 꿈이다.


  이처럼 아이의 꿈은 복수의 꿈이다. 자신의 인생을 망친 것 같은 부모를 향한 복수의 꿈이다.


  그래서 더욱 가열차고 끈질기다. 어떻게든 자신을 조금이라도 용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칭찬과 인정을 얻어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 모든 것이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구색이라도 맞출 수 있다. 언제나 이가 부러질 만큼 악물어야 하는 아픔이 여기에 있다.


  순박하게 부모의 전능성을 믿었고, 그 하늘 같은 말에만 따라 살았던 까닭에 끝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아이는, 그저 속상한 아이다. 서러운 아이며, 아픈 아이다.


  불안을 자유로 내버려두지 못하며, 어떻게든 안정으로 바꾸려 하는 유교주의의 강박적인 엄숙함이, 아이를 자유로운 아이로 살 수 없게 함으로써 경직된 애어른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아이의 삶은 소외되었다. 그래서 애어른이 된 아이는 자신의 소망을, 차마 아이때 표현하지 못한 그 유치한 소망을 복수자의 꿈에 담아 노골적인 영웅주의로 표현해낸다. 그래서 더 유치해진다. 더 유치해지니, 결과라도 얻고자 더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유교를 정확하게 닮아간다. 똑같은 유교주의의 모습으로 이제는 남들을 강박적으로 옭아맨다. 엄숙한 도덕주의를 전염시키고, 매사에 고고한 인품이라는 이름의 유교주의의 덕목을 요구하며, 전체주의적 통제를 통해 불안을 소외시킨다. 그래서 그 자신만큼 남들도 속상하고, 서럽고, 아프게 만든다.


  이것은 비극이다.


  선비게임은 희극의 양식이 아니라, 분명한 비극의 양식이다.


  게임의 동기가 유치한 만큼이나 더 비극적이다. 웃프다. 게임을 실제의 현실로 사는 커다란 어른들이 길거리에서 요가복을 입고 심각한 얼굴로 뛰어다니며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가상의 레이저빔을 쏘아대는 만큼이나 웃픈 그림이다. 우리가 자신의 불안을 소외시키려 하는 만큼 우리는 이렇게 웃퍼진다.


  불안은 영화 인셉션에서 묘사되는 토템과도 같다.


  불안은 우리가 게임 속에 있지 않고, 게임 밖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표다. 곧, 우리가 살아도 된다는 인증이다.


  삶은 불안하다. 불안은 흔들리는 것이다. 흔들리는 것은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공간이 있다는 것은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삶은 바로 이 자유다. 살아 있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자유로워도 된다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가상의 적에게 복수함으로써 얻게 되는 칭찬과 인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으로 이미 자유로운 것이다. 즉, 불안한 것으로 이미 자유로운 것이다.


  불안을 은폐하는 유교주의의 구조 속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불안을 소외시키게 됨으로써 자유마저도 소외시키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복수를 꿈꾸었다. 모범생과 일진의 기능적 통합을 이루어 영웅이 됨으로써, 잃어버린 자신의 자유를 다시 찾아오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착각하고 있던 것은, 이 모든 것을 우리가 게임 속에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유치해지기만 했다.


  복수자의 역사가 필요하다면, 이 선비게임이야말로 우리의 자유를 소외시킨 원인이며, 곧 우리의 정확한 복수의 타겟이다. 선비게임은 숭상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의 해체는 그것의 밖으로 나감으로써 이루어진다. 선비게임의 해체는 게임의 밖으로 나감으로써 가능하다.


  풍류, 인격자, 인품, 기개, 지사, 도리, 사명, 정의, 인생마스터, 하늘의 뜻, 영웅 등의, 아이들이 읽는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언어들을 이제 그만 소비할 때, 우리는 게임의 규칙에서 벗어나게 된다. 꿈에서 깨어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에게는 게임이 필요하지 않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영웅인 리더가 필요하지 않으며, 즉 우리의 삶을 대신 이끌어줄 그 어떤 의존대상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나오면, 이미 우리는 불안한 복수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한 복덩이들이다. 우리는 결코 복수를 통해 자유의 권리를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아무 비난없이 지금의 자유를 온당하게 누릴 자격이 있다.


  그 실감 속에서, 선비는 어린이 역사만화책의 꿈 속에 가만히 놓아 두고, 우리는 사뿐하게 삶으로 걸어 나오자. 그렇게 걸어 나온 삶은, 언제나 이미 자유로웠던 우리 자신을 감동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신비다.


  선비 대신에, 우리는 언제나 신비다. 게임이 아닌 삶이다.


  




Marilyn Manson - Sweet Dreams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달콤한 꿈들은 이렇게 만들어져
Who am I to disagree?
동의하지 않는 난 누구지?
Travel the world and the seven seas
모든 대륙과 7대양을 여행해봐
Everybody's looking for something
모두들 무언가를 찾고 있어
Some of them want to use you
그들 중 몇몇은 널 이용하려고 해
Some of them want to get used by you
그들 중 몇몇은 너에게 이용당하기를 원하지
Some of them want to abuse you
그들 중 몇몇은 널 학대하려고 하고
Some of them want to be abused
그들 중 몇몇은 너에게 학대받기를 원해
I wanna use you and abuse you
난 널 이용하고 또 학대하고 싶어
I wanna know what's inside you
난 네 안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
Movin' on, Movin' on
계속 해, 계속 가
Movin' on
계속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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