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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Aug 11. 2019

NO라고 말하는 게 두려운 그대에게

"신보다 더"



  그대는 모든 고민을 싸안는다. 상대의 무리한 부탁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인 결과, 그대의 인생에는 무거운 짐더미뿐이다. 그 무게에 치여 그대는 늘 피곤하다. 피곤하지만 사람 좋은 미소로 다시 한 번 그대를 향한 요청을 승인한다. 누군가에게는 신화인 시지프의 이야기는 이처럼 그대에게는 현실이다.


  그대가 왜 NO라고 단호하게 말하지 못하는지 그 두려움의 이유에 대해 나는 안다.


  그것은 그대의 공감능력이 탁월한 까닭이다.


  그대가 상대를 거부했을 때, 상대가 받을 아픔에 대해 그대는 안다. 상대의 아픔을 그대의 아픔처럼 정확하게 안다. 그래서 그대에게는 거절이 두렵다. 그대가 상대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상냥함만큼, 그대에게는 거절이 두렵다.


  그런데 그대는 상대의 아픔에 대해 어쩌면 이렇게도 탁월한 공감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그대도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NO라고 하는, 그대를 거부하는 것 같은 목소리 앞에서, 그대도 정말로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대가 거부당했을 때, 그대는 마치 신에게서 버림받는 것처럼 느꼈다. 그대가 속할 땅이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느꼈다. 그대의 자리를 잃고 이 세상에서 추방된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이것은 두려움이다.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두려움은 추방의 두려움이다.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대는 두려웠다. 그대가 버림받을까봐 두려웠다. 바로, 전능한 신과 같은 그대의 양육자로부터 버림받을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대의 양육자는 두려웠다. 그대의 양육자는 버림받을까봐 두려웠다. 바로, 그대로부터 전능한 신과 같은 양육자의 지위를 버림받을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대와 그대의 양육자는 서로에 대해 늘 긴장하며 살았다. 늘 눈치를 보고 죄책감을 새기며 살았다. 죄책감만큼 전능한 신으로서 더 잘해주려 했고, 전능한 신처럼 다 받아주려 했으며,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는 신의 심판과 같은 가혹함으로 끝없이 자신들을 책망했다.


  "거부하지 않고 다 받아줘야만 해."


  이것이 그대와 그대의 양육자 사이에서, 신적인 야합으로 성립된 진리의 불문율이다.


  그리고 그대가 사춘기를 지나 이성에 눈을 뜨게 되었을 때, 그대는 이성의 상대에게도 이 신적 불문율을 적용하려고 했다. 그대의 양육자처럼 그대의 상대 역시도 그대를 다 받아줄 것을, 최소 그렇게 노력할 것을 기대했다. 더 적나라하게는, 요구했다.


  그러나 그대의 상대는 공교롭게도, 그대의 것과 같은 양육자와의 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대의 상대에게는 신적 불문율이 너무나 낯설었고, 또 지나치게 무거웠다. 그래서 그대의 상대는 그대에게 불가피하게 'NO'를 선언했다. 전능한 신처럼 그대에게 다 해줘야 하는 그 무게가 너무나도 부담스러워 끝내 그대를 거부하고야 말았다.


  바로 이렇게, 두려운 현실이 그대에게 정말로 일어났다. 추방이 일어났다. 그대가 속할 땅이 그대의 발 밑에서 사라졌다.


  그 결과, 그대는 마치 이 세상에서 살면 안된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큰 상처를 입었고, 그렇게 그대에게 'NO'라고 하는 거부는 치명적인 버림받음의 동의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대는 다른 누군가에게 그대가 입은 버림받음의 상처와 같은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상대를 조금이라도 거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버림받음이 만들어내는 두려운 현실을 더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는 두려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두려움의 원형은 바로 신이다.


  기억해보라. 그대가 그대의 양육자를 전능한 신처럼 보고 있었을 때, 그대가 두려워 한 유일한 것은 바로 그 신과 같은 양육자였다.


  그대는 지금 무엇이든지 다 받아주는 전능한 신을 자처하고 있다. 그래서 그대는 그대의 양육자처럼 두렵다. 그대 자신이 바로 두려움을 그대의 곁에 끝없이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모든 'NO'의 원형은 바로 '아니다. 나는 신이 아니다.'이다.


  그대가 가진 고유의 상냥함을 담아 더 그윽하게 표현하자면, '신이 아니어서 못해주지만 너무나 해주고 싶다.'이다.


  그대여, 이처럼 NO라고 하는 표현은, 신이 아닌, 신보다 더 크고 따듯한 그대의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줄 수 없는 것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신보다 더 진실되고 아름다운 인간의 사랑이다.


  NO를 말하는 그대는 바로 신보다 더 깊고 자애로운 사랑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대가 있는 곳에 이미 두려움이 없다.


  사랑이 있는 곳에 두려움이 없다. 추방의 두려움이 없다.


  때문에, 그대가 있는 그 어느 곳이든 바로 그대의 땅이다. 인간에게 허락된 인간의 땅이다.


  그러니 안심하라, 그대여.


  그대가 거부함으로써 상대를 추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단지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 없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추방되지 않을 인간의 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대는 'NO' 속에서도 상대가 속할 상대의 땅을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 아니어서 YES를 외칠 수 없는, 오직 이 우주에서 인간인 그대만이 할 수 있는 NO의 사랑이다. 신보다 더 고귀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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